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우부장

[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경성방직] 국내 최대 복합 쇼핑몰 영등포 타임스퀘어 한편에 90여 년 전 근대산업의 시초를 간직한 곳이 있다. 거대한 공업지대였던 영등포의 대표적인 면방업체 ‘舊 경성방직 사무동’이 그것이다. 이곳에 일제 강점기, 진정한 독립을 추구했던 기업인들의 숨결이 스며있다.

1919년 일본인 소유의 피혁 공장이며 벽돌 공장만 두 엇 있던 영등포 일대에 민족 기업 경성방직이 들어섰다. 훗날 동아일보를 창립한 인촌 김성수가 조선인들이 세운 경성직뉴(京城織紐)를 인수 확대해 현재의 영등포 타임스퀘어 부지 5천 평에 마련한 방직 업체였다.

경성방직은 설립 당시 자본금 100원(현재가치 약 1,200억 원)을 전국을 돌며 지방 유지들로부터 1인 1주식 방식으로 전개해 설립한 ‘최초의 조선인 주식회사’라는 점에 의의가 있다.
국내 최초의 주식회사로 기록된 경성방직. ‘내 살림은 내 것으로’라는 구호를 내걸고 국산품을 애용하자는 조선물산장려운동이 한창이던 당시 우리 옷 역시 자급자족하자는 취지 아래 경성방직은 일본인 소유의 조선방직에 맞서 경쟁한 민족기업이기도 하였다.

경성직뉴 시절의 ‘직녀성’부터 경성방직의 첫 광목 삼성과 삼각산 표는 생활필수품이었던 의류 소재의 자급자족 효과와 무역 수지를 개선해 우리 경제의 활로를 개척하는 신호탄이 됐다.

경성방직의 첫 상표였던 ‘태극성’엔 일화 하나가 얽혀 있다. 당시엔 조선총독부가 아닌 일본 정부가 직접 상표등록업무를 봤기 때문에 조선의 상징이었던 태극 문양을 본토 관리들에게 교묘히 설명하는 우여곡절 끝에 상표 등록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예상대로 태극성은 물산장려운동과 함께 ‘태극성은 우리 것’이라는 조선인들의 인식이 확산됐고 드디어 일본산 ‘三A’보다 높은 가격에 팔려나가는 쾌거를 이루기도 하였다.

일본 자본이 90%가 넘었던 1930년대, 만주로까지 진출하며 근대 방직 산업의 초석을 다졌던 경성방직. 훗날 창립자였던 김성수 김연수 형제의 친일행적이 공개되면서 그 업적들이 논란의 대상에 오르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에 앞서 일제강점기 민족 산업을 일으켜 다른 방식의 독립을 추구했던 민족기업으로의 가치는 역사적 사실로 남아야 하지 않을까?

    <경성방직 편> 프로그램 다시보기 : http://tvcast.naver.com/v/68029

tbs TV에서는 서울 일대에 남았거나 변형된 근현대문화유산의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제작을 통해 서울의 역사 문화적 의미와 가치를 고화질 HD영상으로 기록하고 있으며, 프로그램은 네이버 TV캐스트(http://tvcast.naver.com/seoultime) 또는 tbs 홈페이지(tbs.seoul.kr)에서 다시 볼 수 있다.

[수상 약력] 2013 미디어어워드 유료방송콘텐츠 다큐멘터리 부문 우수상 수상,
           2014 케이블TV협회 방송대상 PP작품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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