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원로 구술채록/영상녹화 첫 시사회 열려
8월 17일 오전 10시 30분. 대한체육회가 올해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스포츠인 역사보존 사업’의 핵심인 원로 스포츠인의 구술채록/영상 제작 1차 시사회가 열린 올림픽회관 13층 회의실.

▲ 시사회에 참석한 원로 체육인들. 왼쪽부터 최귀승(근대5종), 김두환(테니스), 이홍복(사이클), 김정행 대한체육회장, 임기준(빙상), 김영도(산악) 최윤칠(육상)

대한체육회 김정행 회장을 비롯해 구술채록/영상 제작에 참여한 최귀승(근대5종) 김두환(테니스) 이홍복(사이클) 임기준(빙상) 김영도(산악) 최윤칠(육상) 등 스포츠 원로들이 약간은 긴장된 모습으로 시사회를 기다리고 있었다.

김정행 회장은 먼저 구술채록에 참여해 준 원로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면서 “어려운 시절에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땀과 눈물로 이룬 소중한 가치를 담아 후대에 남겨주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이어주는 특별한 매개체가 될 것”이라고 치하했다.

이어 시사회에서는 1950년 보스턴마라톤을 제패한 함기용 원로(85)와 한국 사이클의 산 역사 이홍복 원로(81)에 대한 2편의 영상물이 상영됐다. 영상물은 각 20분 분량으로 구술 인터뷰를 중심으로 선수 입문에서부터 성장기, 금메달리스트로서의 절정기, 그리고 후배 육성과 은퇴 이후 전문가의 삶 등 스포츠인으로서의 생애 전반을 담았다.

시사회를 마친 뒤 임기준 원로는 “영상을 보니 감회가 새롭다. 대한체육회가 이런 사업을 추진해 줘서 너무 감사하다”며 고마움을 거듭 나타냈고 김두환 원로는 “헐벗고 못살 때 체육인으로 활약했는데 후배들에게 많은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는 시청 소감을 밝혔다.

한편 본 시사회에 앞선 8월 12일 같은 시간과 같은 장소에서는 스포츠역사 자문위원회 김용환 위원장을 비롯한 자문위원단, 스포츠인 역사보존 사업의 현장 업무를 맡은 대한체육회 스포츠역사발굴사업단 문호성 단장 등 직원, 그리고 현장에서 구술채록을 진행한 구술면담 연구원과 영상녹화와 편집을 담당한 대행사 직원까지 참석한 예비시사회를 가졌다.

“아직 아무도 가지 못한 길을 가고 있는 원로 스포츠인의 구술채록/영상 제작은 여기 모인 모든 사람들이 연대책임이 있다”는 다소 으름장 섞인 김용환 위원장의 인사말과 함께 시작된 예비 시사회에서는 자문위원들의 시청 소감, 구술면담 연구원과 구술검독 교수의 의견 발표 등 다양한 의견들이 쏟아졌다.

감동과 아쉬움 동시에 남아
“달리다가 힘들어 걷고, 걸으면서 뒤를 돌아보면 따라오는 선수가 없어 또 뛰고 …, 그러다가 힘들면 또 걷고 …. 그래서 워킹 챔피언이란 소리까지 들었죠.”(함기용 원로)

“우리나라에서는 선수용 자전거를 만들 수가 없어요. 그래서 일본을 찾아갔죠. 아무리 사정해도 안 보여줘요. 그래도 끈질기게 부탁해 간신히 만드는 모습을 봤죠. 모두 손으로 만들어요. 나도 열심히 봤죠. 그래서 한국에 돌아와 혼자 설계를 해서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선수용 자전거를 만들었습니다.”(이홍복 원로)

척박한 환경에서 스포츠의 길을 택해 정상에 선 두 스포츠 원로의 생생한 증언을 토대로 만든 영상물은 참석자들에게 뭉클한 감동을 안기기에 충분했다. 마라톤과 사이클을 우연하게 시작한 동기에서부터 제대로 된 시설이나 코치도 없이 관련 서적들을 구해 공부를 하면서 훈련 계획을 짜고 경기에 참가해 정상에 오르기까지의 과정은 그야말로 역경을 이겨낸 ‘인간 승리를 담은 한편의 드라마’나 다름없었다.

