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화 논평] 대한체육회가 역점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는 ‘스포츠인 역사 보존’ 사업의 기본 축인 원로체육인 25명에 대한 구술채록/영상녹화가 첫해 성공적인 성과를 거두고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본 사업을 처음으로 제안한 스포츠역사발굴자문위원회 김용환 위원장, 실행에 옮긴 대한체육회 양재완 사무총장과 실무담당 책임자인 대한체육회 스포츠역사발굴사업단 문호성 단장이 한 자리에 모여 ‘스포츠인 역사 보존’ 사업을 왜 반드시 해야 하고 중요한지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의견을 나누었다. ‘스포츠인 역사 보존’ 사업의 당위성과 아쉬운 점, 앞으로 발전 방향등에 대해 시리즈로 알아본다.

‘스포츠인 역사 보존’ 사업은 최고의 스포츠 창조경제
체육 원로들의 경험은 사회자산이자 국가 자산

(사례 1)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경기용 사이클을 손수 제작한 원로 사이클인 이홍복씨(82)는 “늦게라도 이렇게 찾아줘서 너무 고맙다. 인천에서 운영하고 있는 자전거포를 어떻게 찾아 왔는지 감동스러울 뿐이다. 이제라도 한국 사이클 역사에 기여한 부분을 인정받은 것 같아 기쁘기 한량없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사례 2) 1969년 뮌헨세계탁구선수권대회 단체전 4강 주역인 원로 탁구인 오상영씨(83)는 “진작 했어야 하는 사업인데 좀 늦은 감이 있지만 이제라도 시작해줘서 너무 고맙다. 대한체육회에 정말 감사드린다.”며 연신 눈물을 훔쳤다.

(사례 3) 이름을 밝히기 꺼린 원로 체육행정가 A씨(74)는 “나보다 우리나라 체육 역사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이 없는데 …. 아직 나이가 적어서 그런가? 왜 나한테는 아직 연락도 안하는지 모르겠다.”고 틈만 나면 볼멘소리를 해댄다.

올해 대한체육회가 최대 역점을 두고 추진하고 있는 ‘스포츠인 역사 보존’ 사업에 대한 원로 체육인들의 반응들이다. ‘스포츠인 역사 보존’ 사업 가운데 가장 중점을 두고 있는 부분이 원로 체육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구술채록/영상녹화. 1차년도인 올해에는 나이가 80세가 넘어 고령인 원로 체육인, 체육 행정가, 체육 언론인 가운데서 고루 안배해 선정된 25명에 대해 구술채록/영상녹화를 동시에 진행했다. 구술채록에 참여한 원로 체육인들은 한결같이 “하고 싶은 말도, 남기고 싶은 이야기도 많았는데 …. 이제 원을 풀었다.”고 하는가 하면 또 다른 한편에서는 “왜 나는 선정이 되지 않았느냐?”고 불만(?)을 터뜨리는 원로 체육인도 적지 않았다.

최고의 스포츠 창조경제이자 융․복합 콘텐츠 사업
문화 융성이자 창조경제, 정부 3.0과도 부합돼

‘스포츠인 역사 보존’ 사업을 처음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이에 대한 해답은 먼저 양재완 사무총장이 명쾌하게 내려 주었다.
“지난해 5월 어느 날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을 지낸 김용환 위원장으로부터 우리나라 스포츠가 짧은 시간에 많은 분들이 노력을 해 세계에서 손색없는 위치에 오른 데는 분명 특별한 이유가 있다. 그 이유를 당시 몸 담았던 체육 원로들에게 직접 여쭈어 보고 기록으로 남겨 해답을 찾아보는 것이 어떠냐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양 총장은 이 말을 듣고 갑자기 머리가 환하게 밝아오는 느낌이었다고 말한다. 우리나라 체육이 동·하계 종목 모두 세계 10강에 오르는 대약진을 한데는 수많은 체육인들의 힘과 열정적인 노력이 밑바탕이 되었지만 극히 일부분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만 남아 있을 뿐이고 대부분 체육인들에 대한 이야기는 아직까지 없었다는 생각이 얼핏 머리를 스쳤다는 것.

