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동일의 ‘롤링인더딥’] 쇼핑몰과 패션 커뮤니티로 탄탄한 입지를 다져온 무신사가 출판계에 발을 디딘다. 반지의 제왕 마지막 편에서 아라곤이 유령들을 끌고 왔을 때 이런 기분이었을까? 아직은 잡지 판매에 큰 욕심을 내는거 같지 않지만 본격적인 판매로 이어질 경우 그 파급력이 만만치 않을 것 같다.

무신사가 어떤 의도를 갖고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춘추전국시대 같은 잡지사들의 끊임없는 전투에서 무신사의 출현 자체만으로도 출판계에 엄청난 이슈임은 분명하다. 독자들이 느끼는 감정은 어떠할까 미루어 짐작해 본다.

무신사 잡지 발행에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무신사가 그동안 다져온 입지도 있지만 그들의 자본력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무신사가 주로 다뤄온 스트릿 패션은 이미 많은 잡지사와 커뮤니티들에 의해 다뤄지고 있는 분야이다. 특히 최근 스트릿 패션 잡지의 선두주자였던 잡지사 '크래커 유어 워드로브'의 몰락은 이제 패션언론계가 단순한 '다양성'을 넘어 '깊음'에도 주목해야 함을 보여준다.

무신사 지금까지 생산했던 콘텐츠를 보면 아주 휼륭하다고 판단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이 갖고 있는 자본의 파워는 무시할 수 없다. 슬픈 현실이지만 언론의 성공 여부가 콘텐츠가 아닌 자본으로 결정되는 시대다. 좋은 콘텐츠로만 승부하는 언론이 자리 매김하기에는 현실이 녹녹치 않다.

자본의 중요도가 커지면서 언론의 제 목소리 내기가 그리 쉽지 않다. 무신사의 콘텐츠 퀄리티가 높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무신사를 예의 주시하는 이유다. 최근의 잡지사와 언론사들이 콘텐츠 보다는 수익 창출을 위한 사업에 손을 대는 것도 결국은 자본때문이다.

문화에 자본이 투입되는 것이 항상 나쁜 것만은 아니다. 과학기술만큼이나 자본 역시 그 자체는 중립적이고 몰가치적이다. 문제는 그것을 가진 사람들의 태도다.

최근 패션 잡지뿐만 아니라 문예지 등, 잡지 분야 전반에서 다양한 목소리를 내려는 시도가 나타나고 있다. 일반인들의 공항 패션을 다루는 ‘에어포탄트’,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인터뷰 형식으로 다루는 ‘디아티스트 매거진’, 스릴러 및 추리 소설 잡지 ‘미스테리아’, 국내 최고 작가들의 글을 저렴한 가격에 만날 수 있는 ‘Axt’ 등 최근 우리나라의 잡지계에서는 넓고 깊은 문화를 다루려는 흐름이 보인다.

무신사의 잡지가 단순히 돈으로만 만들어지는 잡지가 아니라 콘텐츠가 탄탄한 잡지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메이저 잡지사들을 답습해서는 안된다. 무신사만의 방향성을 잡아야만 좋은 잡지사로 ‘깊고 거대한’ 뿌리를 가질 수 있다.

앞으로 무신사 잡지가 어떤 평가를 받을지 알 수 없지만 그들이 잡지계에 발을 내딛는 것만으로도 출판계에 엄청난 회오리가 일것이라 감히 예측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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