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수호의 시시콜콜 경제] 공자가 제자들과 함께 길을 떠났습니다. 도중에 양식이 떨어져 며칠 동안 일행은 굶주렸습니다. 다행히 일행이 잠든 사이 제자 안회가 쌀을 얻어와 밥을 지었습니다. 부엌 앞을 지나가던 공자는 무쇠 솥 밥을 한 웅큼 손으로 먹는 안회를 보게 됩니다.

공자는 안회를 불러 그 밥으로 조상에게 먼저 제사를 지내라고 말합니다. 믿었던 제자의 못난 행동을 깨우쳐 주려는 스승의 마음이지요.
안회는 "스승님, 이 밥은 안됩니다. 제가 솥뚜껑을 여는 순간 천장에서 까만 재가 떨어졌습니다. 스승님께 올리자니 더럽고, 버리자니 아까워 제가 그 부분을 먹었습니다. 제 손을 탔으니 제사에 올리기에는 적당치 않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안회를 잠시나마 의심한 것이 부끄러워진 공자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이제까지 나는 내 눈으로 본 것을 믿었으나, 이제 보니 나의 눈도 완전히 믿을 것이 되지 못하는구나. 예전에 나는 나의 머리를 믿었으나, 나의 머리도 역시 완전히 믿을 것이 되지 못하는구나.“

보고 들은 것이 모두 진실이 아니라는 가르침입니다. 삼천 명의 제자를 길렀던 공자는 안회를 끔찍이 예뻐했습니다. 공자보다 30년 어린 안회가 스물아홉 나이로 세상을 뜨자 공자는 ‘하늘이 나를 버렸다’고 통곡한 일화는 유명하지요.

그로부터 2500여년 뒤, 공자의 가르침을 금융에 적용한 제자 격인 사람이 나타납니다. 조지 소로스입니다. 그는 유태인으로 헝가리 출신입니다.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했으며, ‘악랄한 환투기꾼’, ‘헤지펀드계의 전설’, ‘경제 철학자’ 등으로 불립니다.

펀드매니저로 월가에 자리잡은 그는 1969년 퀸텀펀드를 운용합니다. 퀸텀펀드가 운영되는 동안 누적 수익률은 4,000배에 이르렀을 정도였습니다. 1992년에는 파운드화를 공격, 영국 중앙은행인 영란은행 콧잔등을 후려쳐서 일주일 만에 10억 달러를 챙긴 일은 신화가 되었지요.

그가 경제철학자로 불리는 이유는 ‘재귀성 이론’이라는 철학이론을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재귀성 이론은 사회의 모든 현상은 인지기능과 조작기능이 서로 영향을 주는 상호순환관계를 통해 나타난다는 주장을 담은 이론입니다.

참 알쏭달쏭한 말이지요. 사람들이 보이는 현상을 인지하고, 그 것을 자기 머릿속에서 왜곡해서 받아들이는데 서로 영향을 준다는 것이지요. 안회가 밥을 먹는 것을 본 공자는 그 것을 인식했고, 머리 속에서는 ‘저 혼자 배불리 먹는다’는 조작 또는 왜곡이 일어난 것이지요. 인식과 조작 두 기능이 동시에 작용하면서 인식은 조작에, 조작은 인식에 영향을 주는 양방향 간섭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 이론을 주식시장에 견줘볼까요. 주식시장이 오를 때 돈이 몰립니다. 가치주든 성장주든 가리지 않고, 오를 때는 빚을 내서라도 주식시장에 사람들이 모여들지요. 주식가격이 오르는 것을 본 비이성적인 인식은 상황을 머리 속에서 조작하게 됩니다. 계속 오를 거라고 믿게 되는 거지요. 이렇게 과열돼도 되나 싶으면서도, 거품이 자가발전, 자기반영하면서 가속도를 냅니다. 탐욕이지요. 17세기 네덜란드 튤립버블과 2000년 초의 우리나라 IT 버블이 이랬습니다.

버블이 임계점에 이르는 시기는 반드시 오게 되어 있지요. 본질 가치와 거품의 간극이 너무 벌어진 것을 인식한 일부(아마 소로스 같은)가 ‘이건 아닌가벼’라고 할 때지요. 순식간에 탐욕은 공포로 바뀝니다. 절망은 이제 반대, 추락으로 가속도를 붙이지요. 무조건 몸을 던지고 봤던 낙화암 삼천 궁녀들처럼. 거품붕괴와 패닉은 이렇게 옵니다. 고란사의 종소리가 들려올 때 쯤이면 옛 영화가 아련할 때지요. 부동산도 이와 같습니다.

조지 소로스는 인간의 공포와 탐욕, 곧 심리를 이용하여 변곡점의 길목을 지키고 앉았다가 큰 돈을 벌었습니다. 공포를 이용해 싸게 사고, 탐욕을 이용해 비싸게 팔아치운 것입니다. ‘보이는 것만 보는 나의 눈과, 그것을 조작하는 나의 머리를 믿지 말라’는 공자의 가르침을 어기는 후학들에게 소로스는 크게 한방 날린 것이지요. 이 관점에서 보면 소로스는 공자의 제자라기보다는 공자스쿨의 ‘나쁜 선도부원’이라고나 할까요.

우리가 사는 시대는 탐욕과 공포가 교차하는 불안정한 사회입니다. 유례없는 1.75%의 저금리와 유동성으로 갈 곳 잃은 돈이 자산시장을 떠 다닙니다. 아파트 분양시장에 광풍이 불고, 분양권 전매에 1~2억원의 프리미엄이 예사로 붙는다고 합니다. 매매가에 이르는 전세가격, 건물 공실율이 10%가 넘어섰다는데도 수익성을 노린 돈들이 뭉치로 몰려듭니다.

디플레이션이 우려되어 기준금리를 내리는 것도, 경기가 나빠 돈을 푸는 것도 기업실적에 별 상관없이 주식시장에는 호재가 되고 있습니다. 미국의 고용률이 형편없어도 주식시장은 환호를 하고, 중국의 경기가 매우 우려스러워도 부양 기대감으로 주식시장은 무섭게 우상향입니다. 다들 “Bad is Good!"을 외칩니다. 정밀한 지식과 판단이 필요한 파생상품 시장에도 기초 지식없는 돈이 몰려 든다고도 합니다.

상황이 불확실할수록 기본 이치를 따져보아야 합니다. 아파트는 감가상각 되는 콘크리트 구조물 자산이고, 우리가 지불해야 할 사용료보다 너무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것이 아닌지 고민도 해봐야지요. 주식시장은 그 가치에 비해 가격이 너무 높은 것은 아닌지도 살펴보면서 시장에 들어가야 할 것입니다.

공자는 이러한 이치를 끊임없이 따져보고, 오류가 없는지를 살펴보라고 가르쳤습니다. 조지 소로스가 공자의 가르침을 공부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자칭 ‘실패한 철학도’답게 사람들의 인식과 조작의 오류를 돈벌이에 써 먹었습니다.

공자의 가르침을 되새겨 이치를 따지며 시장에 들어갈 것인지, 소로스처럼 변곡점의 길목에 걸터앉아 한 몫 잡을 것인지는 각자가 판단해야 할 몫입니다. 그러나 눈앞에 보이는 현상만을 보고 투자한다면 제2, 제3의 소로스에게 돈을 뺏길 것이라는데 오백원을 걸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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