양 총장은 특히 음지에서 디딤돌이 됐던 체육 원로들의 생생한 증언들을 연극, 영화, 만화, 소설 등의 다양한 장르와 결합시킨다면 이것이 바로 박근혜 정부가 지향하는 문화융성이자 창조경제이며 다른 부문하고 협업을 하는 정부 3.0이고 체육과 문화가 결합한 융·복합 콘텐츠의 전형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당시를 되돌아봤다. 이에 대해 김용환 위원장은 “문체부 차관으로 근무하던 2012년 런던올림픽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경험했던 몇 가지 아쉬운 점을 보완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아이디어를 냈다”면서 “런던올림픽을 앞두고 우리나라 스포츠의 기본 키워드가 과연 뭐냐?”에 많은 고민을 했다고 털어놓았다.

즉 우리나라가 처음으로 KOREA란 이름으로 자랑스러운 태극기를 앞세우고 첫 국제올림픽 행사에 참가한 1948년 런던올림픽부터 2012년 런던올림픽에 다시 참가하기까지의 과정에서 64년 동안 대한민국의 스포츠가 어떻게 변했는지, 누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그리고 국제사회에 어떻게 기여를 했는지 자료를 찾아봤지만 아쉽게도 1948년의 자료가 거의 없어 많은 고생을 했다는 것. 그 뒤 김 위원장은 양 총장과 긴밀한 대화를 통해 이해의 폭을 넓혀 나갔고 “스포츠 역사 발굴과 함께 이것을 제대로 정리하는 작업이야 말로 앞으로 스포츠계 미래 발전의 토대를 마련하는 초석”이라는 상호 공감대를 형성해 올해 마침내 올해 첫발을 내딛게 됐다고 설명했다.

체육원로들의 경험은 사회자산이자 국가자산
영혼스포츠박물관 만드는 기반 될 수 있어

광복 70주년을 맞아 한 신문 여론조사에서 우리나라가 광복 이후 국민들에게 가장 큰 기쁨을 준 분야로 스포츠가 70% 이상으로 지지를 얻어 압도적 1위를 차지했다고 전제한 김용환 위원장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자랑스러운 스포츠 역사를 제대로 기록하지 못했다고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광복이 되고 난 뒤 열악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스포츠 발전에 많은 공헌을 하시고 힘을 쏟았던 원로들이 이제 생을 달리할 수밖에 없는 절박한 시기에 와 있습니다. 이 분들의 값진 경험은 체육인들에게 뿐만 아니라 우리 국민들 모두에게 귀중한 자산입니다. 바로 사회 자산이자 국가 자산이나 마찬가지인 스포츠 원로들의 경험을 제대로 기록하고 보존하는 일은 우리 스포츠인들이 지난 100년의 역사를 정리하고 다가올 한국스포츠 100년을 앞두고 반드시 해야 할 가장 시급하고 중대한 일입니다.”

김 위원장의 말은 확신이 넘쳤다. 스포츠 역사에 대한 뚜렷한 소신과 소명(召命) 의식도 함께 느껴졌다.

“본 사업은 원로 체육인들이 가진 소중한 경험을 집대성해 국가와 사회 자산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우리 자신을 다시 뒤돌아보게 되고 우리 스포츠계 미래 발전 방향을 모색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해 줄 것입니다.”

한때 우리나라 스포츠 행정을 총괄한 정부 최고위층 출신답게 김 위원장은 원로 체육인들의 구술채록을 통해 얻게 되는 스포츠 역사와 그 활용 방안에 대해서도 확실한 해답을 내 놓았다.

“스포츠인 역사 보존 사업을 통해 우리가 몰랐던 또 정리하지 못했던 많은 스포츠 역사와 스포츠 유물들, 그리고 스포츠 관련 정신들을 제대로 수집해 잘 보존하고 보관할 수 있다면 지금까지 성과에만 집착했던 유형의 스포츠에서 벗어나 스포츠 정신을 기리는 ‘영혼 스포츠 박물관’을 만들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 위원장은 ‘영혼 스포츠 박물관’ 이야기에 대한 추가적인 설명도 빠트리지 않았다.

“지금까지 체육박물관이라면 유물 몇 점 전시하는 유형의 박물관이 전부이지만 스포츠인 역사 보존 사업은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스포츠의 영혼을 담은 박물관을 만들 수 있는 그야말로 귀중한 자산이 되는 사업입니다.”