이날 참석자들은 2시간씩 3차례, 모두 6시간의 구술내용을 단 20분의 영상으로 스포츠 원로들의 모든 것을 담아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데 의견을 같이하며 전체 구성에서 합격점을 주었다. 그러면서도 두 스포츠 원로의 구술 내용을 뒷받침하는 자료화면의 부족과 현재의 생활상을 충분히 담지 못했다는 점에서 나름대로 아쉬움을 나타냈다.

“스포츠 원로들을 단순히 알리기 위한 홍보용이냐? 아니면 청소년들에게 꿈과 희망을 안겨주기 위한 교육용이냐라는 식으로 활용 용도에 따라 영상물이 달라져야 합니다. 선수생활, 은퇴이후의 삶 등 몇 가지 유형을 정해 제작함으로써 전 세대를 아우르는 가치 공유가 필요합니다.”(김용환 위원장)

“역사는 과거의 것이 아니라 미래 세대에 주는 교훈이라고 합니다. 선수생활에만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그 이후의 삶에 대한 더 중요할 수 있습니다. 이 점을 알기 위해 구술채록 전 과정을 공개하는 것도 고려해야 합니다.”(장경희 위원)

“스포츠 원로들이 가지고 있는 사진이나 다른 물품들을 많이 활용하고 주변 인물의 증언을 첨가해 스포츠 원로들의 이야기를 객관적으로 뒷받침하고 자료 화면을 좀 더 많이 활용할 필요가 있습니다.”(신다영 위원)

“영상 마지막에 스포츠 원로들의 연보를 넣어 준다면 시간적으로 짧은 영상물로도 원로들의 삶을 엿볼 수 있습니다.”(이정우 위원)

“구술 채록의 가장 큰 문제점은 역사적인 사실에 대한 정확성입니다. 철저히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손천택 위원)

▲ 대한체육회 김정행 회장이 참여한 체육원로들과 함께 시사회를 통해 구술채록 영상 제작물을 감상하고 있다.

자문위원들의 다양한 의견과 함께 실제 구술채록을 담당했던 연구원들의 감상평도 이어졌다.
함기용 원로의 구술을 맡았던 정용철 연구원(서강대 스포츠심리학과 교수)은 “전체 6시간을 20분 분량으로 편집한 영상은 처음 보지만 전체적으로 선수생활에만 초점을 맞춘 것 같다”면서 “함기용 원로는 선수로 은퇴한 뒤 은행 지점장까지 오르는 자랑스러운 부분들도 많은 만큼 은퇴 뒤의 활동상에 대해서도 조명을 해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뜻을 피력했다.

또 이홍복 원로와 면담을 한 임용석 연구원(고려대 체육교육과 강사)은 “이홍복 원로가 우리나라에서 불모지인 선수용 사이클을 만들어 명장이 되기까지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말했다.

구술채록/영상 제작과 편집까지 전 분야를 검독할 류태호 교수(고려대 체육교육과 교수)는 “전반적으로 딱딱한 자막과 비슷한 배경음악으로 단조로운 느낌을 받았다”며 “큰 감동을 주기 위해 화려하게 꾸미는 것 보다 모든 사람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줄 수 있는 편집이 필요한 것 같다”는 의견을 보였다.

연말에 아카이브시스템 구축을 통해 국민들에게 공개

창립 95주년을 맞은 대한체육회의 올해 최대 역점사업인 ‘스포츠인 역사보존 사업’은 ‘원로 스포츠인 구술채록/영상 제작’ ‘스포츠 영상(출판)물 제작’ ‘아카이브 시스템 구축’ 등 크게 세 가지로 나눠진다. 이 가운데 가장 핵심은 바로 이날 시사회를 가진 ‘원로 스포츠인 구술채록/영상 제작’이다.

