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충렬의 파르마콘] 작금의 한국경제가 위기상황인가? 그렇지 않은가? 정부는 경제위기 상황(또는 위기를 앞둔)으로 보고 필요한 노동개혁법과 기업활력 제고를 위한 특별법(소위 원샷법)의 연내 처리를 국회에 연일 촉구하고 있다. 어쨌든 수출을 기반으로 하는 한국경제에서 지속적인 수출 감소와 경제 활력의 침체는 심각한 수준이며 여러 경제지표의 하방 추세로 보아 이대로 두면 정말 경제위기가 닥칠 것이라는 데는 어느 누구도 반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내년은 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심각하게 제기되고 있다.

정부는 지난 12월 16일 경제장관회의에서 심각한 경제위기를 극복 또는 예방하기 위해 국회에 필요한 법률의 처리를 촉구하면서, 규제특구(free regulation zone)제도 도입 등 대대적인 규제개혁을 추진하겠다고 하였다. 때늦은 감은 있지 정부의 경제위기 극복의 하나로 규제개혁을 강조하고 추진하겠다는 방식은 긍정적이다. 경제위기 극복 또는 경제발전과 규제개혁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세계가 놀랄 정도의 고속 경제성장을 이루고 OECD에 가입한 이후 두 차례의 심각한 경제위기를 겪었다. 그 두 차례의 경제위기 극복과정에서 규제개혁의 효과를 실증적으로 검정한 국가이기도 하다.

1998년 경제위기 극복과정의 규제개혁
첫 번째 위기는 1997년 말 김영삼 정부에서였다. 한국은 ‘아시아 외환위기’로 인한 외환부족 등으로 IMF의 구제 금융을 받게 되었고 사실상 IMF의 경제 통치를 받게 되었다. 많은 직장인이 거리로 내몰렸고, 1997년 11,000$에 달하던 1인당 국민소득(GDP per capita income)은 1998년에 7,400$로 떨어지기도 하였다. 물론 당시 한국의 경제위기의 원인에는 국회(야당)가 노동관련 법률 등을 제때 처리해 주지 않은 때문이라는 지적도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어쨌든 경제위기는 닥쳤고 그 극복과정에서 규제개혁이 큰 몫을 하였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1998년 정부는 금모으기 운동, 기업의 해외매각 등과 함께 투자유치 및 경제 활성화를 위한 대대적인 규제개혁을 추진하였다. 당시 규제개혁은 각 부처에 ‘기존 규제 50% 폐지’를 할당하여 강제적으로 추진하는 방식을 사용하였다. 대다수의 부처에서 규제의 50%혁파는 불가능하고 부작용이 있을 것이라고 불만해 하였다. 그러나 김대중 대통령의 의지는 너무 강하였고, 그 결과 파악된 11,125건의 규제 가운데 48.8%에 해당하는 5,430건을 폐지하고, 21.7%에 해당하는 2,411건의 규제를 개선했다. 한국은 규제개혁 등 다양한 노력으로 1999년에 1인당 국민소득의 1만불 대를 다시 회복하였고, IMF 구제금융도 2001년에 모두 갚았다. 당시 물량위주의 규제개혁은 이후 제법 부작용을 가져오기도 하였고 일부 무리한 추진 방식이었다는 평가도 있었다. 그러나 더 어려운 경제위기를 극복을 위해 과감한 개혁이 필요하였다는 사실과 위기극복에 규제개혁이 기여하였다는 사실만큼은 부정하기 어렵다.

2009년 경제위기 극복과정의 규제개혁
두 번째 위기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한 경제위기였다. 2008년 미국의 투자은행인 리먼브러더스(Lehman-Brothers)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로 인한 파산에서 시발된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해 OECD 국가 대부분이 2009년 상반기에 마이너스 경제 성장(평균 –2.9%)을 하는 등 대다수의 국가가 어려움을 겪었다. 한국도 회사채 등 신용채권의 발행이 어려운 신용 경색이 심화되었고, 2008년 21,000$인 1인당 국민소득이 2009년에 19,800$로 떨어지기도 하였다.

당시 이명박 행정부는 경제위기의 조기 극복을 위한 조치로 2009년 상반기에 28조 원의 추가경정예산을 투입하는 등 정부의 재정지출을 늘리면서 투자 활성화와 소비 촉진을 위한 강력한 규제개혁을 선택하였다. 어쨌든 강력한 규제개혁 등으로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2010년에 2만불 대로 다시 회복하였고 글로벌 경제위기를 극복하였다.

당시 이명박 정부의 규제개혁은 기존의 점진적이고 시간이 필요한 방식에서 벗어나 ‘한시적 규제유예(Temporary Regulatory Relief: TRR)라는 비상조치적인 새로운 규제개혁 기법을 고안하여 사용하기도 하였다. TRR은 기존의 이해관계를 떠나 먼저 위기 극복에 필요한 한시적인 기간(당시 2년을 선택)만큼 집행을 우선 유예하고, 유예기간 이후에 규제의 집행력을 다시 회복토록 하는 방식이었다. 결국 TRR은 법적 안정성, 유예기간 전‧후의 집행에 비해 형평성에 반하는 규제개혁의 방식이었다. 그러나 그 방식이 어떠하든 어려운 경제위기를 극복을 위해 과감한 조치가 필요하였고 위기극복에 한 몫을 하였다는 사실만큼은 부정하기 어렵다.

규제개혁, 현실화에서 벗어나 전략적으로 하여야...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작금의 한국 경제가 비상적인 조치가 필요한 정도로 위기상황이냐 그렇지 않느냐는 논란은 의미가 없다. 한국의 경제가 어렵고 시급한 경제 활력 조치가 필요하다는 시점이라는 것은 틀림이 없기 때문이다. 늦은 감은 있지만 정부가 경제위기 극복에 해법의 하나인 규제개혁을 선택한 것은 바람직하다.

그러나 규제개혁을 하려면 제대로 하여야 한다. 앞에서 살펴본 두 차례의 경제위기 극복과정에서 ‘규제 50%폐지’, ‘한시적 규제유예’ 등 당시 상황과 같이 강력하고 효과적인 추진이 필요하다. 그간 정부의 규제개혁은 주로 피규제자(기업, 국민)로부터 현재의 애로를 건의 받거나(일부 부처에서 찾아)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으로 추진하였다. 수동적이고 현재의 애로를 해결하는 방식은 규제현실화에 불과하다. 규제현실화는 이미 걸림돌로 작용한 이후에 해결(개선 시점의 실기)하자는 것이며, 건의된 현재 애로의 치유(현재 문제해결에 불과)에 그치며, 건의되거나 발굴한 대상(개별 규제에 한정)에 그치게 된다. 규제는 파르마콘(pharmacon)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위기상황에는 규제현실화에서 벗어나 규제의 순기능을 극대화하는 전략적 규제개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 류충렬 박사

[류충렬 박사]
학력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박사
경력 2013.04~2014.01 국무조정실 경제조정실장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 민관합동규제개혁추진단 단장
국무총리실 공직복무관리관
국무총리실 사회규제관리관
현) 한국행정연구원 초청연구위원

저서 규제의 파르마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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