이에 덧붙여 양재완 사무총장은 다소 생뚱맞게 자동시계와 브래지어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배순학 전 대한체육회 사무총장과 전 축구 국가대표인 이회택 선배와 만나 옛날 외국에 나가기 어렵던 시절에 지인의 부탁으로 흔들면 태엽이 감기는 자동시계와 브래지어를 사왔는데 자동시계에서 나는 째깍거리는 시계소리에 적발이 되고 가방을 여니까 브래지어가 튀어나와 세관이 웃음바다가 된 적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때 순간적으로 나는 이때의 시계가 기술자 손을 거쳐 우리나라 시계 산업을 발전시키는 기폭제가 됐을 수도 있고 브래지어가 성수동 봉제공장으로 흘러 들어가 지금의 세계 최고 수준의 브래지어를 만들 수도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 체육인들은 단순히 메달을 따서 국위를 선양하는 것만이 아니라 우리나라 산업발전에도 기여를 했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런 이야기들은 정사(正史)에서는 절대로 들을 수가 없습니다. 바로 야사(野史)가 중심이 되는 구술채록에서만 나옵니다. 스포츠 원로들의 구술채록, 즉 스포츠인 역사 보존 사업을 하게 된 이유 가운데 하나입니다.”

스포츠를 사랑하는 국민들을 위한 사업
스포츠 팀플레이는 사회의 시대정신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아쉬운 점으로 흘러가자 양재완 사무총장이 예산 확보 과정에서의 어려움을 먼저 토로했다.

“정부 예산은 제로섬 게임입니다. 한쪽에서 예산을 많이 받으면 다른 쪽에서는 그만큼 줄게 되어 있습니다. 이 탓인지 정부에서 이 사업에 대해 이해를 못했습니다. 그래서 국회의원들을 찾아다니고 정부를 설득하고 김 위원장께서도 많은 도움을 주셔서 당초 예상한 5~10억 원을 넘어 13억 원을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양 총장은 지난해 스포츠영웅으로 선정된 서윤복 선생을 예로 들면서 국회의원들과 정부를 설득했다며 당시 상황을 이렇게 소개했다.

“지난해 추석과 설날을 앞두고 서윤복 선생을 방문했을 때 안방에서 거실까지 휠체어를 타고 나오셔서 아무 말씀도 못하셨습니다. 저 분의 머리속에 들어 있는 한국체육의 과정이 바로 큰 역사이자 우리 스포츠의 자산인데 저분이 이야기할 수 있을 때 이 사업을 해야 되는데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오래 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기억하고 말씀하실 수 있을 때 구술채록을 해야 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더 조급함을 가지고 이 사업을 추진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의 노력이 헛되지는 않았습니다.”

김용환 위원장은 더 많은 원로 체육인들을 대상으로 구술채록이 이루어지지 못한 데 아쉬움을 나타냈다.

“이 사업은 원로 체육인들 개인의 경험을 채록하는 단순한 사업이 아닙니다. 그 분들이 경험했던 내용들을 사회와 국가의 자산으로 제대로 평가하고 받아들이는 노력과 함께 그 내용 가운데 잘잘못을 통해 현재와 미래의 체육인들에게 우리 스포츠가 나아갈 길, 자세,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아쉬웠던 점이라기보다는 아직 본 사업이 초창기이므로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도록 많은 분들이 참여를 해 지혜를 한데 모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를 위해서는 더 많은 국가의 지원이 필요합니다. 20여명의 구술채록과 500명의 구술채록은 자료로서 가치가 다른 만큼 더 많은 분을 대상으로 그리고 성공하지 못한 스포츠인까지 포함해 대상을 자꾸 늘여가야 합니다.”

특히 김 위원장은 스포츠는 개인도 중요하지만 대부분은 팀플레이로 이루어지는 만큼 스포츠 정신은 바로 사회의 시대정신이라면서 ‘스포츠인 역사 보존’ 사업은 대한체육회를 위한 것도, 문화체육관광부를 위한 것도 아닌 스포츠를 사랑하는 국민들을 위한 사업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김 위원장과 양 총장의 이야기를 경청하던 문호성 단장은 첫해 사업을 시행하면서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지금까지 대한체육회가 50년사, 70년사, 90년사 하는 식으로 스포츠 역사나 기록에 대해 정량적 접근은 했지만 사람이나 영상, 유물을 중심으로 하는 정성적 접근에는 소홀히 해왔습니다. 이 때문에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구술채록에 대해서는 절대적으로 공감을 하고 원로체육인들도 굉장히 좋아하시면서 호응을 잘 해주셔서 대단히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하지만 단순하게 구술채록에만 머물 것이 아니라 다른 부문까지 확대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고민이 필요한 시기라고 생각합니다.”(계속)

▲ 정태화 한국체육언론인회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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