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혁 소장의 가족남녀 M&B] "세상은 엿 같고 핏줄은 더럽게 아프다." 이 영화의 포스터에 담긴 말이다. 가정폭력 피해 자녀들의 느낌을 말해 준다.

빚을 대신 받아주고 용역비를 챙기는 깡패 상훈에게는 욕설과 폭력이 일상화 돼 있다. 세상에 두려울 것도, 미련도 없어 보인다. 그의 마음 한구석에는 상처가 있다. 가정폭력으로 해체된 가족 때문이다. 그의 아버지는 툭하면 아내를 때렸다. 어느 날 이를 말리던 여동생이 아버지가 휘두른 칼에 맞아 숨졌다. 상훈이 피 흘리는 여동생을 둘러업고 병원으로 뛰어가자 어머니는 뒤쫓아 가다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뜬다. 아버지는 수감생활을 하고 홀로 남겨진 아들은 양아치가 된다.

상훈은 15년 만기 출소를 한 아버지와 함께 살면서 매일 그를 구타한다. 그것으로 그에 대한 증오와 원망, 아픔과 슬픔을 푸는 것이다. 아버지에게 보고 배운 게 사랑이 아니라 폭력뿐이기 때문이다. 채무자를 때리고 쌍욕을 하는 것도 세상에 대한 복수심을 푸는 과정이다. 가정폭력이 노인학대와 사회폭력으로 대물림된 것.

상훈의 이복 누나도 남편의 폭력을 견디다 못해 이혼한 뒤 아들 형인과 살고 있다. 상훈은 조카 형인에게 투박하지만 사랑을 전한다. 번 돈을 그 집에 몽땅 주기도 한다. 그의 모습에서 어릴 적 자신의 모습을 보기 때문이리라. 상훈이 아버지를 때리는 모습을 우연히 본 조카 형인은 나중에 울면서 말한다. "할아버지 때리지 마! 아빠도 엄마를 맨날 때렸단 말이야! 할아버지 때리지 마!"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길에서 여고생 연희와 시비가 붙었다. 당당하게 대드는 자존감 높은 연희와 어느새 가까워진다. 연희는 월남전에서 받은 충격으로 정신 분열증에 시달리는 아버지와 동네 부랑아인 동생 영재와 살고 있다. 어머니는 포장마차를 하다 상훈 패거리의 행패로 하늘나라로 갔다,

상훈의 아버지는 아들의 폭력을 견디다 못해 팔목을 칼로 그어 자살을 시도한다. 그 순간 상훈은 죽어 가는 아버지를 들쳐 업고 병원으로 달려가며 그가 살아나기를 간절히 원한다. 핏줄에 대한 증오가 사랑으로 변한 것. 아버지에게 자신의 피를 수혈해준 뒤 상훈은 해결사 일을 그만두기로 마음먹는다. 조카의 유치원 재롱잔치가 열리는 날 연희와 아버지를 초대하고는 마지막 수금을 하러 연희 동생 영재와 함께 간다. 평소 우물쭈물한다고 때리며 야단치던 영재가 채무자를 마구 때리는 모습을 보고 자녀들이 아버지를 때리지 말라며 운다. 그러자 상훈은 그만 때리라고 했다가 영재의 망치 세례를 받고 죽어간다. 조카의 재롱잔치도 보지 못한 채…. 영재도 어느새 상훈의 모습으로 변해 간다.

이 영화는 가정폭력이 자녀들에게 아주 나쁜 교육이라는 점을 처절하게 보여준다.

가정폭력은 피해자의 인권을 침해하는 범죄행위다. 피해자들은 수치심 불안감에 시달릴 뿐 아니라 자살 충동마저 느끼게 된다. 자녀들에게 대물림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집안문제가 아니라 심각한 사회문제다. 부모의 폭력을 보거나 아동학대를 당하는 자녀들은 자존감이 낮아지게 된다. 외향적인 아이들은 가해자가, 내성적인 아이들은 피해자가 되기 쉽다.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 상담 치료를 받는 등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피해자조차도 그 상황에 적응돼 무기력해질 경우, 가정폭력을 보고 듣는 이웃 등 주변사람들이 신고(112)하거나 여성긴급전화 1366에 상담하도록 해야 한다.

2013년 여성가족부 가정폭력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최근 1년간 가정폭력은 45.5%에 달한다. 둘 중 한 가정 꼴이다. 신체적 폭력(7.3%)뿐 아니라 정서적(37.2%), 경제적(5.3%), 성적(5.4%) 폭력이나 방임(27.3%)도 해당된다.

아동학대의 가해자는 부모가 80% 이상을 차지한다. 아이를 가해자나 피해자로 만들고 싶지 않다면 꽃으로라도 아이를 때려서는 안 된다. 아동학대는 5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부부가 살다 보면 싸울 수는 있다. 그러나 말로만 하고 곧 화해할 수 있어야 부부싸움이다. 욕설이나 물건, 주먹이 오가면 그것은 부부싸움이 아니라 가정폭력이란 범죄행위이고 화해가 안 된다.

가정폭력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평소 남녀 모두 서로를 존중하고, 가족들 간에 대화와 격려를 많이 해야 한다. 의사소통과 분노조절이 잘 안되면 교육을 통해서라도 익혀야 한다. 부부싸움을 하더라도 자녀 앞에서는 하지 않고 그날로 화해한다는 등 가족 규칙을 정하는 게 좋다.

이제부터 가정폭력의 가해자라면 멈추고, 피해자나 목격자라면 신고해야 한다. ‘나 하나쯤이야’가 아니라 ‘나 하나만이라도’라는 자세가 필요하다. 가정폭력이 없는 안전하고 행복한 대한민국을 위해 우리 모두 노력해야 하겠다.

▲ 김주혁 가족남녀행복연구소장

[김주혁 가족남녀행복연구소장]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초빙교수, 양성평등 전문강사, 폭력예방교육 전문강사
-여성가족부 갈등관리심의위원, 꿈드림 슈퍼멘토
-전)서울신문 선임기자, 경영기획실장 등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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