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화 칼럼] 왕년의 스포츠 스타가 사업가로 변신해 불우 체육인들을 돕기 위한 행복 나눔의 전도사로 나서 눈길을 끌고 있다. 체육인들을 위한 행사라면 동서남북 어디를 가리지 않고 나타나는 김원기 엔에스하이텍(주) 대표이사(54)가 바로 그 주인공.

김원기 대표는 1976년 몬트리올올림픽 레슬링 양정모의 첫 금메달에 이어 8년만인 1984년 LA올림픽에서 우리나라에 사상 두 번째 금메달을 안겨준 스포츠 스타 출신. 올림픽 개막 3일째 만에 예상 밖 금메달을 안겨 준 김 대표 덕분에 우리 선수단은 한껏 사기가 올라 금메달 6개를 따내며 처음으로 세계 10강에 올랐다. 결국 김 대표의 올림픽 금메달은 우리나라가 세계 스포츠 강국으로 발돋움하는 기폭제가 된 셈이다. 김 대표가 체육인들의 복지에 신경을 쏟기 시작한 것은 18년 전인 199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전남에서 벌인 내 고장 인재 키우기 육성 사업에 참여해 김영남(1988년 서울올림픽 레슬링 금메달리스트)과 함께 생활이 어렵고 부모가 없는 레슬링 선수 1명씩에 대해 매달 30만원씩 후원을 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김영남이 카자흐스탄으로 떠나면서 김영남이 후원하는 선수까지 맡게 되었습니다.”

▲ 김원기 엔에스하이텍(주) 대표이사(54)

김대표는 1년 뒤 이들을 좀 더 보살피기 위해서는 단순히 돈만 지원하는 후원보다는 아버지가 되어 정성을 쏟는 것이 낫다는 판단에 따라 ‘부모와 자식’의 인연을 맺었다. 물론 정식 양자로 입적을 시키지는 않았지만 이렇게 인연을 맺은 아들과 딸이 지금까지 모두 9명에 이른다. 아들 7명은 레슬링, 딸 2명은 태권도 선수다. 이 중 큰 아들 강래구는 지난 강릉전국체전 레슬링 그레코로만형 85㎏급 남자일반부에서 금메달을, 올해 전남체고 2학년인 임금별은 올해 초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에서 최연소 금메달을 따냈다.

“어려운 선수들을 후원하는 것 때문에 아내와 상당한 갈등도 겪었습니다. 우리도 어려운 형편에 선수들을 후원하는 것 자체를 아내가 이해를 하지 못했습니다.”

김 대표 부부에는 사실 자식이 없다. 자식을 갖기 위해 실험관 아기 시도를 9번이나 했지만 그토록 소망하던 아기를 갖는데 실패했다. 이런 탓인지 3년 전부터 아내가 더 적극적으로 후원에 나서고 있다면서 벌써 큰 아들은 결혼도 시키고 나머지들도 학생인 아들과 딸 각 한명씩을 빼고는 모두 직장에 다니고 있다며 환하게 웃음을 터뜨린다.

“나는 레슬링 선수로서 제1의 인생, 대기업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제2의 인생, 사업을 하면서 제3의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이를 이겨내고 버텨낼 수 있었던 것은 주위의 많은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힘들고 어렵게 운동을 하는 선수들을 위해 작은 도움이나마 주는 것이 내가 받은 도움을 조금이나마 갚는 길입니다.”

김 대표는 은사인 최경수 선생과 어머니의 눈물이 없었다면 레슬링에 입문하지도 못했고 삼성생명에 근무하면서는 이건희 회장과 황학수 대표의 지극한 레슬링 사랑이 금메달의 원동력이었다고 회고했다. 또 사업을 시작해서는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았다는 김 대표는 시련을 준 사람도 있지만 돌이켜보면 그 사람들 덕분에 더 강한 삶을 사는 계기가 되었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2003년 빚보증을 잘못 서는 바람에 정말 어려운 처지에 빠진 적이 있었습니다. 지금의 사업을 하게 된 계기가 되는 회사에 입사하게 되었는데 나의 어려운 처지를 이해한 강대일 대표가 연봉을 일시불로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 절친한 친구인 하형주(1984년 LA올림픽 유도 금메달리스트)가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다고 해서 미국에서 공부해 훌륭한 지도자가 되어달라는 뜻에서 그 돈에서 1천만 원을 준적이 있습니다. 내가 힘들고 어렵지만 정말 친한 친구이니까요. 그 돈을 받은 형주가 친척들도 안주는데 너무 고맙다고 몇 번이나 이야기를 한 적이 하더군요.”

