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창희의 건강한 삶을 위해] 가공식이던, 자연식이던 인간의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 중 특정하여 절대 먹지 않겠노라고 맹세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미치도록 먹고 싶은 초콜릿바 하나를 분루를 삼키며 참아낸 다이어터가 있다 치자. 어제뿐 아니라 앞으로도 그래야 한다면 그 정신적 자괴감이 얼마나 크겠는가. 눈을 감고 그 맛을 음미하며 맛있게 먹은 후 이를 닦고 잤다면 뭐 크게 달라졌을까.

필자가 늘 언급하지만 일상이 되지 말라는 거다. 다이어트에 실패하는 대표적 원인 중 하나가 상대적 박탈감이다. 남들이 즐기는 음식을 자신만 벌서듯 참아야 한다는 것, 인간의 원초적 욕구인 음식에 대한 선호를 포기해야 한다는 것은 형벌에 가깝다. 자신만의 고집스러운 틀 안에 갇힌 채 평생을 특별한 존재로 살아갈 수 있을까. 독극물이 아닌 이상 어쩌다 먹는 것으로 우리의 몸이 확연히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 시킨 치킨을 즐거운 마음으로 한, 두 점 먹는 시늉이라도 했다면 그 사람은 주위와 어울리며 건강 다이어트를 실천해 갈 확률이 높다. 예를 들어 심야에 꽃게를 쪄서 먹는다 치자. 딱딱한 껍질을 자르고 부수며 게 속살을 후벼 파봤자 얼마나 먹겠는가. 군침을 삼키며 그냥 침대로 가느니 입에 주는 약간의 즐거움과 노동을 선택하는 편이 낫다는 거다.

음식도 요령껏 먹으면 괜찮다는 것인데 여기서 필자의 비결을 하나 소개해 본다. 체지방 전환율이 높은 두 가지 탄수화물의 대표 음식이 흰 쌀밥과 밀가루임을 모두 잘 아실 것이다. 필자 역시 사람인지라 특히 좋아하는 음식 이 있는데 바로 라면이다. 강의하기 십여 년 전 필자의 몸무게는 80kg 정도였다. 그 당시 이틀에 한 번꼴로 김치와 부재료들을 잔뜩 넣은 라면을 즐겼는데 특이하게도 식용유를 듬뿍 붓고 라면을 끓이곤 했다. 성찬의 마무리는 면을 건져 먹고 남은 국물에 흰 쌀밥을 말아먹는 것이었다.

정제된 백색 탄수화물을 짜고 기름지게 만들어 먹는 식습관이 뱃살을 부추겼던 시절이다. 본인은 현재 14kg 감량 상태인 66kg의 체중을 6년째 균일하게 유지하고 있다. 물론 한 달에 한, 두 번이지만 이제는 자신 있게 라면을 즐긴다. 평소 관리가 된 사람은 어떤 음식이던 마다할 이유가 없지만 분명한 것은 원칙에 입각한다는 점이다. 면발이 당기는 날 분식집에 들어가면 필자의 단골 메뉴는 항상 떡라면이다. 그림자처럼 한 가지 주문이 수반 되지만, 식당 종사자들을 귀찮게 할 마음은 없다. 짜디짠 분말 수프를 완전히 빼 달라는 것이다. 일언반구 하지 않고 본인의 주문을 들어주는 식당은 없다.

의아해하는 것은 주위 손님들도 마찬가지다. 희한한 손님과의 의견 절충을 거친 후 드디어 종업원이 맹탕 국물의 라면을 들고 오면 필자는 아주 맛있게 라면 한 그릇을 비운다. 조리 당사자인 주방 아주머니가 옆에 앉아 이상한 손님을 지켜볼 때도 있다. 2,000mg의 나트륨이 배제된 라면은 비로소 원재료가 무엇으로 구성되었는지를 필자의 혀, 즉 미뢰에 정확히 알려준다. 염분이 과도한 상태에서는 느끼지 못했을 맛들, 즉 고소한 떡과 면, 파, 달걀 등, 음식 각각의 재료가 내는 고유한 맛을 느끼며 즐겁게 식사를 하는 것이다. 혹자는 맛을 본 후 싱거워 못 먹겠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는 뜨거운 맹물도 싱겁다고 말하지 않고 마시지 않는가. 입맛은 사나운 말과 같아 길길이 날뛰지만, 궁극엔 길들이기 나름이다. 수프를 하나 아껴주었음에도 필자는 식당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편이다. 음식은 주는 대로 먹어야 한다는 그릇된 인식도 그 기저에 한몫을 한다. 배추가 비쌀 때는 김치를 많이 먹을까 봐 소금을 넣어 끓여 내는 식당도 있다. 필자는 조미료도, 정제염도 들어가지 않은 음식으로 살고 싶다. 자연 식품 속에 포함된 나트륨의 양으로도 인간은 충분히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와 같이 떡라면 드실 독자분은 언제던 연락 주시길.

▲ 미디어파인 칼럼니스트 박창희 교수
저작권자 © 미디어파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