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모의 테마토크] 지난해 11월 음주운전으로 방송가를 떠난 노홍철이 본격적으로 복귀한다. 지난 추석 때 파일럿으로 편성된 MBC ‘잉여들의 히치하이킹’(이후 ‘잉여’)으로 활동 속개를 시도했지만 다수의 시청자들이 프로그램과 노홍철을 싸잡아 혹평을 받는 바람에 시도로 끝났지만 이번은 다르다. 편성확정이다. 그는 CJ E&M의 인터넷 채널 tvN go ‘노홍철 길바닥 SHOW’와 케이블TV tvN ‘내 방의 품격’ 등 한꺼번에 2개의 방송으로 본격적인 활동에 나선다.

▲ 사진=노홍철 SNS

‘노홍철 길바닥 SHOW’는 블로그나 SNS 등에 올라온 일반인의 다양한 사연 중 골라 노홍철이 현장에 나가 시민들과 인터뷰를 하고 핫 플레이스를 검증하는 형식이다. ‘내 방의 품격’은 인테리어 초보자들이 스스로 자신의 집 혹은 방을 효율적으로 꾸밀 수 있도록 전문가들이 노하우를 전수하는 생활밀착형 토크쇼다. 노홍철이 2004년 엠넷 ‘Dr.노 KIN 길거리’로 방송에 데뷔한 이력이 ‘노홍철 길바닥 SHOW’와 맞아 떨어지는가 하면 평소 집 꾸미기와 정리에서 남다른 감각을 발휘한 그이기에 ‘내 방의 품격’과도 잘 어울린다는 게 제작진과 노홍철 소속사의 설명이다. ‘노홍철 길바닥 SHOW’는 인터넷을 통해 콘텐츠를 공개한 후 편집을 거쳐 tvN에 편성하는 새로운 방식을 채택했다. 나영석 PD의 ‘신서유기’의 영향이 느껴진다.

▲ 사진=연합뉴스TV 방송화면 캡처

이 사실이 널리 알려지자 누리꾼이 찬반양론으로 갈라서며 잔뜩 독기가 오른 대치양상을 보이고 있다. 찬성파는 ‘반갑다’며 ‘무한도전’이 복귀작이 아님을 아쉬워한다. 반대파는 음주운전이란 죄의 본질과 더불어 적발 당시 노홍철의 태도를 거론하는가 하면 ‘잉여’ 출연이 사건 후 1년도 안 된 점, 이번 복귀 역시 ‘고작’ 1년의 공백이란 점 등을 들어 불쾌하다는 반응이다. 노홍철이 공개채용이나 대학로 등의 ‘사관학교’를 거치지 않고 방송에 비교적 순탄하게 무혈입성한 것은 맞지만 사고 전의 폭발적인 인기가 입증하듯 그는 예능인으로서 시청자를 즐겁게 해주는 재주는 뛰어나다. 이제 그는 누가 뭐래도 천생 예능인이다.

돈을 많이 벌어놓았다고는 하지만 사람이 오로지 돈 하나만을 목적으로 일을 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재능과 적성에 맞는 일로써 보람을 찾고 성취감을 느끼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노홍철에게 영원히 방송계를 떠나라는 것은 한 사람의 존재감과 성취욕을 꺾는 일이므로 강요하거나 강제할 순 없다. 음주운전으로 여러 차례 걸린 상습범도 아니고 피해자를 만든 뒤 뺑소니를 한 것도 아니다. 인근의 보다 더 안전한 곳에 주차하기 위함이었다. 그보다 더 파렴치한 범죄자도 많다. 미성년자와 매매춘을 한 사람도 개봉되는 영화마다 얼굴을 내미는가 하면 결혼한 이도 있다. 마약을 투약한 채 부적절한 성관계를 했던 여배우는 마약이 최음제인 줄 알았다고 했다. 그녀도 계속 컴백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TV 방송화면 캡처

‘무한도전’으로 복귀하라는 요청 역시 무조건 반대하기엔 노홍철의 대표작이고, 그의 존재감이 방송의 재미에 크게 이바지했으며, 그의 캐릭터 중 이 방송의 그것을 시청자가 가장 선호한다는 점을 간과하기 힘들다. 하지만 ‘무한도전’에서 그의 빈자리가 크니 그 자리로 되돌아와야 한다는 이유는 설득력이 부족해도 한참 모자란다. ‘무한도전’은 상업을 추구하는 방송 프로그램이지, KBS의 재난방송이나 정부가 주도하는 공익프로그램이 아니다. 이 프로그램이 다수의 서민들의 스트레스를 풀어주고, 안식의 시간을 주며, 그나마 재미로 위안해준다는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범국민적 차원에서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거기에 범죄자에게 면죄부를 줘가면서까지 도와줘야 한다는 논리는 궤변이다.

