[정태화의 지방체육회 이야기] 울산광역시(이하 울산시)는 우리나라 5개 광역시 가운데 가장 막내다. 1997년 경상남도에서 분리됐으니 이제 만 17 년이 됐다. 성년을 눈앞에 둔 청소년으로 조그마한 잘못쯤은 미성년으로 슬쩍 눈감아 줄 수도 있는 나이다. 울산광역시 체육회(회장 김기현 울산광역시장, 이하 울산시 체육회)도 마찬가지다. 경상남도 체육회의 산하 체육회에서 단숨에 경남체육회와 동격으로 승격했다. 17년 전 산하 체육회의 흔적이 아직도 어디선가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 기초부터 다시 시작하겠다는 울산시체육회의 다짐에는 이제 막내 광역시의 틀을 벗어나 당당히 어깨를 나란히 해 경쟁하고 승리를 쟁취하고 싶은 다부진 의지가 엿보인다.

작지만 강한 체육회를 지향
울산시는 4개 구(區)와 1개 군(郡)으로 이루어져 있다. 인구는 120만 명(2013년 기준)에 약간 못 미친다. 인구만으로 따지면 경기도의 고양시나 성남시보다는 조금 많지만 아직 광역시가 아닌 수원시보다 적다. 이런 형편이지만 울산시 체육회는 전국체전에서 경기도와 동등하게 경쟁을 해야 한다. 소위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이다. 물론 성서에는 ‘다윗’이 ‘골리앗’을 지혜로 누르지만 스포츠에서는 언감생심이다.

이런 울산시 체육회도 나름대로 라이벌(?)이 있다. 바로 광주광역시(이하 광주시)다. 물론 광주시 체육회는 울산시 체육회를 라이벌로 인정하지 않는다. 인구는 30만 명 가까이 광주시가 많지만 똑같이 5개 구로 이루어져 있는데다 무엇보다 전국체전 종합 성적이 대부분 앞뒤로 형성된 탓이다. 여기에다 갖가지 여건도 비슷해 곧잘 여러 가지 면이 비교된다.

경남에서 분리돼 광역시로 승격해 독자적으로 전국체전에 출전한 1997년부터 지난해 인천체전까지 16번의 체전에서 울산시가 광주시를 앞선 적은 단 3번뿐이다. 이에 따라 울산시 체육회는 언제나 광주시 체육회를 넘어서는 것이 1차 목표다. 순위라고 해야 아직은 부끄럽기 그지없다. 뒤로 제주특별자치도와 세종특별 자치시 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실 울산시 체육회의 이런 성적은 당연한 것인지 모른다. 도 시의 R&D 는 투자에 비례해 곧바로 가시적인 성과가 나오지만 체육은 상당한 기반을 쌓기까지 지속적인 투자가 이루어져도 체감 할 수 있는 성과를 얻기 쉽지 않다. 그렇다고 도중에 투자를 멈추고 조금만 소홀하면 그때까지 조그맣게 기반을 쌓은 것조차 한꺼번에 무너지고 만다.

이런 점에서 울산시가 제대로 스포츠 인프라에 투자를 시작한 것은 이제 겨우 10년밖에 되지 않는다. 2005년 제86회 전국체전 덕분이었다. 전국체전 유치를 위해 문수체육공원을 중심으로 축구장, 수영장, 실내사격장, 테니스장, 인라인롤러장, 풋살장 등 대 규모 체육시설들이 신설되면서 전국 규모 대회를 치를 수 있는 광역시에 걸맞는 시설들을 갖추게 됐다. 최근에는 문수야구장이 개장돼 프로야구 경기도 열리고 있다. 전체적으로 축구경기장이 27개로 다른 체육시설에 비해 많은데서 보듯 울산이 축구의 도시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물적 인프라에 견주어 인적 인프라는 열악하기 짝이 없다. 울산시 체육회 직원은 모두 13명에 불과하다. 전국 최하다. 울산시 체육회에는 45개 정가맹단체와 준가맹 4개, 인정단체 1개 등 총 50개 경기단체가 있다. 여기에 럭비, 세팍타크로, 수상스키는 관리단체다. 13명만으로 이들 경기단체들을 효과적으로 관리한다 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예산도 당연히 전국 최하 수준이다. 올해 울산시 체육회의 총 예산은 110억 원이지만 육상 사이클 등 울산시청 5개 팀과 수영 복싱 등 울산시 체육회에서 육성하고 있는 8개 팀 등 13개 팀 감독, 코치, 선수 84명의 인건비와 훈련비를 제외하고 나면 70억 원에도 못 미친다. 다른 종목에 제대로 쓸 수 있는 훈

