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모의 테마토크] 24일 첫 방송된 JTBC 특별기획드라마 ‘송곳’이 ‘미생’에 비견될 정도로 폭발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내달 25일 개봉 예정인 영화 ‘열정 같은 소리 하고 있네’(이하 ‘열정’, 정기훈 감독, NEW 배급)는 시간이 흐를수록 관객들의 기대감을 부풀리고 있다. 두 작품을 연대하는 소재는 직장인의 애환, 주제는 샐러리맨들의 어려운 현실에 대한 풍자와 비판이기 때문이다.

‘송곳’의 무대는 대형 마트 푸르미다. 부장 정민철(김희원)은 과장 이수인(지현우)에게 점장의 지시라며 비정규직 판매사원들을 전부 해고하라고 지시한다. 수인은 불법이라며 반발해 보지만 그게 받아들여질 리 없다. 그게 현재 이 사회의 구조니까.

▲ 사진='송곳' 포스터

드라마는 이런 우리 사회의 부조리와 불법의 만연을 수인의 과거로부터 보여준다.

담임선생은 반장인 수인에게 교실에 어항을 놓자고 경제적 지원을 유도하지만 가난한 수인은 돈이 없다고 곧이곧대로 말했다가 매만 맞는다. 그 매질이 1년 내내 계속되자 결국 수인의 모친은 선생에게 촌지를 건네준다. 당연히 매타작은 멈춘다.

그가 일반 대학 대신 선택한 곳은 육군사관학교다. 목적은 출세다. 이 사회가 어떤 구조를 갖추고 있는지 웃기지만 슬픈 사실을 기발하게 보여주는 설정이다. 성공을 위해 군 장교의 길을 선택했다면 그는 양심을 버리고 타협과 복종에 길들여져야 했지만 특정 정치인에 대한 투표의 강요에 반발해 동기회에 군의 정치적 개입을 언급함으로써 출세대신 위기를 자처한다.

이 사회 지도층이나 전문 집단 웬만한 곳에서 정의와 진정한 민주주의를 찾아볼 수 없다고 풍자한다. ‘열정’의 무대는 인터넷 신문사다. 도라희(박보영)는 ‘취업준비생’ 시절 직장만 잡으면 인생을 제대로 즐기겠다는 희망과 기대에 부풀어있었고, 드디어 연예부 인턴기자로 입사하는 데 성공한다.

나름대로 깔끔한 정장에 하이힐까지 신고 커리어우먼으로서의 멋을 한껏 낸 채 첫 출근한 라희의 예상은 단 3분 만에 깨진다. 부장 하재관(정재영)은 “지금은 니 생각, 니 주장, 니 느낌, 다 필요 없어!”라고 일방적인 명령 복종과 더불어 과도한 업무를 강요하는데 막상 월급은 ‘쥐꼬리’다. 한마디로 ‘열정페이’인 것이다. 시나리오를 실제 인터넷 신문사 연예기자가 썼기에 그 분야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그려냈다는 점에서 이건 영화라기 보단 다큐멘터리에 가깝다.

현재 거의 모든 인터넷 신문사의 기자들은 사실상 절반의 비정규직이다. 매년 연봉계약을 통해 근무를 연장하기 때문에 ‘윗선’의 미운털이 박힐 경우 재계약 제안이 안 나오면 계약기간 종료와 동시에 퇴사다. 사실상 해고고 그래서 그들이 정규직이 아니란 증거다. 계약기간 중에도 밉상으로 찍힌 탓에 교묘한 압박을 받고 견디다 못해 조기퇴사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보수다. 3개월의 인턴기간이야 이른바 적성과 적응 가능성의 ‘리트머스 시험’ 기간이므로 ‘알바’ 수준의 급여가 지급되는 것은 그렇다 치겠지만 4~5년 경력이 지나도 월급 200만 원을 받기 힘든 매체가 다수인 게 엄연한 현실이다. 게다가 연봉계약 때 근무경력 등 합리적이고 규칙적인 기준에 근거한 사규에 의해 액수가 정해지는 게 아니라 절대평가 상대평가 등 모든 것을 제외한 오로지 사장의 개인의견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 역시 명명백백한 사실이다. 물론 페이지뷰 우수자에 대한 ‘보너스’는 있지만 동료들에게 소주 한잔 사면 그만인 수준이라 생활에 별 도움은 안 된다.