게다가 이미 죄를 지은 길과 노홍철은 이 프로그램이 지향하는 방향과 사뭇 다르다는 게 결정적인 걸림돌이다. 그동안 ‘무한도전’은 국민들의 질서의식과 역사의식을 새삼스레 깨우치는 착한 예능의 좋은 본보기를 보여줬다. ‘착한 MC’ 유재석은 의리 도덕 인간미 등을 수도 없이 강조했다. 그런데 음주운전을 하고 그것도 측정에서 ‘채혈을 하겠다’고 시간을 벌고자 하는 인상이 짙은 일을 자행했던 노홍철이 이 방송을 통해 도덕과 책임을 외칠 수 있을까? 설령 음주운전 금지 캠페인을 벌인다고 해도 그건 삼류 코미디지, ‘국민 예능’이 할 짓은 아니다. 포인트는 기간과 음주운전이란 행위가 내포한 위험성에 있다.

▲ 사진=KBS 방송화면 캡처

그가 음주측정 때 꼼수를 부렸다는 누리꾼의 지적은 지엽적이다. 순간적으로 ‘위기’가 닥치면 누구나 생존본능의 보호막을 칠 순 있다. 중요한 점은 음주운전이란 행위 자체의 심각성은 다수의 대중이 느끼는 체감온도와는 좀 다르다는 데 있다. 강도나 살인이 아니니 사고 안 내고 단속에만 안 걸리면 된다는 생각은 엄청나게 위험하다.

▲ 사진=KBS 방송화면 캡처

선진국에선 음주운전을 살인미수와 동급으로 취급한다. 일본은 혈중알콜농도 0.03%만 돼도 그에게 술을 권한 사람은 물론 술자리에 동석했던 사람까지 싸잡아 2~5년의 징역형에 처한다. 말레이시아는 배우자까지 수감한다. 불가리아는 한 번은 훈방이지만 두 번째는 교수형이고, 엘살바도르는 즉결총살형이다. 자숙기간이란 게 정해져있는 것은 아니지만 대충 대중의 인식은 최소한 1년은 넘어야 한다는 데 공감한다. 고호경은 마약이란 중범죄이긴 하지만 5년이나 지난 후 컴백했다. 하지만 노홍철은 1년도 채 안 돼 FNC엔터테인먼트란 대형기획사와의 전속계약을 알리며 ‘잉여’로 사실상 컴백했다. 물론 그가 브라운관에 되돌아온다면 옛 부귀는 되찾을지 몰라도 옛 영화를 복구하긴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있다. 그보다 훨씬 더 큰 ‘덩치’였던 강호동이 선례다.

2012년 1년여 만에 되돌아온 강호동에게 수많은 작품이 쇄도했지만 MBC ‘무릎팍 도사’ ‘별바라기’, KBS2 ‘달빛 프린스’ ‘투명인간’ 등 강호동을 보고 다시 만들었거나 강호동에게 새로 맡긴 론칭 프로그램들이 대부분 2~3개월 만에 폐지됐다. KBS2 ‘우리 동네 예체능’만 살아남았을 따름이다. 그건 쉬는 동안 예능감이 떨어졌기보단 자숙이란 단어가 주는 무게감 탓이다. 잘못을 저지르고 그것을 속죄하는 의미에서 일정 기간 혼자 조용히 지내며 충분히 반성한 다음 방송에 나선 강호동으로선 예전처럼 까불기엔 부담이 컸던 것이다. 아니면 내면적으로 성숙해진 뭔가 있든지.

노홍철 역시 반성의 기미를 보이려면 예전과는 달라진 모습으로 재탄생한다는 게 부담이 전혀 되지 않을 리 없다. 그렇다면 아무래도 ‘무한도전’을 통해 찌롱이로 되돌아가는 것도, 이번 새 프로그램을 통해 변화하고 성숙한 방송인 노홍철을 설정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시청자의 찬반양론의 분열이 두려운 게 아니라 그대로 갈지 혹은 달라질지, 그리고 그런 모습에 시청자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가 본질적인 숙제다. 그의 복귀에 대한 찬성과 반대의 의견 개진은 정작 그 때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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