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짱구 박사의 행복한 교육] 2015년, 프로야구를 뜻하지 않게(?) 몇 번 관람하면서 느낀 소소한 개인적인 이야기를 들려 드릴까 합니다. 스토리텔링이 있고 지혜를 주는 야외 활동을 접하게 되면 세상을 보는 눈이 생기며 깊은 내공이 쌓이는 것은 물론이고 때론 삶의 윤활유가 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물론 극히 개인적인 사견이오니 재미 삼아 읽고 넘어가시기 바랍니다.

글의 이해를 돕기 위해 필자와 프로야구의 밀월 관계(?)에 대해서 먼저 밝힙니다.

국내 프로야구가 개막한 시점은 1980년대였습니다. 정확히는 1982년 이었습니다. 동해 바닷가의 멋진 절경을 자랑하는 대게 원조마을의 본고장 영덕이 필자의 고향이라는 이유와 중/고등학교를 대구(달구벌)에서 유학했다는 사실만으로 삼성라이온즈가 그냥 필자의 홈팀이 되었습니다. 그 땐 그랬습니다. 유일하게 아는 선수는 우리나라 프로야구 창단 첫 게임 첫 홈런을 친 삼성라이온즈의 이만수 선수였습니다. 그 이후로 간혹 스포츠 뉴스에서 삼성라이온즈가 이기고 지는 기사에 잠깐의 관심을 두는 정도였으며 1982년 프로야구 개막 이후로 약 30년이 지난 2012년 7월까지 야구장을 한 번도 가지 못했습니다. 아마도 큰 흥미가 없었다고 해야 할까요?

개인적으로 스포츠에 대한 관점은 필자 만의 아집이 있었습니다. “내가 직접 참여하지 않는 경기는 별로다.” 즉, 구경꾼으로서 보는 스포츠 경기는 재미가 없다는 자기 최면을 걸어 놓고 삶을 살아 왔습니다. 건강을 위해 뛰고 또 뛰었던 마라톤/사이클링이 좋았던 시절도 있었고, 탈출구가 없었던 회사원의 치열함으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배웠던 골프와 테니스 등도 간간히 친한 사람들과 함께하는 정도였습니다. 직장의 본사가 대전광역시로 이전함에 따라 대한민국의 중심, 대전광역시에서 살아온 지도 어언 20년이 지났습니다. 딸은 스포츠에 큰 관심이 없는 편이며, 아들은 나름 축구, 농구, 야구 등을 좋아했고, 역시 대전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대전을 연고지로 하는 한화이글스가 자연스럽게 아들이 응원하는 홈팀이 되었습니다.

프로야구 개막 후 대략 30년이 흐른 2012년 이었습니다. 아직까지는 아시아에서 가장 유명한 회식 메뉴인 “삼겹살 + 소주”를 벗어나 회사내 문화 회식의 일환으로 프로야구를 보기 위해 대전의 한밭경기장(현재는 한화이글스파크)을 찾았습니다. 이 날은 삼성라이온즈와 한화이글스의 경기가 있는 날 이었습니다. 당시에 한화이글스는 수 년 동안 꼴찌를 도맡아서 했음에도 불구하고 홈팀 응원에 열성적인 홈 관중들을 위해 타 팀에서는 “보살 팬”이라는 별명까지 붙여주는 상황이었습니다. 처음 관람을 간 날에 이른바 그 당시 ‘괴물투수’로 불리며 국내 최고의 투수로 자타가 공인하는 류현진 선수가 한화이글스의 선발 투수로 등판 했었으며, 한 때 미국 메이저리그를 달궜던 박찬호 투수가 한화이글스로 복귀하였고, 일본 프로무대에서 활약했던 아시아 최고의 홈런타자 이승엽 선수가 삼성에서 뛰고 있는 시절이었습니다. 그리고 한화이글스의 꼴찌 탈출을 염원하며 모셔온 노장 김응용 감독님도 있었군요. 어쨌거나 하필이면 이 날 류현진은 자신의 생애 최악의 투구(2이닝 8실점)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물론 한화이글스를 응원하는 아들의 안타까운 표정이 다소 아쉽긴 했었지만, 이 날이 저의 첫 프로야구 관전기였습니다.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TV 중계로만 보던 야구 경기와 직접 경기장을 찾아본 야구장의 분위기는 정말 말이나 글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 확연히 달랐습니다. 무엇보다 팬들의 응원과 함성이 어우러진 현장감은 TV가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먼 안드로메다 별에서 펼쳐지는 영역이었습니다. 이를테면 로마의 콜로세움에서 마지막으로 승리한 검투사가 로마 황제의 엄지 손가락을 땅으로 향하는 순간, 관객석에서 펼쳐지는 엄청난 함성이 상상되는 그런 분위기였습니다. 반면에, TV가 중계하는 모습을 보게 되면, 시청자는 카메라가 가는 방향으로만 보아야 하기 때문에 시야가 매우 좁아집니다. 즉, 우리 팀의 점수와 승부에만 집착하게 되고 일정 시간이 지나고 어느 정도 점수차가 나서 승부가 결정되는 순간 팬들은 채널을 돌려버립니다. 특히 경기장이 아닌 집에서 자신이 응원하고 있는 팀이 지는 경기를 즐겁고 행복하게 보는 것은 웬만한 득도 없이는 참 힘이 듭니다. 물론 경기장에서도 승부가 결정되었다고 믿는 분들이 경기가 끝나기도 전에 일어서는 경우도 왕왕 있습니다.