다른 직업과 상대비교만 하더라도 인터넷 연예기자의 보수와 근무수준은 매우 비대칭이다. 아침 8시 정도 출근해 저녁 6~7에 퇴근이지만 아침당번과 저녁당번이 일주일에 최소한 한 번 돌아옴에 따라 초과근무는 필수고, 그런 당번이 아닐지라도 정규 근무시간에 페이지뷰를 ‘잡는 글’ 쓰기에 열중하느라 정작 쓰고 싶은 기사나 인터뷰 기사 등은 퇴근 후나 휴일에 써야 하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국가는 주 5일 근무를 정상적 근무형태로 규정했지만 그건 그냥 공무원에게나 해당된다.

직장은 생존을 위한 돈벌이의 목적이 가장 크겠지만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생동감과 자존감을 위한 소통과 움직임의 장이 생긴다는 장점 역시 생존과 직결된다. 사람의 행복에 돈이 필수지만 돈이 다는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연예기자 같은 전문직의 경우 일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 그리고 보람과 성취감은 매우 중요하다. 기자기 때문이다. 지난 1월 종영된 SBS 드라마 ‘피노키오’가 그런 기자들의 생리와 개념을 아주 잘 그려낸 바 있다.

▲ 사진='열정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스틸.

하지만 ‘열정’에서 재관은 라희에게 “니 생각, 주장, 느낌, 다 필요 없다”고 큰소리를 친다. 수습기간엔 맞는 말이다. 문제는 모든 기자들에게 사장 1명의 이데올로기가 일방적으로 강요된 탓에 모든 기사가 일방통행식 논조로 흐르는 매체가 대부분이라는 데 있다. 기자들의 분석능력과 기자적 시각에 근거한 합리적인 판단은 무시되고, 특정 권력자 한 명의 호불호가 매체의 논조를 결정한다는 것은 미디어의 기본적인 존재가치를 부정하고 나서는 것이다. 게다가 오로지 페이지뷰에 따라 보너스를 지급받는 기자가 기자일까? 마치 영업실적에 따른 성과급을 받는 모양새인데. 기자가 정규보수 외의 돈을 회사로부터 받을 수 있는 근거는 오로지 ‘특종’밖에 없다. 기자가 영업실적으로 눈을 돌리는 순간 기자가 아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삶의 가치관, 과정, 목표 등이 다르긴 하다. 사람이 사는 공간도 지구라는 한 별 안에 있지만 각 지역마다 매우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사람이기에 저마다 자존심과 자존감에 대한 자부심과 성취욕을 추구하기 마련이다.

모든 직장인은 ‘돈 많이 주고, 근무는 편한 직장’을 꿈꾼다. 모든 사주는 ‘돈은 적게 받고, 일은 잘 하고 많이 하는 직원’을 원한다. 고용자와 피고용인이 공통점을 가질 수 없이 영원히 평행선을 달릴 수밖에 없는 게 바로 자본주의의 논리이기 때문이다.

‘송곳’과 ‘열정’은 단순히 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의 편을 일방적으로 들어주는 게 아니기에 폭발적인 인기와 기대를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송곳’은 대형 마트라는 자본주의의 축소판 같은 곳을 무대로 ‘갑’의 ‘갑질’이 얼마나 약자를 잔인하게 파괴하는가에 대한 사회적 부조리를 적나라하게 까발린다. 그러나 그 ‘갑’ 위에 더 무서운 ‘갑’이 있다는 게 이 사회 구조의 문제점이라는 점에서 지금은 자신이 ‘갑’인 줄 알고 날카로운 전가의 보도를 마음대로 휘두르지만 언젠가 그 칼보다 더 큰 칼에 자신의 목이 날아갈 줄 모른다고 ‘송곳’은 경고한다.

더불어 소위 사회적 지도층 사회에 얼마나 부조리와 비리와 비상식이 만연해 있는지 날카로운 송곳을 들이댄다. ‘열정’이 다소 코믹하게 얘기를 풀어가고 있긴 하지만 그게 바로 ‘웃픈’이란 신조어가 생긴 이 현실을 소름끼치게 보여주는 전개방식이라 관객은 웃지만 웃고 난 뒤 극장 문을 나서며 가슴이 먹먹하게 아플 것이다.

사람이 동물과 다른 점은 수치심을 느낄 줄 알고, 그래서 인권과 인격의 중요성이 법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 것인데 현실 속 샐러리맨들에겐 그게 그냥 이론일 뿐 모든 권리와 격은 돈(권력)과 그것에 아부하는 사람들의 손에 있다고 두 작품은 비아냥댄다. 메이저 방송사는 대기업이고, 특히 JTBC는 대한민국 재벌의 대명사 격인 삼성그룹 계열사임에도 이런 드라마를 내놓는 게 재미있고, 그걸 통해서 또 돈을 번다는 점 역시 재미있다.

저작권자 © 미디어파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