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화 논평] 어느 듯 전국체육대회(이하 전국체전)가 96회째를 맞았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는데 무려 강산이 9번 변했고 4번만 더 치르면 100년이 된다. 우리나라 근․현대사 역사 가운데 지금까지 거르지 않고 이어지고 있는 전국 행사로 유일하게 남아 있는 게 바로 전국체전이다.

▲ 945년 자유해방 경축 전국종합경기대회(현 제26회 전국체전) 개회식에서 태극기를 들고 감격의 눈물을 닦고 있는 손기정(왼쪽).

전국체전은 근․현대사 유일한 100년 역사의 전국행사
1920년 제1회 전조선야구대회를 효시로 출발한 전국체전은 우리나라 역사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일제의 압제 속에서 저항, 극일과 건민의 이념으로 출범해 17년 만에 중단되는 아픔을 겪었다. 광복과 함께 정부도 수립되기 전에 ‘대한민국 KOREA’의 탄생을 세계에 알렸고 한국전쟁의 상흔을 간직한 채 가난에서 벗어나 선진국 대열로 들어서는 과정을 고스란히 지켜보았다. 상전벽해(桑田碧海)라는 말 그대로 우리나라 스포츠는 그동안 동·하계올림픽을 비롯해 월드컵축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등 세계 4대 이벤트를 모두 치르는 나라로 발전하기에 이르렀다.

체육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진 적이 있는 우리나라 50대 이상 국민이라면 아마도 전국체전에 잊지 못할 기억이나 추억들은 하나쯤 가지고 있을 듯하다. 자기 고향에서 전국체전이 개최되면 오전 수업만 하고 오후에는 한여름 땡볕에서 카드섹션이나 매스게임 연습에 갖은 고생을 했던 아찔한 고교 시절의 기억에서부터 개회식 입장권을 구하기 위해 안달하던 일까지 ….

최근 현역 체육기자에서 물러난 원로체육기자들의 모임인 한국체육언론인회에서 펴낸 ‘스포츠와 함께 한 열광의 세월’(부제 광복 70년, 체육기자들의 이야기)에 전국체전에 대한 재미있는 내용들이 있다.

연병해 원로기자가 쓴 ‘베리베리씽씽 민관식 회장님’편을 보면 전국체전에 처음으로 카드섹션이 도입된 1967년 제48회 전국체전을 위해 한성여고 학생들이 여름방학부터 10월 초까지 하루 3시간씩 고정위치에 정렬해 연습을 거듭하고 위치를 이탈할 수 없어 일부 학생들은 앉은 채 소변을 받아내기 위해 기저귀를 찼다는 에피소드가 나온다. 아마도 전국체전이 열릴 이맘때 쯤 이미 60대를 훌쩍 넘긴 당시 여학생들이 손자 손녀들에게 카드섹션 이야기로 꽃을 피울 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맹연습(?)을 한 덕분에 2,000여명으로 구성된 카드섹션단이 스탠드에서 펼치는 현란한 문자와 그림은 전국체전 최고의 볼거리였고 관중들의 끊임없는 박수갈채를 받으며 인기몰이를 했다. 카드섹션은 점점 진화해 움직이는 동영상까지 만들어내기에 이르렀지만 지금은 갖가지 IT를 활용한 기법들이 도입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지금도 스포츠 해설가로 명성을 떨치고 있어 원로기자라는 말이 어색하기는 하지만 신명철 원로기자는 어린 시절 전국체전에 대한 기대감으로 체육기자가 되어 전국체전을 취재했던 기억을 모은 ‘스포츠 소년의 꿈’이란 제목도 눈길을 끈다.

한 원로체육인은 “개회식 입장권만 있으면 당시 술집에서 아가씨 팁에다 때로는 술까지 공짜로 얻어먹었다”면서 6~70년대의 전국체전의 인기를 회고하기도 한다. 전국체전 기간에는 도둑이나 강력사건도 확연히 줄었다는 신문기사도 당시에는 단골 메뉴 가운데 하나였다.

