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모의 테마토크] 지난 9일 방송된 케이블TV tvN 예능프로그램 ‘삼시세끼 어촌편 시즌2’(이하 ‘삼시세끼’) 1회가 평균 13.9%, 최고 16.8%(닐슨코리아)의 시청률로 전 플랫폼을 통틀어 1위를 차지하며 지난 시즌의 돌풍을 이어가고 있다.

‘삼시세끼’는 46살 동갑내기 차승원과 유해진의 우정과 더불어 꽤 성장한 산체와 벌이의 당당한 모습을 여름의 만재도를 배경으로 구수하게 담아냈다. 내용이나 화면만 놓고 볼 땐 전 시즌가 별로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럼에도 시청자들은 열광했다. 그 이유는 뭘까?

시청자들이 ‘삼시세끼’를 통해 바라는 것은 최근 대대적으로 개편한 SBS ‘힐링캠프’나 KBS2 ‘해피 투게더’ 같은 혁명이 아니다. 마치 1년에 한번, 혹은 몇 년 만에 겨우 찾아볼 수밖에 없지만 그래서 더욱 기다려지고 가고 싶은 외가를 찾는 심정으로 기다리기 때문이다. 매번 갈 때마다 새로울 환경도 없고, 엇비슷한 음식에, 질릴 법한 뻔한 잔소리를 들어야 함에도.

▲ tvn 방송화면 캡처

차승원과 유해진은 폭우를 뚫고 만재도에 도착한 뒤 정든 ‘세끼하우스’를 보더니 반가움을 숨기려 하지 않았다. 그게 바로 ‘삼시세끼’를 바라보는 시청자의 심정과 일맥상통한다. 배우인 차승원과 유해진이 연기를 했건, 진심어린 기쁨을 나타냈건 시청자는 차승원과 유해진을 MBC ‘화정’이나 영화 ‘베테랑’에서 보듯 하는 게 아니라 그냥 만재도의 ‘부부’로 본다. 그건 마치 1년간 기다린 끝에 찾아간 외가에서 친척 혹은 죽마고우를 만나는 심리를 관통한다.

‘삼시세끼’를 이끄는 차승원과 유해진의 상징적 의미가 당연히 최고의 미덕이다.

차승원은 모델 출신의 잘생기고 늘씬한 몸매의 조각미남 배우다. 영화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의 차가운 느낌이나 드라마 ‘너희들은 포위됐다’의 카리스마 넘치면서도 내면의 상처로 인해 남몰래 가슴앓이를 하는 캐릭터가 안성맞춤인 ‘상남자’가 바로 그가 대중에게 소비되는 이미지다.

하지만 사실 그는 코미디를 잘 해서 코미디로 성공한 영화배우다. ‘신라의 달밤’ ‘라이터를 켜라’ ‘광복절 특사’ ‘선생 김봉두’ ‘귀신이 산다’ ‘이장과 군수’ 등 연속해서 코미디 영화에 출연했고 모두 성공으로 이끌었을 만큼 코미디의 대가다.

▲ 영화 '이장과 군수' 스틸.

‘삼시세끼’의 ‘차줌마’는 그런 그를 그리워하는 예전 팬에게는 한동안 잊고 살았던 구수한 고향의 저녁밥 짓는 굴뚝 연기 냄새고, 그런 경력을 잘 모르는 요즘 팬에게는 신선한 퓨전요리다. 더구나 완벽하게 빈틈이 없어 보여서 때론 얄밉기까지 한 그가 의외로 털털한데다 요리까지 잘 하니 이젠 미워할 구석이 없다는 호르몬의 작용이 모든 시청자를 차승원에게 체질화되도록 만드는 것이다.

‘신라의 달밤’ ‘이장과 군수’에서 차승원과 ‘코믹 무공’ 대결을 펼친 연으로 친해진 유해진도 비슷하다.

영화배우 유해진 하면 ‘악역’ 아니면 ‘코믹’이다. ‘신라의 달밤’에서 차승원이 경주의 청소년 ‘짱’ 출신의 체육교사 역으로 허풍만 세고 행동은 약한 허세 캐릭터를 보였다면 유해진은 경주 폭력조직의 2인자로서 아부를 일삼다가 결국 경주 조직을 넘겨받는 조건으로 두목을 배신하는 야비한 ‘양아치’ 캐릭터를 그려내며 맞대결을 펼친 바 있다.