련비조차 없는 셈이다. 지난 8월 28일 취임한 울산시 체육회 김헌득 사무처장은 “울산시 체육회가 인원이나 예산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 같다. 외부에서 보기에는 체육 회가 일을 하지 않는 것 같이 느끼고 있다”면서 “효율적인 선수 관리가 되도록 담당 책임제로 조직을 바꾸는 등 새로운 체육 행정 플랜을 도입할 예정이다”고 말했다. 기초를 단단히 다지 면서 차근차근 한걸음씩 전진하는 체육회, 그리고 작지만 강한 체육회, 바로 울산시 체육회가 지향하고 있는 목표다.

아시안게임 종합 2위의 숨은 공신 … 울산체육의 저력
울산시 체육은 사실 모든 것이 열악하다. 시작할 때부터 체육은 경남의 한 변두리에 불과했으며 광역시로 승격하고 난 뒤에도 이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울산 체육은 이러한 어려운 여건에도 꾸준히 우수선수들을 배출했다.

바로 작년 10월 4일 막을 내린 제17회 인천아시아경기대회 성적이 이를 증명한다. 울산시 출신이거나 울산 소속 국가대표 선수들이 따낸 메달은 금메달 7개를 비롯해 은메달 8개, 동메달 8개로 모두 23개. 우리나라가 인천아시안게임에서 딴 금메달 79개, 은 메달 71개, 동메달 84개 등 총 234개 메달의 정확히 10%다. 종합 2위의 숨은 공신이다.

▲ 석지현 선수

금메달리스트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사이클의 강동진(울산시 청)을 비롯해 배드민턴의 이현일(MG새마을금고), 양궁의 석지현 (현대모비스), 레슬링의 정지현(울산남구청), 태권도의 조철호(삼 성에스원), 이다빈(울산 효정고), 카누의 조광희(울산시청) 등이 다. 어느 메달리스트건 나름대로 사연이 있기 마련이지만 울산시 소속 선수들의 메달은 우리나라 체육에 선구자적인 역할을 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값지다.

먼저 2006년 도하아시안게임 경륜경기인 남자 게린(경륜) 금메달리스트인 강동진은 취약종목으로 손꼽히던 단거리인 스프린트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따내 당당히 우리나라 사이클 새 역사의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한국 배드민턴의 맏형으로 두 번이나 국가대표 에서 은퇴를 발표했던 올해 35살의 이현일은 경험 많은 선수가 필요하다는 국가의 부름을 받고 복귀해 5시간 30분의 피 말리는 혈투의 마지막 주자로 나서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이후 12년 만에 만리장성의 벽을 넘었다. 우승한 뒤 후배들이 그를 가장 먼저 헹가래를 할 정도로 팀을 이끈 정신적 지주였다.

▲ 정지현 선수

또 레슬링 그레코로만형 71kg급에서 금메달을 딴 정지현은 그 동안 세 번의 체급변경, 잦은 부상과 부진으로 은퇴까지 고려하고도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나 2004년 아테네올림픽 60kg급 깜짝 금메달 이후 10년 만에 한풀이 금메달을 딴 불굴의 레슬러다. 1990년 베이징아시안게임 이후 24년 카약에서 금메달을 일궈낸 조광희는 ‘카누계의 박태환’이라 불린다. 무엇보다 조광희는 한국 남자 카누 사상 첫 올림픽 출전의 꿈을 이뤄줄 적임자로 평가될 정도이고 이제 21살밖에 되지 않아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태권도 국가대표 막내인 이다빈은 당차게 첫 출전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고 태권도 남자 82kg급 조철호, 양궁 컴파 운드 석지현도 나란히 금메달 대열에 합류했다.

은메달과 동메달을 딴 선수들뿐만 아니라 각고의 노력을 통해 국내 최고의 자리에 올라 명예스런 태극기를 가슴에 단 국가대표들, 이제 이들의 맥을 이어받아 울산 체육을 한 계단 업그레이드 시키느냐는 전적으로 울산 체육인들의 몫이다.

