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여솔의 청춘을 위한 넋두리] 요즘 가장 뜨거운 화두는 ‘유감(遺憾)’이 아닐까 싶다. 북한이 지뢰 도발에 대해 북한을 주체로 한 유감을 표명한 것을 사과의 의미로 볼 수 있느냐에 관해 뜨거운 논란이 일고 있다. 이를 두고 일부 정치계에서는 북한이 유감 표명 주체로 ‘북한’을 언급한 것은 19년만이라며 남북 관계 개선 측면에서 분명 외교적 의미가 있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사과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의견도 있었다. 명문화된 공동 보도문에는 모호한 표현들이 많았다. 또한 정부가 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을 요구하고, 북측은 이에 유감을 표명하고, 우리는 그것을 사과로 간주하고, 또다시 도발이 이어지는 게 북한의 계속되는 도발 패턴이라는 점도 결코 우리가 안심할 수 없는 이유다. 하지만 여기서 필자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북한의 숨은 의도 해석이 아니다. 유감의 외교적 의미가 어떻든 간에 무고한 장병들이 희생되는 것을 또다시 지켜봐야 했던 국민의 아픔을 달래기에는 그 표현은 역부족이라는 점이다. 북한이 도발에 대해 유감이라고 표현한 것, 그리고 우리 정부가 그것을 사과로 해석한 것 모두 필자에겐 ‘유감’이다.

▲ 사진=kbs 방송화면 캡처

시간을 조금 거슬러 올라가보자. 광복 70주년을 하루 앞둔 지난 8월 14일, 일본의 아베 총리가 전후 70년 담화를 발표했다. 과거 일본의 전범 행위에 대한 진정성 있는 사과와 반성은 역시 찾아볼 수 없었다. 침략과 식민 지배를 시대 탓으로 돌리는가 하면,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도 “명예와 존경에 깊은 상처를 입은 여성들이 있었던 것도 잊어서는 안 된다”며 소극적인 언급에 그쳤다. 차세대에 과거사에 대한 사죄 책임을 안겨서는 안 된다는 것이 아베 담화가 의도한 메시지였고, 이러한 내용은 한국을 포함한 일부 아시아 국가들의 평가와는 달리 일본 대내외적으로는 나름 긍정적인 평가와 공감을 이끌어 냈다. 사과로 둔갑한 사과는 과거사에 대한 더 큰 부담을 후세에게 안겨줄 뿐이라는 것을 아직도 일본 정부가 깨닫지 못했다는 것이 참 ‘유감’일 뿐이다. 지난 수요일 종로구 일본 대사관 앞에서는 제1193차 수요집회가 열렸다.  위안부 할머님들을 비롯하여 집회에 참가한 국민들이 천 번이 넘는 수요일 동안 일본을 향해 외쳤지만 아직도 그 울분 섞인 목소리가 일본에 닿지 않았다는 것 역시 ‘유감’이다.

▲ 사진=mbc 방송화면 캡처

제대로 사과하지 못하는 것이 비단 남의 일만은 아니다. 한 국회의원은 노동개혁을 주제로 열린 세미나에서 이주노동자에게는 최저임금 적용을 내국인과 달리해야한다는 망언을 내뱉었다. 외국인 근로자를 고용한 중소기업에 굉장히 부담이 된다는 억지스러운 논리였다. 외국인뿐 아니라 국민에게도 살기 힘든 나라인 건 마찬가지다. 요즘 2030세대 사이에서 ‘헬 조선’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대한민국을 지옥 같은 나라, 떠나고 싶은 나라라고 지칭하는 청춘들의 분노가 섞인 표현이다. 청년 열 명 중 한 명이 실업자인 현실에서 사실상 아르바이트만 잔뜩 만들겠다는 정부의 대책 없는 일자리 대책은 현실을 더욱 답답하게 만들었다. 정치인의 자녀 취업 청탁 사건은 타오르는 헬 조선 담론에 기름을 부었다. 사과와 위로는 신문 기사에서만 찾아볼 수 있었다. 그렇게 취업을 위해 졸업을 계속 미루는 NG(No Graduation)족이 된 청년들은 평생을 뒷바라지 해 오신 부모님들에게 유감스러운 아들딸이 될 뿐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유감인 세상이다.

유감스러운 상황에 대해 분노하는 것은 분명히 필요하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도 그 누군가에게 사과 없이 잘못을 행하고 있지는 않는지 되돌아보는 자세도 필요하다. 사과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유감 시대, 우리에게는 용기가 필요하다. 잘못을 인정할 수 있는 용기, 제대로 반성할 수 있는 용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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