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수호의 시시콜콜 경제] ‘뱁새가 황새 쫒으려다 가랑이 찢어진다’라는 속담이 오랫동안 회자되어 왔다. 뱁새 입장에서는 우스운 얘기다. 황새 따라가려고 흉내 낸 적도 없었고, 더더욱 가랑이가 찢어진 적도 없으니 말이다.

뱁새는 몸길이가 13cm쯤 되는 우리나라 텃새다. 학명으로는 ‘붉은머리오목눈이’라고 하는데 참새목 딱새과에 속하는 새다. 우리나라 전역에 분포돼 살며, 맵시가 가볍고 동작이 재빠르다. 무리지어 관목 숲을 낮게 날면서 ‘씨씨씨씨’ 운단다.

최근 뱁새가 자의반타의반으로 가랑이를 찢기면서 씨씨거리고 운다. 지구상에 우리나라에만 있는 전세 세입자들의 분노와 좌절이, 우리나라 위주로 사는 뱁새의 우는 소리와 비슷하다.

지난 2월 아파트 매매가 대비 전세가 비율이 전국 평균 70.6%라고 KB국민은행이 발표했다. 서울 평균은 약 67%인데, 지역에 따라서는 8~90%대에 이르는 곳도 속출하는 양상이다. ‘미친 전세가’라는 탄식이 쏟아져 나오고, 중산 서민층들의 고통이 가중되고 있다.

아파트 매매가 대비 전세금 비율인 전세가율은 2013년 4월 63.3%를 찍은 후 22개월 연속 올라, 1998년 조사 이래 최고치를 매월 갱신하고 있다. 전세가가 곧 매매가를 추월할 것이라는 ‘전세의 하극상’이라는 신조어도 등장했다.

오르는 전세금을 받쳐줄 가계 소득은 정체 상태다. 지난해 상용직 근로자의 실질임금은 1.1% 올랐고, 임시직 근로자의 실질임금은 오히려 0.5% 줄었다. 2009년 이후 6년간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3.3%인데 비해 근로자의 실질임금 상승률은 1.3%로 경제성장률의 반에도 못 미친다.

전세금이 광대역 LTE 급으로 오를 때 소득도 같이 늘어주면 문제가 적을 것이다. 그러나 다락같이 오르는 전세금을 어떤 가장이 감당할 수 있겠는가. 애먼 담배라도 필라치니 담배 값도 작년에 비해 80%가 올랐다. 이런 젠장.

전세 만기가 돌아오는 가구는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 대출을 받아 추격 매수를 하느냐, 고액 월세로 전환 하느냐의 기로에 섰다. 물론 전세금을 올려주는 방법도 있으나 순수 전세는 물건이 귀하고 비싸다. 추격매수는 과도한 부채를, 고액 월세는 가계의 가처분 소득을 큰 폭으로 감소시키기 때문에 중산서민들의 시름이 깊다.

왜 이렇게 또 언제까지 전세 가격이 뜀박질을 할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우선, 앞으로 집값이 오르지 않을 것이란 심리가 팽배하기 때문이다. 집 살 여유가 있는 사람들도 집을 사지 않거나 집을 넓혀가려고 하지 않으면서 전세수요가 늘어났다. 지난 40년간 줄곧 오르기만 하던 집값이 2008년 이후 하락 조정을 거치면서 집값도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을 국민들이 체감했다. 2013년부터는 중소형 아파트를 중심으로 매매가가 소폭 오르는데 비해 전세가는 큰 폭으로 오르는 것이 이를 방증한다.

다음으로는 저금리 상황이다. 집 주인 입장에서는, 예금 금리가 2% 안팎인 상황에서 전세금를 받아 이자 소득세(15.4%)와 물가상승률(최근 연1.3%)을 감안하면 남는 장사가 아니다. 집값이 오르지 않은데 순수 전세를 고집할 이유가 없어졌다. 전세가격 1천만원당 월세 5만원으로 환산하는 방식이다 보니 전세값 5천만원 올리는 것보다 월 25만원을 받는 것이 나은 것이다. 이에 따라 임대차 주택 시장의 월세 비중(보증부 월세 포함)은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월세 전환이 늘어나면서 전세의 공급이 빠르게 줄어들어 전세가격 상승을 부채질 했다. 전세시장이 소멸돼 가는 것이다.

이러한 전세의 수요증가, 공급 감소 이외에도 재건축 아파트 주민들의 이주도 한 몫했다. 이는 도미노 현상으로 한 지역에서 인접 지역으로 파동을 치면서 범위를 넓혀가기 때문이다. 전세 수요를 증가시키는 원인이 됐다.

2년마다 오르는 전세금은 사람을 지치게 한다. 집 주인과 힘에 겨운 협상을 하고, 더 싼 집을 찾아 발품을 팔아야 한다. 2년마다 옮기려니 이사비용과 부동산 중개 수수료로도 만만치 않다. 아이들 학교 문제와 직장 출퇴근 등 생활환경도 바뀌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러한 비용과 불편을 감수하더라도 이전보다 더 싼 집을 구하기는 하늘의 별따기다.

급작스런 경제 위기가 아니라면 전세가격 인상은 금방 수그러들지 않을 것 같다. 전세금 인상을 야기하는 원인이 제거돼야 전세 값도 안정될 터인데, 그 원인이 당분간 없어지지 않을 것으로 예측되기 때문이다.

어떤 선택을 해야 하나.
정부 정책은 전세 또는 월세 사는 사람들의 편이 아니다. 대규모 공공임대 주택을 지어 서민층에 공급하는 정책은 추진하지 않는다. 임대주택 정책은 시늉만 내고 만다.
가계부채가 지난해말 기준으로 1089조원인데도 토끼몰이 식으로 빚 권해 집을 매매토록 부추킨다. 인구성장 악화, 저성장, 실질소득 정체 등 뉴노멀 시대라고 정부도 말하면서 주택시장에서는 성장시대와 같은 논리만 되풀이한다. 정부가 뱁새더러 황새 쫒아가라고 등 떠민다고 정말 쫒아가면 가랑이 찢어지기 십상이다.