경기장에 가면 꼴찌를 하면서도 행복할 수 있을까요?

아마 그럴 수 없을 겁니다. 그러나 이 날, 전 꼴찌를 하면서도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여러 군데서 볼 수 있었습니다. 야구를 냉정한 승부의 세계로만 보지 않고 즐기는 방법을 야구장 여기저기서 발견 했습니다. 그리고 꼴찌임에도 야구장을 찾는 멋진 이들(진정한 보살 팬)의 마음을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 이해의 첫 번째는 현장의 함성과 먹거리입니다. 탁 트인 공간에서 시원한 생맥주에 치킨, 피자, 피데기 오징어와 함께 하는 시간은 비록 홈팀의 경기가 지고 있더라도 아쉽고 미진한 마음을 어느 정도 충족시켜 줍니다. 둘째는 좋아하는 선수, 치어리더, 그리고 이벤트 등의 볼거리입니다. 응원단과 함께 동작까지 따라 하는 열혈 팬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시간이며, 키스 타임이나 이벤트 타임에 당첨되는 몇 몇 팬들의 예상치 못한 기쁨, 파울 볼이나 홈런 볼을 재수 좋게 하나라도 잡는 행운을 누리면 그야말로 즐거운 하루가 됩니다. 셋째는 자신이 좋아하는 팀의 응원으로 인한 스트레스 해소입니다. 정말 놀랍게도 혼자서 대전 구장 전체가 들리도록 “최.강.한.화.”를 외치는 골수 팬이 있었습니다. 이 분에게는 이보다 더한 스트레스 해소법이 지구상에 존재할 리가 없다는 생각도 해 봅니다. 넷째는 TV로 보는 것과는 달리 전체를 보는 시야가 정말 넓어집니다. TV가 담을 수 없는 공간에서 벌어지는 엄청난 많은 사건들이 벌이지는 이 곳은 승패의 여부를 떠나 바로 “리얼 익사이팅 엔터테인먼트”의 공간이었던 것입니다. 8대 0으로 지고 있어도 홈팀의 선수가 안타를 하나라도 치면 엄청난 함성으로 격려해 주는 곳이 바로 여기였습니다. 많이 가보지는 못했지만, 프로야구 경기장에서 받은 느낌은 매우 긍정적이었습니다.

이 번 주말에 특별히 계획이 없으신 분들은 한 번쯤 홈팀을 마음에 정하시고 치맥 하나 사 들고 가보는 것도 좋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다만, 낮 술 한 잔은 매우 시원하고 건강에도 좋겠지만(?) 음주운전을 피하기 위해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만원 관중이 가득 찬 경기장에서 수 만 명이 펼치는 드라마틱한 “슬로우, 알레그로 그리고 비바체로 연결되는 파도타기 응원”을 한 번 (해)보는 것만으로도 소녀시대 공연보다 멋진 풍경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김승환 박사]
한양대 공대 기계공학사
충남대 대학원 법학석사 / 법학박사 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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