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짱구 박사의 행복한 교육] 북한이 남침을 못하는 여러 이유 중의 하나가 ‘중2가 무서워서’라는 우스개 소리가 유행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처럼 중2가 되는 또래의 아이들이 자아 형성 과정에서 겪게 되는 여러 가지 혼란이나 은연중에 공부를 강요하는 외적 환경에 대한 불만 그리고 소심한 사회적 반항 등의 특성이 부모님 입장에서는 예고도 없이 갑작스럽게 다가오는 것처럼 느껴져 이런 말이 생긴 것 같습니다.

우리들은 ‘중2병’을 앓고 있는 아이들과 과연 제대로 된 소통을 해 왔던 걸까요?

물론 다는 아니겠지만 이 시기는 아이들의 입장에서 보면 아마도 “부모님과 선생님께서 내 말을 잘 들어주지 않으시면서, 공부와 성적 이외의 다른 것에는 관심이 없는듯한 어른들의 소통 방식에 대한 불만의 시기”라고 정의될 수 있지 않을까요? 반면에 일부 어른들의 입장은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그다지 이유도 없이 예민하고 신경질 내며 본인 교육을 위해 육체적/정신적으로 희생하는 부모님과 선생님의 노고도 모르는 배은망덕한 철 없는 아이들”로 정의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 어른들의 대부분은 아이들의 사춘기가 어느 순간에 갑자기 왔다고 이해 하시겠지만, 사실 누구에게나 그러한 결과가 나타나기까지 시나브로(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조금씩) 눈에 띄지 않는 오묘한 성장 과정이 있습니다. 이 시기에 있었던 많은 정서적인 대화와 상호작용이 아이의 성격과 인격을 형성하는 데 상당한 기여를 한 것으로 보입니다. 주변의 아이들을 잘 관찰해 보면, 유치원 혹은 초등생인 유년 시절부터 부모님과의 대화가 매우 풍부한 아이들은 현재도 스스럼 없는 대화가 매우 당연하며 이런 아이들의 대부분이 중2병을 앓지 않거나 경미하게 보내는 반면에, 질풍노도의 혹독한 시절을 보내고 있는 아이들은 부모님과의 학업 갈등이나 소통의 문제가 많았던 경우가 대부분 이었습니다.

사춘기의 아이들은 육체적으로는 제2차 성징이 나타나고 정신적으로는 자아의식이 매우 높아지는 시기입니다. 이 세상에 대해서 무언가 좀 알 것 같기도 하고 때로는 어른들의 부당함이 눈에 보이기 시작합니다. 잘 아시다시피 부모님께서 모범적이고 솔선수범하지 않는 상황에서 일방적인 훈육만으로는 아이들이 맘속에서 우러나는 자발적인 학습 동인을 이끌어 내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 참고로, 이는 학문적 연구결과가 아니라 저의 미숙한 경험을 토대로 한 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오니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실천이 쉽지는 않으시겠지만 부모님의 이런 태도가 도움이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첫째, 아직 사춘기가 오지 않은 초등학생 이하의 어린 아이라면 남과 비교하기 위한 공부의 스트레스로부터 완전히 해방시켜 주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다만, 즐겁게 공부하는 법, 고등학교 과정을 위한 내공 쌓는 법 그리고 삶이 즐거운 인성 기르기 교육에 집중하시는 것이 아이들을 행복하게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초등학교를 다니는 기간은 무려 6년 입니다. 짧게 보지 마시고 공부와 친해지고 즐거워지고 건강해지는 방법을 함께 찾아 나가면 사춘기가 없는 즐거운 학교 생활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필자의 둘째 아이가 8년전 쯤에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국어 받아쓰기 퀴즈에서 두 번인가 빵점을 받아 왔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내 아이가 빵점이라는 사실이 몹시도 흥미(?)롭고 궁금하기도(사실은 화가 났을 수 도) 하여 도대체 무슨 이유인 지 알아 보았던 적이 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우리 세대의 받아쓰기 채점 기준과 지금의 받아쓰기는 매우 많이 달랐습니다. 글자 자체를 묻는 것이 아니라 글자와 단어 사이의 띄어쓰기, 마침표와 따옴표의 위치까지 맞아야 정답으로 인정하는, 아마 어른들에게도 매우 어려운 받아쓰기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물론 교육적으로 의도하는 바는 있겠지만 초등학교 1학년 아이들에게 이런 짐을 지우는 교육 과정을 설계한 사람들과 논쟁하고 이를 탓하기에는 우린 사실 너무 바쁘죠. 이런 교육 과정이라면 100점이 아니라 1,000점이라도 의미가 있을까요? 초등학교 1학년부터 내 아이가 뒤쳐질까 싶어 받아쓰기 10점이라도 더 맞기 위해 8살짜리 초등학생을 뺑뺑이 돌리지는 않는 지 모르겠습니다. 그 때의 빵점에 대한 경험이 지금 중학생인 아이에게는어떻게 다가올까요? 당연하게도 기억도 안 나겠지요. 돌아보면 그런 경험도 문제 없었습니다. 우리가 학창 시절 성적표에 “가”, “양”이 좀 많이 있다고 해서 지금 우리 삶에 큰 지장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초등학교때 점수에 연연한 아이들, 사실은 아이들이라기 보다는 옆집 아이와 비교하는 우리들 부모님이죠. 이들이 중학교를 가게 되면 부모님들의 정확히 2/3 이상이 첫 중간고사 시험에서 큰 상심을 경험하게 됩니다. 굳이 점수로 표현하면 초등학교때 보통 평균 80~90점을 넘는 우리 아이가 아마도 반에서는 상위권일 줄 알았는데, 반에서 중간 혹은 그 이하의 성적을 첫 경험하게 되지요. 초등학교에서 바르게 공부하기 내공을 쌓지 않은 아이들은 주요 과목별로 허점을 찌르는 중등학교 선생님의 시험에 깜짝 놀라는 시기가 됩니다. 중학교부터는 어느 정도 성적으로 순서를 내야 하기에 초등학교 때처럼 무작정 쉬울 수가 없는 겁니다. 우리들도 다들 경험 하셨잖아요.

