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우부장

[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윤극영 가옥] 서울 강북구 수유동, 국립 4.19묘지 인근엔 동요 작곡가 윤극영 선생(1903∼1988. 동요작가·동요작곡가·아동문화운동가. 세칭 ‘반달 할아버지’)이 지내던 단층 주택이 있다. ‘윤극영 가옥(강북구 수유동 인수봉로 84길 5번지)’은 1977년부터 1988년 윤극영 선생이 작고할 때까지 산 집으로, 말년을 함께 보낸 장남 윤봉섭 씨가 2013년까지 거주하였다. 이후 서울시가 사들여 유품을 기증 받아 ‘서울시 미래유산’으로 보전하고, 2014년 10월 윤극영 반달 할아버지의 집으로 재단장해 개관하여 일반인에게 개방하였다.

1923년 동경 유학시절, 윤극영 선생은 소파 방정환 등과 함께 우리나라 최초의 어린이 문화운동단체인 ‘색동회’를 조직하였고 ‘어린이날’을 제정하였다. 일제 강점기 시기 말과 문화를 뺏긴 슬픔 속에 자라나는 아이들이 일본 노래에 물들 것을 염려해 1924년 동요단체인 ‘다리아회(합창단)’를 만들었다. 같은 해 방정환이 발행한 어린이 잡지 <어린이>에 선생이 작사․작곡한 <반달>과 <설날>을 발표했고, 1936년에는 우리나라 최초 창작 동요집 <반달> 발간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어린이 문화운동과 동요 창작운동을 전개했다.

“사라져가는 우리 풍속을 내 손으로 되찾아 너희에게 안겨주마.
드디어 첫 구절이 떠올랐다. ‘까치까치 설날은 어저께구요.’
<설날> 노래는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나의 첫 솜씨였다.”

그 무렵 박태준, 홍난파, 윤석중 선생 등도 주옥같은 동요를 내놓았지만 일제 강점기, 우리의 노래는 금지곡일 수밖에 없었다.

이후 윤극영 선생은 피아니스트였던 아내와 만주의 여러 음악학교에서 교편생활을 하며 창작열을 이어갔지만 해방 이후 귀국길에 중국에 체포돼 옥살이를 하고 가까스로 서울로 탈출하는 등 파란만장한 한때를 겪기도 했다.

윤극영 가옥은 지상 1층, 연면적 99.87㎡ 규모로 생전 모습 재현관, 유품전시관, 시민들의 문화공간으로 활용할 다목적실을 갖추고 있다. 가옥 작은 방에는 선생이 사용하던 탁자와 스탠드, 트랜지스터 라디오 등이 평소 그대로 전시되고 있어 ‘반달 할아버지’의 소박했던 생활의 흔적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게 한다. 관람은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일요일·공휴일 휴관) 운영되며,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동절기 오후 5시) 문을 연다. 관람료는 무료다.

소파 방정환 선생 등과 함께 일찍이 우리 아이들의 앞길에 등불 하나 달아주고자 했던 윤극영 선생 그리고 그의 동요들. 노래로 혹은 시로, 우리의 아픔을 어루만질 수밖에 없었던 시대, 선생의 희망 실은 하얀 쪽배는 지금도 우리의 마음속을 지나고 있다.

   <윤극영 가옥 편> 프로그램 다시보기 : http://tvcast.naver.com/v/97150

tbs TV에서는 서울 일대에 남았거나 변형된 근현대문화유산의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제작을 통해 서울의 역사․문화적 의미와 가치를 고화질 HD영상으로 기록하고 있으며, 프로그램은 네이버 TV캐스트(http://tvcast.naver.com/seoultime) 또는 tbs 홈페이지(www.tbs.seoul.kr)에서 다시 볼 수 있다.

[수상 약력] 2013 미디어어워드 유료방송콘텐츠 다큐멘터리 부문 우수상 수상,
2014 케이블TV협회 방송대상 PP작품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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