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우부장

[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효창운동장] 지금의 효창공원은 1944년 이전에는 정조의 장남 문효세자가 묻혀있는 효창원이었다. 하지만 일제에 의해 문효세자의 묘역은 강제 이장되었고 그로 인해 효창원에서 효창공원으로 격하되었다.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의사 그리고 김구 선생 등... 다행히 광복과 함께 공원은 애국선열묘역이 되고 그로부터 10년 뒤 이곳엔 10만 관중의 함성이 울려 퍼졌다...
 
효창운동장은 1960년 10월 최초의 국제규격의 축구전용 운동장으로 완공되었다. 2만3000여 명의 관중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이고, 중앙의 축구장 외곽에는 육상경기 트랙이 설치되어 있다. 1960년대 이후 지금까지 옛 동대문운동장과 더불어 크고 작은 국내외 각종 경기가 개최되었고 지금까지 여러 가지 용도로 가용되고 있는 운동장이다. 

1959년 6월 아시아 축구선수권대회 유치 확정
그 해 11월 27일
공사 4개월 만에 국내 최초의 국제경기장 완공
1960년 10월 아시안컵 2연패 달성

당시 효창운동장에 울려 퍼진 애국가는 뜻깊었다. 승리의 기쁨도 컸지만 공원으로 격하된 옛 세자의 무덤이어서, 이후 이승만 정부가 애국선열의 묘역 들머리에 조성한 운동장이어서 더욱 슬픈 애국가였다.

운동장 건립 당시 이승만 정부는 애국선열 묘역을 이장하고 운동장을 건립하고자 계획하였지만 많은 반발로 인해 공사 중지 건의안이 통과되었다. 하지만 1959년 6월 아시안컵 유치가 확정되면서 이승만 정부에게 큰 명분을 안겨줬고 애국선열의 묘역을 남겨둔 채 바로 옆에 운동장을 건립하게 되었다. 운동장 건립 이후 애국선열의 묘역은 지속적으로 훼손되었다.

테니스장 설치(1966년)
골프장 건설을 위한 철탑 웅덩이 공사(1968년)
북한반공투사위령탑, 어린이 놀이터 조성(1969년)
대한노인회관 설립(1972년)

이후 광복과 함께 공원은 사적 (제330호)으로 지정되고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김구 선생들의 애국선열묘역이 되었다.
묘역이 사적으로 지정되고 2002년 백범기념관이 건립되면서 성역화를 위한 다양한 노력이 전개됐지만 효창공원은 여전히 시민들의 쉼터일 뿐이다
10만 관중의 함성 속에 이룩한 아시안컵 2연패. 그리고 한국 축구가 아시아 최강으로 군림할 수 있었던 홈 효창운동장. 그러나 거대한 운동장에 가려진 가슴 아픈 역사. 효창운동장의 역사적 의미와 사회적 가치가 추모 공간과 상생할 수 있는 방법, 그것을 찾는 일이 두 유산을 보전할 수 있는 일일 것이다.

   <효창운동장 편> 프로그램 다시보기 : http://tvcast.naver.com/v/710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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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 약력] 2013 미디어어워드 유료방송콘텐츠 다큐멘터리 부문 우수상 수상,
           2014 케이블TV협회 방송대상 PP작품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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