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혁 소장의 가족 남녀 M&B(Movie&Books)]

"결국 아이를 보는 것은 맨움(남자)이야.”
“그렇지만 나는 뱃사람이 되고 싶다구요! 난 아기를 데리고 바다에 갈 거예요.”
“안 돼. 인생에는 참아야만 하는 것이 있는 법이야. 때가 되면 너도 알게 될 거다.”
소설 ‘이갈리아의 딸들’의 첫 대목에 나오는 엄마와 아들의 대화다. 남녀의 성역할이 완전히 뒤바뀐 이갈리아(평등주의 유토피아 egalitarian+utopia의 합성어)라는 가상 세계의 분위기를 예고한다.
그 세계에서는 여자(움)가 바깥일을 하며 사회를 주도한다. 남자(맨움)는 집안일을 하며 아이를 키우는 종속적인 존재다. 맨움은 움으로부터 아이의 아버지라고 지칭 받아야 부성보호 혜택을 받으며 하우스바운드로서 생계를 보장받는다. 1년에 한 번 열리는 무도회가 끝나면 여성이 남성을 선택한다. 여성이 브래지어를 차는 게 아니라, 남성이 성기 보호대인 페호를 착용한다. 남성들은 결국 참다못해 남성해방운동을 벌인다.
노르웨이의 작가이자 여성운동가인 저자는 기발한 상상력을 통해 가부장제 사회의 모순을 들여다보게 해준다. 19년 전에 출간돼 페미니즘의 고전이 된 책이다.

이 책을 보면서 현실과 반대인 ‘저런 세상에 살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과 함께 안도의 한숨을 내쉬게 됐다. ‘그렇다면 현실에서 저런 경험을 하는 여성들의 심정은 어떨까’라는 걱정도 동시에 들었다. 남녀 문제도 입장을 바꿔서 생각하면 쉽게 풀 수 있겠다는 생각도 하게 됐다.

과거와 달리 여성의 교육과 사회진출이 활발해졌다. 여성의 대학진학률이 남성보다 높고, 남성 외벌이보다 맞벌이 가정이 더 많다. 그런데도 맞벌이 가정에서 남편의 가사노동시간이 아내의 20%밖에 안 되는 게 현실이다. 심지어 외벌이 여성보다 백수 남편의 가사노동 시간이 더 적으니 심각한 문제다. 집안일과 아이돌봄은 여성의 일이라는 성역할 고정관념 때문이다. 여성들이 가사와 육아 부담을 과도하게 떠맡다 보니 경력단절과 함께 직장에서도 임금과 승진 등 차별을 겪게 된다. 만일 이 소설처럼 남녀 입장이 뒤바뀐다면 이해하고 받아들일 만하겠는가.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회사 일과 집안일을 합해서 부부의 노동시간이 비슷해져야 한다. 맞벌이라면 당연히 집안일과 육아를 공평하게 분담해야 한다. 맞벌이 남편은 ‘남의 일을 도와준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내 일’로 알고 해야 한다.

데이트 비용과 신혼집 마련 비용을 남성이 주로 부담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데이트 비용과 신혼집부터 집안일과 육아에 이르기까지 남녀가 공평하게 함께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남성들도 힘들어도 눈물을 보여서는 안 되고, 가장으로서 생계유지의 책임을 홀로 짊어져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내려놔야 한다.

세상의 절반은 남성이고, 나머지 절반은 여성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최근 여성 숫자가 남성을 추월했다. 남녀가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해서 모두가 행복한 세상이 되면 좋겠다. 서로를 사랑할 시간도 부족한데 혐오할 시간이 어디 있겠는가.

▲ 김주혁 가족남녀행복연구소장

[김주혁 가족남녀행복연구소장]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초빙교수, 양성평등 전문강사, 폭력예방교육 전문강사
-여성가족부 갈등관리심의위원, 꿈드림 슈퍼멘토
-가정학 석사, 전화상담사, 웃음치료사
-전)서울신문 선임기자, 경영기획실장 등 역임

저작권자 © 미디어파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