최근 전세에서 매매로 전환하는 수요가 많이 늘었다. 전세 살던 중산서민층의 항복 선언이다. 집값 상승을 노린 측면보다 ‘미친 전세’에 지친 가장들이 더 큰 빚을 내서 아예 아파트를 구매하니 말이다.
올해 1~2월 7대 시중은행의 주택담보대출은 3조4천억원 정도 늘었다. 지난해 같은 기간의 약 4천2백억원 증가에 비해 8.2배가 증가했다. 주택 거래 비수기인 1~2월에 거래량이 늘고, 주택담보대출이 이런 큰 규모로 증가한 것은 유례가 없는 일이다.

적당한 소득이 있으면서 집값 대비 적은 빚으로 구매하는 것이야 반길 일이다. 이러한 매매는 경제 활성화 측면에서도 좋다. 그러나 과도한 빚은 어느 경제 시스템에서나 반드시 더 큰 희생을 요구한다. 더구나 디플레이션 시대에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빚은 목을 조르는 밧줄이나 다름없다.

전세가율이 높은 세입자들은 ‘깡통전세’를 경계해야 한다. 전세 만기 도래때 집값이 떨어지거나 살고 있는 집이 경매로 넘어가면 전세금을 온전히 돌려 받을 수 없는 일이 생길 수 있다. 내 재산을 지키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실천해야 한다.
대한주택보증의 ‘전세보증금반환보험’이나 서울보증보험의 ‘전세금보장신용보험’은 이러한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할 경우를 대비해 가입하는 보험이다. 소정의 수수료(연간 전세금의 0.2%)를 납부하면 되므로, 귀찮더라도 내 재산을 지키기 위해서는 가입을 권해 드린다.

내 분수에 맞는 선택을
얼마전 지인이 말문을 연다. 전용면적 59㎡(25평형) 아파트를 2억1천만원에 전세 산다고 했다. 3년반 전, 1억8천만원에 입주를 했는데 첫 만기때 3천만원 인상했다고 한다. 현재 주변 전세 시세는 2억5천만원. 얼마 남지 않은 두 번 째 만기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아파트 매매가는 그 동안 3억원에서 1천만원 정도 올랐다고 한다. 집값이 1천만원 오를 때 전세가격은 7천만원 오른 것이다. 지인은 기존 전세 빚도 있는데다 일 년에 천만원 모으기가 버거운 형편이다.

빚 없이 구매할 수 있는, 지은지 10년 미만의 연립이나 다가구를 넌지시 추천했다.최소한 1억원 이상의 빚을 내서 3억1천만원짜리 아파트를 사는 것은 소득대비 무리라고 생각했다. 또한 6억2천만원 아파트를 구매하면서 3억3천만원의 대출을 받은 사람을 만난 직후였기도 했다. 은행에 빚 갚으며 인생 저당잡혀 사는 것보다 빚 없이 내 집에서 살며, 형편될 때 더 넓은 집을 구매하라는 조언이었다. 우리가 마주한 경제 위기는 과도한 빚에 대해 이중으로 희생을 요구할 수 있으므로 천천히 느리게 가라고도 했다.

집을 사지 말라고 부추키는 것이 아니다. 추후에 감당하지 못할 빚을 경계하라는 말이다. 사람들의 형편은 만인만색이다. 내 소득의 증감여부, 현재의 빚과 자산, 주택 형태 등 고려해서 결정해야 할 경우가 사람마다 모두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세상살이 원리는 의외로 간단하다. 세상에는 공짜 없다. 내 분수에 맞게 소비해야 한다는 말이다.

사회가 뱁새 가랑이를 찢으려 덤비는 시국이다. ‘이래도 집 안 살래?’라는 협박이다. 당국은 빚을 권하면서 빚을 충분히 관리할 수 있다고 하는데 그런 절묘한 수가 있을 리 없다. 집 값 상승시대는 끝났다고 하는데, 빚내서 집사라는 폭탄 돌리기에 내몰린 힘없는 중산서민들의 늘어진 어깨가 안쓰럽다.

뱁새 둥지에 알을 낳는 뻐꾸기를 아시는지.
뱁새는 봄에서 초여름 사이에 알을 낳는데, 뻐꾸기가 자기 알을 이 둥지에 섞는다. 뱁새는 먼저 부화한 뻐꾸기 새끼에게 먹이를 부지런히 먹인다. 적갈색의 아름다운 등을 가진 뱁새는 관목 숲을 나지막이 날며 먹이를 물어온다. 뻐꾸기 새끼는 뱁새 알과 새끼들을 둥지 바깥으로 밀어내 버린다.

뱁새는 뻐꾸기 새끼의 몸이 자신보다 더 커질 때까지 열심히 먹이를 먹여 키운다. 황갈색의 아름다운 배를 가진 뱁새는 ‘씨씨씨씨’ 울면서도 재빠른 몸짓으로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이 노동을 반복한다. 어느 날, 뻐꾸기 새끼는 둥지에 똥만 퍼질러 놓은 채 자기의 하늘로 날아가 버린다.

난 뻐꾸기인가, 뱁새인가. 가랑이 찢기는 지친 뱁새들의 신중하고 현명한 결정이 필요할 때다.

(추신 : 새끼 뻐꾸기는 둥지를 떠나고도 7일 정도 더 뱁새에게서 먹이를 받아먹는 A/S를 요구한다는 사실은 아이고, 차마 말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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