스포츠과학 중고 개교로 울산 체육의 중심지 역할 기대
광역시로 승격된 일천한 역사에도 불구하고 아시아를 제패하고 세계를 넘볼 수 있는 선수들을 지속적으로 배출한데는 울산시의 스포츠 저변이나 기반이 예상 이상으로 단단함을 보여준다. 이를 증명하듯 축구는 울산이 메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초등학교부터 대학, 일반부에 이르기까지 각종 전국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내고 있다. 시내를 가로질러 흐르는 태화강은 카누를 전국 정상으로 끌어 올리는 디딤돌이 됐으며 이밖에도 태권도, 역도, 사이클, 씨름, 테니스, 근대5종 등에서 꾸준히 전국 최강의 성적을 내고 있다. 무엇보다 울산에는 전국 최초라는 영예스러운 칭호가 붙은 체육 관련 2개의 교육기관이 있다. 바로 체육영재교육원과 울산스포츠과학 중고등학교다.

▲ 울산스포츠과학 중고 조감도

체육영역에서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거나 탁월한 재능을 갖춘 우수 인재의 조기발굴을 목적으로 2009년 설립된 ‘체육영재교육원’은 초등학생들이 대상으로 송정초등학교와 언양초등학교에서 운영하고 있다. 영재교육원은 입문반(1~3학년), 성장반(4~6학년) 으로 나누어 운동과 공부를 병행하면서 매주 토요일 4시간씩 운영된다. 특히 체육 영재로 선발되면 울산대학교의 협조를 받아 체육영재 프로파일 작성, 체육영재 유전자 분석, 운동 처방, 영양 평가, 운동 동작 분석, 심리 기술 훈련, 학력 증진 방안 강구를 통해 개인의 능력과 소질을 계발할 수 있게 된다.

체육영재교육원과 연계돼 2014년 첫 신입생을 받고 개교한 울산 스포츠과학중고등학교는 앞으로 울산 체육을 짊어지고 갈 스포츠 동량의 보금자리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전국 시도 가운데 유일하게 체육전문학교가 없는 울산은 2010년 9월 울산스포츠 과학중고등학교 설립추진위원회를 구성한 끝에 2012년 교과부의 심의를 통과해 올해 중학교 2학급 39명, 고등학교 3학급 65명 을 첫 신입생으로 받았다.

무엇보다 학교 이름을 단순하게 체육중고등학교라고 하지 않고 스포츠과학중고등학교라고 붙인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바로 스포츠과학중고등학교가 엘리트 스포츠 선수 육성과 함께 행정, 외교, 마케팅 등 스포츠 각 분야에서 활동할 전문가를 육성 한다는 뜻이다. 바로 체육영재교육원이나 스포츠과학중고등학교는 눈앞에 보이는 성과에 급급하기보다 먼 미래를 내다보고 울산 체육을 이끌어 갈 각 분야 전문가를 양성하겠다는 뜻이 담겨있다.

울산 체육인들이 스포츠과학중고등학교 개교를 두고 ‘전국에서 유일한 스포츠 전문가 양성 사관학교’라고 자랑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러한 다른 지역에서는 보기 힘든 체육영재 교육기관과 함께 강북과 강남교육지원청이 중심이 되어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종목을 특화해 육성하는 것도 울산시의 자랑거리다.

초등학교는 전 학교가 육상을 기본 종목으로 육성하면서 수영, 축구, 야구, 테니스, 정구, 배구, 농구, 탁구, 핸드볼, 씨름, 유도, 양궁, 체조, 배드민턴, 태권도, 롤러, 스키 등 18개 종목을 64개 초등학교가 나누어 집중 육성한다. 초등학교에서 육성하지 않고 있는 복싱 볼링 카누 요트 사이클 레슬링 역도 검도 근대2종 사격 펜싱 등 11개 종목을 추가해 29개 종목은 중학교에서, 그리고 골프 스쿼시 보디빌딩 3개 종목을 보탠 32개 종목은 고등학교가 육성한다.

하지만 울산시 체육은 아직 갈 길이 멀기만 하다. 가장 중요한 대학과 실업팀이 크게 부족한 탓이다. 고등부, 대학부, 일반부로 나눠 각 부별로 45개 종목 내외로 열리는 전국체전에서 세부종목 의 54% 정도밖에 출전하지 못하고 있다. 바로 울산시 체육의 현실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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