어쩌면 그 캐릭터 하나가 유해진이란 배우의 전체 필모그래피 및 대표 캐릭터를 잘 보여주는 상징일 수 있다.

▲ tvn홈페이지 화면캡처

그건 바꿔 말하자면 남들에겐 없는 유해진만의 강한 개성이고 강점이다. 하지만 단점도 있다. 그래서 그는 매우 강해 보이고 거친 느낌을 주며 낭만과의 괴리감을 던진다. 그런데 한때 ‘김혜수의 연인’으로서 섬세하고 지적인 매력을 세상에 드러내는 반전을 썼다. 그런 두 사람이 문명과 다소 동떨어진 만재도에서 ‘남편’과 ‘아줌마’가 돼 우정의 ‘1박2일’ 확장판을 찍는다. 이게 안 재미있으면 도대체 어떤 다큐예능이 재미있겠는가?

현재 각 TV 프로그램들은 ‘먹방’ ‘쿡방’을 대거 쏟아내고 있다. 다른 예능이라고 할지라도 먹거리는 필수 소재로 꼭 삽입한다. 양대 대표 예능의 키워드인 MBC ‘무한도전’이 한계극복이라면 KBS2 ‘1박2일’은 삼시세끼 해결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다.

또한 적지 않은 다큐멘터리는 시골 구석구석을 도는가 하면 산속 오지를 찾아가 그곳에서 문명과 담을 쌓은 삶을 사는 사람들을 취재하곤 한다. 그런 프로그램이 창궐한다는 것은 그만큼 도시의 사람들이 귀촌을 꿈꾼다는 증거다.

산 계곡 강 바다 등을 끼고 사는 삶 중에서 어떤 게 행복한가에 대한 취향은 각자 다르지만 바다가 생명의 고향이란 점 하나는 분명하다. 사람은 어머니 뱃속의 양수 속에서 유영하며 머물렀던 무의식 속의 기억 때문에 본능적으로 바다를 좋아하기 마련이다. 만재도는 바닷속의 삶과 떼려야 뗄 수 없다.

▲ tvn 홈페이지 화면캡처

차승원이 널리 알린 요리 재료 중의 하나가 거북손이다. 그건 바로 바다를 상징한다. 산 속에서 나는 것은 먹으면 좋은 것과, 먹으면 위험한 것 두 가지가 절반씩이지만 바다에서 나는 것은 먹을 수 있는 게 더 많다. 게다가 바다가 주는 재료는 모두 건강식이다. 육지의 고기는 많이 먹으면 고혈압 동맥경화 노화 등을 유발하지만 생선은 먹으면 먹을수록 좋다. 돼지나 소의 기름은 유해하지만 생선 기름은 유익하다.

게다가 만재도 같은 섬은 바다와 산의 특혜를 모두 누릴 수 있다.

사람의 본능은 그리스 신화가 전하듯 ‘잃어버린 반쪽’을 찾아 평생을 헤매기 마련이다. 하지만 현재 대한민국의 이혼율이 줄곧 OECD 회원국 중 1위를 차지하는 데서 볼 수 있듯 전체적인 정서가 결혼에 그리 호의적이지 못 하다.

그래서 예능 중 드물게 젊고 예쁜 여자가 희귀하지만 차승원과 유해진이란 상이한 이미지의 동갑내기 중년남자들이 펼치는 외딴섬에서의 삼시세끼 챙겨먹기 서바이벌이 식상하지 않고 정겨우며, 만날 가봐야 거기서 거기지만 그래도 매번 기다려지는 소풍이나 수학여행처럼 가슴 설레게 만드는 것이다.

과학의 발전은 사람을 게으르게 만들지만, 풍요는 오히려 사람을 소박하게 만들 수 있다. 그런데 그 풍요가 소수 특권층에 집중되고 그래서 그들이 소박함을 사치로 소비한다면 다수의 서민층은 그 소박함마저도 꿈이 되기 마련이다. 최악의 전세난과 취업난 등으로 서민경제가 결딴난 지금 그래서 만재도에서 삼시세끼 해결하기가 서민의 희망이 돼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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