여담입니다만, 경제적으로 엄청난 성장을 이룬 우리나라가 유독 교육과 정치분야에서는 일부 시대를 거슬러 뒷걸음치고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최근 문제가 된 고위 공직에 있는 사람들의 성추행 사건, 국무총리나 장관들의 인사 청문회를 보면서 저런 사람들이 대한민국의 리더로 있는 한, 우리나라의 발전이 없다는 말들이 많았습니다. 맞습니다. 그러나 사실 긍정적으로 다시 생각해 보면, 정치적인 면에서 우리나라는 끊임 없이 많은 개선과 발전이 있었습니다. 아마도 몇 십 년 전만 하더라도 소리 소문도 없이 묻혔을 이런 사건들이 시민의식의 발전과 정보통신의 발달로 낱낱이 공개가 되고 법과 여론에 의해 지탄받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물론 아직까지도 부족한 것은 사실이지만 더욱 더 투명해지고 더 나아지는 큰 방향성에는 이견이 없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하지만, 교육 정책에 이르러서는 여전히 과거보다 답보 상태이거나 오히려 아이들 입장에서는 후퇴했다고 볼 수 있는 정책들이 남발되고 있습니다. 가장 최근의 대학입시 정책만 보아도 그렇습니다. 어느 누구도 장기적인 교육 정책에 의해 아이들이 행복해 하는 교육을 기획하고 있는 지는여전히 의문이며,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로 이어야 할 대한민국의 교육 로드맵이 대통령이나 교육감 재임 기간 정도로 축소된 오년지소계(五年之小計)의 수준밖에 되지 않는 현실입니다. 여기에는 일부 우리 부모님들의 비이성적인 경쟁적 교육열도 물론 한 몫을 했습니다.

어린이헌장에 의하면 '초등학생인 어린이는 따뜻한 가정에서 사랑 속에 자라야 하며, 좋은 교육시설에서 개인의 능력과 소질에 따라 교육을 받아야 하고, 즐겁고 유익한 놀이와 오락을 위한 시설과 공간을 제공받아야 하며, 예절과 질서를 지키고, 자연과 예술을 사랑하고, 과학을 탐구하며, 해로운 사회환경과 위험으로부터 먼저 보호되어야 하며, 학대를 받거나 버림을 당해서는 안됩니다. 몸이나 마음에 장애를 가진 어린이는 필요한 교육과 치료를 받아야 하고, 빗나간 어린이는 선도되어야 합니다. 어린이는 우리의 내일이며 소망입니다' 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능력과 소질에 따른 교육의 첫 걸음은 부모님과 함께하는 소통으로 아이들을 이해하는 것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행복한 공부를 위한 첫 단추입니다. 아이들 먼저 이해하기 2편에서 부모님들의 태도에 대해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김승환 박사]
한양대 공대 기계공학사
충남대 대학원 법학석사 / 법학박사 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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