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세상을 꿈꿔라 청춘이여, 뮤지컬 <사의 찬미>

김나윤 청춘칼럼니스트l승인2015.08.14l수정2015.08.19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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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윤의 문화오픈런]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아니오. 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할 수 없다. 짜여진 대사처럼, ‘네, 할 수 있습니다.’라는 말밖에 하지 못한다. 그렇지 않으면 ‘NG’이다. 대본대로 대사를 내뱉지 않는 배우는 당당히 무대 위에 설 수 없다. 성과주의가 만연한 한국사회는 현지인처럼 영어에 능통하고, 성실한 학교생활이 학점으로 드러나며, 인턴과 대외활동으로 다양한 경험까지 지닌 ‘완성된’ 청춘을 요구한다. 이를 바탕으로 일련의 대학생활은 스토리텔링에 입각한 ‘자소설’에 유려하게 녹여내야 한다. 기업에 입맛에 맞게 재단된 청춘들을 기다리는 것은 다분히 인격 모독적인 ‘압박면접’이다. 진리의 상아탑이라는 대학에서는 취업률을 위해 학과를 통폐합하고, 고통받는 청춘들에게 기성세대는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며 열정 페이를 강요한다. 우리는 컨베이어벨트를 따라 한 길로 움직이며, 같은 방향을 향한 채 사회의 입맛에 따라 만들어지고 있다. 그리고 어른들은 사회가 작동시키는 컨베이어벨트에서 낙오되는 것을 걱정하며 모두 ‘취업한 다음에’, ‘결혼한 다음에’, ‘아이 기른 다음에’로 청춘들의 욕망을 유보한다. 사회적 대본을 완벽하게 숙지한 우리 스스로도, 서로에게 어른들의 말을 되풀이한다. 오늘날 청춘들의 모습은 마치 정해진 극본에 따라 움직이는 배우와 같고, 마리오네트와 같다.

▲ 사진 : 네오프로덕션

1920년대 식민지 조선의 김우진과 윤심덕 또한 자유롭지 않은 청춘이었다. 실화를 재구성한 뮤지컬 <사의 찬미> 속, 조선 최초의 소프라노 윤심덕과 천재 극작가 김우진은 ‘사내’라는 미스테리한 인물이 쓴 대본대로 움직이는 마리오네트들이었다. 1921년, 전통과 모던의 과도기인 조선과 일제강점기의 현실 속에서, 우진은 가정과 부르주아라는 굴레에 심덕은 가난이라는 굴레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도쿄에서 청춘으로 살아가던 두 사람은 사내를 통해 만나게 되고, 세 사람은 함께 고국순회공연을 준비한다. 사내와 우진은, 사내가 내용을 정하고 우진이 쓰는 방식으로, ‘사의 찬미’라는 대본을 함께 썼다. 우진과 심덕은 사랑에 빠졌고, 사내는 우진과 심덕을 모티브로 희곡의 내용을 정했다. 하지만 사내가 쓴 ‘비극적인 결말’로 인한 의견차이로 사내와 우진은 크게 다투고 둘의 다툼 이후로 세 사람은 헤어진다. 그 이후 우진과의 사랑으로 인한 염문설으로 심덕이 비난받을 때 우진은 비겁하게 방관했으며, 우진은 사내와 심덕의 사이를 의심했다. 우진과 심덕은 도쿄에서 다시 만났지만 서로에 대한 신뢰를 잃은 채였다. 그리고 1926년, 우진에게 전달된 희곡 ‘사의 찬미’에는 1921년 이후 우진과 심덕의 일들이 세세히 열거되어있었고, 마침내 1926년 그들이 배 안에서 죽는다는 결말이 완성되어있었다.

이야기는 도쿄에서 부산으로 가는 관부연락선에서 시작한다. 숨을 조여 오는 사내와 죽음의 공포 앞에 우진은 신경쇠약을 보이며 두려움에 떤다. 가정과 부르주아라는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사랑도 신념도 지켜내지 못했던 우진은 다가온 죽음 앞에서, 삶의 이야기를 스스로 써야 함을 깨닫는다. 그렇게 우진은 이야기의 새로운 결말 쓴다. 심덕은 삶으로 위장한 죽음 ‘사내’와, 죽음으로 위장한 삶 ‘우진’ 사이에서 결국 우진을 믿는다. 자신이 원하는 결말을 관철시키려는 사내와 죽음과 허무에서 벗어나 생명력을 지키려는 우진과 심덕은 마침내 배 안에서 조우한다.