대한체육회는 당초 올해 원로 스포츠인의 구술채록/영상 제작을 50명 이상으로 예정했으나 예산 배정이 늦어지는 바람에 우선적으로 만 80세가 넘은 27명을 대상으로 지난 4월에야 겨우 시작할 수 있었다. 이마저도 1956년 멜버른올림픽 복싱 은메달리스트인 송순천 원로(83)와 1973년 세계탁구선수권대회 감독과 대한탁구협회장을 역임한 천영석 원로(85)의 건강이 좋지 않아 채록이 불가능한 것으로 드러나 최종적으로 25명으로 조정됐다.

지난 7월 말까지 원로 12명에 대한 구술채록/영상 녹화는 마치고 영상 제작에 돌입했으며 나머지 13명은 9월 중순이면 구술채록과 영상녹화는 모두 마무리 될 전망이다.

구술채록/영상 제작은 구술 면담팀, 구술 검독팀, 영상 제작팀 등 3개 팀으로 구성해 운영했다. 구술 채록에 경험이 있는 스포츠 관련 학과 교수 8명을 연구원으로 구성한 구술 면담팀은 스포츠 원로 25명을 3~4명씩 분담해 사전 조사와 면담을 거쳐 2시간씩 3차례에 걸쳐 구술채록/영상녹화를 동시에 진행했다.

박정준 연구원(인천대 체육교육학과 교수)은 “스포츠 원로에 따라 자료에 대해 차이가 많은데다 일부 협회에서는 비협조적이어서 어려움을 겪었다”면서 “스포츠 원로들이 말 그대로 연로하셔서 이야기가 본인 중심인 탓에 객관적 사실 여부 판단이 힘들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또 “스포츠 원로들과 구술을 하는 동안 체육인으로 삶의 깊이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는 박 연구원은 “이런 이야기들을 많은 사람들에게 보급하고 나눠야겠다는 책임감과 함께 같은 체육인의 한사람으로써 자긍심을 느꼈다”며 깊은 감동을 받았다고 덧붙였다.

심지어 까맣게 잊고 있던 내용들을 찾아내 질문을 함으로써 스포츠 원로들이 아련한 추억에 잠겨 기억을 더듬으며 눈시울을 붉혔기도 했다고.

영상제작팀도 결코 만만한 작업은 아니다. 스포츠 원로 한명마다 각각 3차례에 걸쳐 구술채록/영상 녹화가 진행돼 때로는 3~4명씩 중복이 되는가 하면 6시간 분량을 20분으로 압축 편집하고 여기에 자료 화면까지 구해야 하는 등 밤샘 작업이 다반사였다. 이렇게 각고의 노력 끝에 만들어진 영상물과 구술채록은 구술 검독팀의 최종 OK 사인이 나야 마무리된다.

스포츠 영상(출판)물 제작은 공모전을 통해 당선된 두 편의 시나리오를 두고 TV와 영화사 등에 제작을 의뢰했으나 아직은 가시적인 성과는 없는 상태다. 부득이 할 경우 출판물로 대체할 계획이다.

구술채록/영상 제작과 스포츠 영상(출판)물 제작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바로 아카이브 구축이다. 아카이브는 이러한 스포츠 원로와 역사에 관련된 사진, 동영상, 물품 등을 저장해 놓고 원할 때 언제든지 열람이나 시청이 가능하도록 하는 일종의 저장고다. 원하는 자료나 목록을 얼마나 빨리 그리고 정확하게 찾게 하느냐가 아카이브 구축에서 최고의 고려 요소다. 아카이브 구축은 8월 20일 설계업체 선정에 이어 구축과 감리를 별도 업체에게 맡겨 최대의 시너지 효과를 낸다는 것이 대한체육회의 기본방침이다.

스포츠역사추진사업단 문호성 단장은 “전체 구술채록/영상 제작은 12월 초 종합 제작 발표회를 개최하는 한편 구술채록집, 사진첩과 구술채록 영상 DVD 등을 원로들에게 제공하고 완성된 구술채록 영상콘텐츠는 대한체육회 홈페이지에 디지털 아카이브 시스템을 구축해 국민들에게 공개할 예정이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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