지금까지 아내조차 모르는 이야기가 공개되면 자칫 부부싸움의 빌미가 될수도 있다고 너스레를 떤 김 대표는 이보다 오히려 이 사실이 알려져 형주가 쑥스러워 하지 않을지 모르겠다고 더 걱정을 했다.

“2009년 엔에스하이텍(주)을 창업해 3년 동안 5억이나 빚을 질 정도로 어려워 어떤 때는 10개월씩이나 월급을 가져다주지 못한 적도 있습니다. 그래서 조금이나마 생활에 보태기 위해 경험도 없는 칼국수 집을 하기도 했습니다.”

엔에스는 바로 ‘New Start’에서 첫 글자를 따온 것. 초심(初心)으로 사업을 하겠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엔에스하이텍은 자신의 전공인 레슬링과는 전혀 관계없는 오염물질을 국가기준치에 맞춰 배출하는 계측제어장치를 생산 시공하는 환경산업체다. 바로 2003년에 입사한 회사에서 배운 기술이다. 이제 회사가 본격 괘도에 올라서 전국 30개 이상 지자체와 계약을 맺었다. 매출도 올해 30억 원 정도에서 내년에는 50억 원까지 예상된다고.

김 대표는 후배 체육인들을 위한 행사라면 어디든지 발 벗고 나선다. 한국스포츠종합복지재단에서 진행하는 체육인에 대한 전반적인 교육을 비롯해 희망마라톤페스티벌, 스포츠 봉사단과 함께 하는 자장면 나눔 행사 등 지역에서 벌이는 행사에도 빠짐없이 참석한다. 대한체육회에서 진행하는 멘토링 아카데미에는 태릉선수촌과 진천선수촌을 오가면서 국가대표 선수들을 대상으로 경기를 앞두고 정신강화를 위한 특강, 그리고 은퇴선수를 위한 특강 등에는 모든 바쁜 일정을 팽개치고 참석해 후배들에게 자신의 경험을 들려주기를 서슴지 않는다.

“국가대표 출신뿐만 아니라 대부분 운동선수들은 사회라는 톨게이트에서 나서는 순간 다른 사람들이 고속질주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정작 자신은 어떻게 나가야 할지를 전혀 모릅니다. 특히 운동선수들은 자존심이 강해 힘들고 어려운 일은 안 하려고 합니다. 당연히 어려운 환경에 처한 체육인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대한체육회가 늦었지만 행복 나눔 행사를 통해 불우 체육인들을 돕기 위한 행사를 벌여 너무나 고맙고 감사합니다.” 김 대표는 행복 나눔 행사가 지나치게 경직돼 자칫 형식에만 치우칠 수 있다면서 주도면밀한 계획아래 이루어져야 한다는 따끔한 충고도 잊지 않았다.

“여자배구의 김연경과 같은 세계적인 배구스타를 비롯해 동‧하계올림픽 메달리스트들이 참석하고도 기금은 겨우 3천만 원에도 미치지 못했습니다. 다양한 홍보로 일반인들의 호응을 이끌어내고 팀을 육성하는 기업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는 다양한 아이디어가 아쉬웠습니다.”

앞으로도 후배 체육인들을 위하는 일이라면 어떠한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고 앞장서겠다는 김 대표는 이야기를 마치자말자 사업 때문에 지방으로 열흘 이상 출장을 가야한다며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

▲ 정태화 한국체육언론인회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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