전국체전 歷程은 우리나라 체육의 발자취
필자도 1980년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거의 빠짐없이 전국체전을 취재한 경험을 갖고 있다. 특히 1983년 인천 전국체전 때는 버마 아웅산 사건으로 졸지에 전국체전이 북한 규탄대회로 바뀌면서 응원 금지령이 내려졌는가 하면 1984년 대구전국체전 때는 당시 노태우 서울올림픽조직위원장에게 “조직위원장과 체육부장관 가운데 누가 직급이 높으냐?”고 물어 체육기자로 무식(?)을 스스로 드러내기도 했다.

이렇듯 전국체전이 체육기자들뿐만 아니라 대부분 체육인들이나 대한체육회 또는 지방체육회에서 근무를 한 체육행정가들에게 진한 향수를 느끼게 해주고 있지만 지금은 사정이 많이 달라졌다.

‘전 국민들의 축제’에서 ‘체육인들만의 잔치’로 전락했다. 심지어 일부에서는 전국체전을 격년제로 열거나 아예 대폭 축소해 올림픽종목만 개최하자는 의견들도 나온다. 실제로 2019년 제100회 전국체육대회부터 경기 종목 수는 올림픽 종목 28개에 개최지 선택종목 5개, 대한체육회 선정 종목 5개 등 모두 38개 종목으로 줄어든다.

참으로 한심스럽기 짝이 없는 발상들이다. 말 그대로 전국체전을 격년제로 열거나 올림픽 종목만 개최하면 가뜩이나 불균형인 우리나라 스포츠가 더욱 기형적이 될 수밖에 없다. 전국체전에 보통 45개 내외 종목(시범종목까지 합하면 47~48개 종목)이 열리는데 28개 올림픽 종목을 제외하고는 사실상 도태될 가능성이 높다. 지방자치단체들이 육성하고 있는 비인기종목들은 대부분 해체하거나 규모를 축소함으로써 스포츠 실업자 양산도 불 보듯 뻔하다.

▲ 지난해 열린 95회 제주 전국체전의 모습

1980년대 초까지만 해도 전 국민들의 관심과 시선을 집중시킨 최대 스포츠 축제였던 전국체전이 급격하게 인기가 떨어진 데는 분명 이유가 있다. 1986년 아시안게임, 1988년 올림픽을 거치면서 범세계적인 스포츠 이벤트에 길들여진데다 프로 스포츠 활성화가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이런 사정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각 시도에서는 전국체전을 유치하기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다. 한때는 각 시도의 대표 도시들보다 중소도시들이 유치 경쟁에 뛰어 들면서 한때 과열 양상까지 빚었다. 과열 유치 경쟁을 막기 위해 전국체전 개최가 오래된 시도부터 순회하는 식으로 변경도 했지만 여전히 전국체전은 지자체로서는 매력 있는 전국행사다. 이유는 간단하다. 노후화한 스포츠 인프라의 개선, 지역 브랜드 제고, 지역민 단합, 도로 정비 등 그야말로 전국체전 개최로 얻는 반사효과는 만만찮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떠나 전국체전은 어떤 명목이나 이유로도 결코 훼손되거나 폄훼해서는 안 된다. 결코 색 바랜 역사책에서나 찾아야 할 스포츠 행사로 치부되어서도 안 된다. 바로 전국체전이 겪은 역정(歷程)은 우리나라 체육의 발자취이자 역사이며 체육인만이 아닌 우리 국민들 전체가 함께 가꾸어 나가야 할 100년 역사에 빛나는 스포츠 유산이기 때문이다.

전국체전이 열리는 기간을 ‘대한민국 대축제의 날’로 선포해 전국체전이 우리 국민들의 최대 스포츠 축제가 될 수 있도록 모든 체육인들뿐만 아니라 정부 관계자도 함께 머리를 맞대야 할 시기다.

▲ 정태화 한국체육언론인회 사무총장
저작권자 © 미디어파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