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혁 소장의 가족남녀 M&B] 이 영화는 미군 내 성폭력을 고발하는 다큐멘터리다. ‘또 다른 전쟁’이라고 번역돼 있지만 원래 영어 제목은 ‘The Invisible War(보이지 않는 전쟁)’이다. 외부의 적과 달리 내부에 숨어 있으면서 언제 성폭력 가해자로 돌변할지 모르는 군 동료 및 상급자와의 전쟁을 가리킨다. 여군들이 적의 총탄에 맞는 것보다 동료 군인에게 성폭력을 당할 가능성이 더 높은 미군의 현실을 말해준다.

이 영화에서는 장교와 부사관 등 피해 여군들이 실명 또는 비실명으로 출연해 자신들의 실제 피해 사례를 증언한다. 워싱턴의 미 해병대 최정예부대에 근무하던 엘렌 헬머 중위는 회식 후 귀가하기 위해 택시를 기다리던 중 중대장의 호출 명령을 받고 그의 사무실로 갔다가 성폭행을 당했다. 저항하다가 밀려서 가구에 부딪치는 바람에 실신한 상태에서 몹쓸 짓을 당했다. 신고를 했지만 가해자는 무혐의로 풀려났다. 오히려 피해자가 곤욕을 치렀다. 군 성폭력은 개인의 일탈행위일 뿐 아니라 조직문화의 문제인 것이다.

영화는 국가를 지키기 위해 군에 들어왔으나 상처만 입고 군을 떠나게 된 피해자들이 자신의 삶과 사회 정의를 회복하기 위해 싸우는, 힘겹지만 당당한 모습을 보여준다. 군 간부, 국회의원, 전문가 등 인터뷰와 각종 통계도 담았다. 이를 통해 군대 내 성폭력이 심화 반복되게 하는 여건과 문제점, 은폐의 역사를 폭로하면서 대안을 모색한다.

우리나라 군대의 사정은 미군과 다를까? 요즘 학교 내 성폭력과 함께 연신 들려오는 군내 성폭력 사건의 심각성을 보면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국방부가 징계수준을 높이는 등 원아웃제도 도입을 비롯한 성폭력 종합대책을 지난 3월 마련했음에도 불구하고 군내 성폭력은 수그러들지 않는다. 여군 대상 뿐 아니라 병사에 대한 동성 간 성폭력도 심각하다. 솜방망이 처벌이란 지적도 끊이지 않는다. 조직문화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여군이나 병사 등 하급자를 성적 대상으로 보고 함부로 대하는 인식의 변화 속도가 매우 더디다. 제도가 어느 정도 개선돼도 현장에서 제대로 실천되지 않는다. 지휘관들이 자신의 지휘 책임을 추궁 당할까봐 무마하는 데 급급한 경우가 적지 않다. 군사법원이 제 식구 감싸기에 급급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성폭력 피해자들은 우울증 수치심 대인기피증 뿐 아니라 심한 경우 자살 충동에 이르기까지 심각한 후유증을 겪는다. 그러면서도 가해자가 처벌되기는커녕 피해자가 불이익이나 나쁜 소문에 시달리지 않을까 우려해 문제 제기를 꺼리는 실정이다. 한 실태조사 결과 여군 중 90%가 성폭력을 당할 경우 대응하지 않겠다고 했을 정도다.

성폭력은 상대방의 의사에 반해 힘의 차이를 이용해 상대방의 성적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모든 성적행위를 말한다. 성적 행위는 반드시 상대방의 동의를 받아야 하고, 명확한 ‘Yes’가 없으면 ‘No’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직장 내 성폭력의 원인은 권위주의적인 조직문화와 잘못된 성 인식 등이다. 상명하복의 위계질서가 강하고, 병사들이 내무반에서 함께 생활하며, 여군이 1만 명에 육박하지만 아직 10% 미만의 소수인 우리 군 조직의 특성 상 여느 사회 조직보다 강력하게 대처해야 악순환 구조를 선순환 구조로 바꿀 수 있다. 여군이나 병사를 여성이나 성적 대상이 아닌 전우로 보는 등 하급자의 인권을 존중하고, 자신의 말과 행동이 남녀에게 차별적 영향을 미치지 않는지 주의 깊게 살피는 성 인지 감수성을 높이도록 인식이 개선돼야 한다. 음담패설을 자제하고 회식문화를 개선해야 한다. 이를 위해 효과적인 예방교육과 함께 가해자 처벌, 피해자 보호 등 3박자가 강화되고 실천되도록 함으로써 성폭력이 용납되고 학습되는 조직문화를 개선해야 한다. 성폭력은 아군 전력을 약화시키는 이적행위이기 때문에 반드시 뿌리 뽑아야 한다.

▲ 김주혁 가족남녀행복연구소장

[김주혁 가족남녀행복연구소장]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초빙교수, 양성평등 전문강사, 폭력예방교육 전문강사
-여성가족부 갈등관리심의위원, 꿈드림 슈퍼멘토
-가정학 석사, 전화상담사, 웃음치료사
-전)서울신문 선임기자, 경영기획실장 등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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