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나연의 ‘뚜껑 열기’] 영화 ‘국제시장’이 천만관객을 돌파하며 때 아닌 호황을 맞은 곳은 ‘꽃분이네’였다. 영화 속 황정민이 운영하던 잡화점의 실제 촬영지인 이곳은 부산 국제시장에 위치해 있다. 영화의 향수를 느끼고자 찾아드는 관광객으로 ‘꽃분이네’는 연일 붐볐다. 그러나 주인 신미란 씨는 가게를 폐업해야하는 위기에 빠졌다. 관광객이 몰려들며 땅값이 오르자 관리인이 터무니없이 높은 임대료를 요구한 것이다. 벨트나 지갑 등을 파는 작은 잡화점의 수입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금액이었다.

독보적인 문화 정체성으로 유명해진 곳은 필연적으로 땅값이 오른다. 이는 이미 수많은 선례로 밝혀진 공식이다. 젊은 예술가들은 임대료가 저렴한 변두리에 모여든다. 그들의 예술 활동은 침체된 거리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화랑이 늘어선 인사동 거리나 혜화 낙산공원 등지의 벽화마을이 그렇다. 거리는 개성과 다양성을 갖게 되고, 사람들이 찾아오기 시작한다. 거리 상권이 살아나 서서히 땅값이 오르며 예술가들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임대료가 형성된다. 스스로 일군 문화에 스스로가 쫓겨나는 역설이다.

이런 현상을 두고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이라 한다. 런던의 노동층 주거지역에 중상층이 대거 유입되며, 본래 터전을 가지고 있던 노동층이 밀려난 현상에서 유래되었다.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 일어나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은 뚜렷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인종과 계급의 갈등이 나타나고, 주거지를 위주로 나타난다. 반면 우리나라의 젠트리피케이션은 상업공간이 주가 된다. 예술가들이 빠져나간 자리에 온갖 프렌차이즈 카페나 식당이 들어서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전문가들은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용어가 불과 몇 년 전까지 전문서적에나 등장하는 용어였다고 말한다. 이것이 뉴스, 칼럼 등을 통해 대중에게 알려진 것은 그만큼 우리 사회가 자본주의에 노출되어왔음을 뜻한다. 인사동, 가로수길, 홍대 등의 ‘핫플레이스’는 이미 젠트리피케이션이 거쳐간 곳들이다. 1990년대 문화의 메카는 신촌이었다. 언더그라운드 예술인들이 모여있던 신촌이 번성하며 상권이 발달했다. 천정부지로 솟은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한 그들은 인근 지역으로 거주에 새 둥지를 틀었다. 그곳이 바로 지금의 홍대이다. 신촌의 젠트리피케이션이 홍대라는 새로운 상권을 만들어낸 것이다. 상권 창출은 분명 긍정적 효과이나, 홍대로 피난한 예술가들은 또다시 유랑을 떠나야했다.

90년대 문화 양산의 중심지였던 신촌은 이미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 술집과 나이트 클럽, 모텔이 줄지어 진 신촌의 거리에 자유로운 분위기는 더 이상 느껴지지 않는다. 이대와 신촌을 연결짓는 거리는 이미 죽어 중국인 관광객 유치에 힘쓰고 있을 뿐이다.

이것이 젠트리피케이션의 가장 큰 문제, 다양성이 거세된다는 점이다. 젊은 예술가들이 모여 일구어낸 자유의 숨결은 흔적 없이 사라진다. 그들이 떠난 자리를 게걸스럽게 채우는 것은 프렌차이즈 카페나 값비싼 레스토랑들이다.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이들의 발목을 붙잡기 위해 상가들이 줄지어 들어선다. 거리는 개성을 잃고 여느 곳과 다르지 않은 풍경이 이어진다.

그나마 본래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는 곳은 혜화이다. 마로니에 공원을 중심으로 몇몇 소극장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 주변은 이미 대형 프렌차이즈 가게로 만원이다. 인사동이나 서촌, 북촌, 홍대 등은 어떤 개성도 갖지 못한 채 비슷비슷한 모습을 갖추고 있다. 목 좋은 곳에 파스타집, 아메리카노가 6천원대인 분위기 좋은 카페테리아. 거리가 자가 복제되고 있다. 예술인들이 본래 자발적으로 형성한 문화는 시간이 지날수록 흐려지고, 결국 사라진다. 허물만이 남은 채, 속 빈 거리는 공허하게 울린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는 것을 느낀 사람은 발길을 끊고, 서서히 동네는 몰락해간다. 젠트리피케이션은 시작부터 이미 단명의 운명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신촌에서 홍대, 홍대에서 합정과 연남동으로 이어진 젠트리피케이션은 그 속도마저 가속이 붙고 있다. 과거 상권이 살아나고 임대료가 올라가는 주기는 대략 10년이었다. 그러나 최근 2,3년 안에도 이러한 현상이 완료되고 있다. 상업화의 속도가 갈수록 빨라지고 있는 것이다. 더 이상 예술인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고정화된 현상으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에는 문래동이 예술가들의 집결지로 각광받고 있다. 서울시의 지원으로 ‘문래예술공장’이 설립되었고 이미 250명의 예술가들이 둥지를 틀었다. 이들은 시의 보호 아래 작업소와 전시공간을 지원받으며 창작활동을 펼치고 있다. 해방촌에는 예술가들이 자발적으로 모인 오픈스튜디오도 존재한다. 연희동은 홍대와 근접한 거리성 탓에 호황을 누리고 있으나, 그마저도 최근 상가로 뒤덮이고 있는 실정이다. 개인의 노력과 함께 서울시와 문화재단의 관심과 보호가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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