▲ 사진 : 네오프로덕션

우진 : (심덕에게) 우린 새로운 세상으로 갈 거야. 준비 됐어?
심덕 : (고개를 끄덕인다.) 응.
우진 : 우린 선구자야. 신세계를 찾아나서는 선구자.
                                       *
사내 : 제목, 사의 찬미. 제 3막, 1926년 8월 4일 새벽 4시, 관부연락선 도쿠주마루.
한 남자와 여자가 바다로 몸을 던진다. 캄캄한 어둠, 적막한 바다.
그로부터 3일 후, 남자와 여자는 이태리행배에 몸을 싣고 있다.
그렇게 그들은 새로운 세상을 향해 나아간다.
‘다시는 날 떠나지마’, ‘그럴게’, ‘다시는 달아나지마’, ‘그럴게’, 키스, 막. 지은이 김우진

우진과 심덕은 ‘배 안에서 죽는다’는 정해진 결말을 벗어나기 위해 바다로 뛰어든다. 정해진 결말과 숨통을 조여 오는 공포 앞에서 두 사람은 결말을 다시 쓴 것이다. 모든 굴레와 질서를 뒤로하고 망망한 바다 위로 뛰어드는 그들의 의지는 새로운 세상을 찾으려는 생명력의 발현이다. 그들이 바다로 뛰어들어 우진이 쓴 결말대로 이태리행배에 올랐는지, 아니면 바다에 빠져 죽게 되었는지는 작품에선 설명되지 않는다. 다만, 두 사람이 투신한 뒤 홀로 남아 우진의 결말을 태우며, ‘진실은 바닷속에 감춰라’라는 사내의 노래만 남을 뿐이다.

극 중 우진과 심덕을 둘러싼 가정과 부르주아, 가난이라는 굴레와 사내가 쓴 결말은 그들을 둘러싼 이중의 ‘구조’이다. 그 구조 속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상을 찾기 위해 바다로 뛰어드는 두 사람은 어리석고 무모해 보인다. 일면 두 사람의 결말이 허무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1926년 그들은 살아온 날보다는 살아갈 날이 더 많은 ‘청춘’들이었고, 정해진 질서를 전복시키는 것이 바로 청춘이 가진 힘이다. 정해진 대로 움직이는 마리오네트가 되길 거부하며, 모든 굴레와 질서 밖으로 탈주한 그들은 그렇기 때문에 ‘선구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관객마다 다양한 감상을 낳는 뮤지컬 <사의 찬미>가, ‘청춘들이 능동적인 삶을 찾아 나가는 이야기’라고 해석되는 이유는, 그들의 모습에서 오늘날 청춘의 모습이 읽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의 모습은 결정된 사회 구조 속에서 수동적인 존재로 살아가는 청춘의 은유로 느껴진다. 우진과 심덕은 그 정해진 결말에 투항하며 결국 자신들이 새롭게 결말을 쓰고 구조를 탈출한다. 비록 그것이 그들을 삶으로 이끌었을지, 죽음으로 이끌었을지 알 수 없을지라도 그 탈주의 생명력은 부인할 수 없이 강하다.

우진과 심덕의 결말은 영화 <설국열차>의 결말과 닮아있다. 계속해서 열차의 머리 칸으로 나아가는 커티스와 달리, 오히려 열차 밖으로 빠져나가자는 남궁민수는 우진의 모습과 닮아있다. 구조의 최상위로 오르는 것이 아닌, 그 구조 밖으로의 탈주는 열차 그 이상의 세계에 대한 시야를 열어준다. 우진과 심덕이 자신들을 바다로 내던졌듯, 남궁민수가 요나를 설원으로 나가도록 해주었듯, 새로운 세상에 대한 희망은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많은 청춘의 힘이다. 물론 지금 당장 모든 일체의 구조를 거부하고, 취업과 사회진출을 향한 모든 준비를 놓으라는 극단적인 말이 아니다. 다만, 기성세대의 말을 복화술 하는 인형으로만 남을 것이 아니라, 보다 능동적으로 어떻게 사는 것이 ‘가치’ 있는 삶인지 스스로 결정하고, 그 너머의 삶으로 시야를 넓히자는 제언이다. 물론 망망한 바다로의 투신과, 눈 내리는 설원으로의 탈주는 ‘지금까지의 삶’을 담보로 하는 것이겠지만, 다른 누군가가 아닌 나 자신이 쓰는 내 생의 이야기는 그 위험만큼 아름답지 않을까.

김나윤 청춘칼럼니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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