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충렬의 파르마콘] ‘규제의 순기능’ vs ‘길을 막는 전봇대’
규제는 ‘공익이나 경제사회 질서를 위해 국민의 권리를 제한하거나 의무를 부과’하는 법령이다. 따라서 규제는 피규제자(개인이나 기업)에게 하고자 하는 행위를 못하게 하거나 의무를 부과하는 무척이나 성가신 모습을 갖게 된다. 그러나 규제의 성가심은 다행히도 ‘공익이나 바람직한 경제사회’의 목적을 전제로 한다는 것이다. 즉 규제를 준수하면(성가시지만) 바람직한 경제사회로 나아가게 된다는 것이 규제의 정당성이다. 따라서 규제는 경제사회를 위한 합목적성에 부합되어야 정당성을 갖게 된다. 예들어 산업발전을 위한 규제의 경우에 기업들이 주어진 규제를 준수하면 할수록 기업의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산업의 발전으로 이어지게 되어야 타당하게 된다는 것이다. 결국 규제는 성가시고 나쁜 것만이 아니라 피규제자로 하여금 바람직한 경제사회로 나아가도록 선도하고 유도하는 순기능을 갖고 있는 것이다.

만약 규제가 이러한 순기능보다 오히려 기업의 창의성을 저해한다면 그러한 규제들은 흔히 말하는 ‘길을 막는 전봇대’, ‘신발 안 돌멩이’, ‘손톱 밑 가시’ 심지어 ‘도려내야할 암 덩어리’에 더 가깝게 된다. 이런 점에서 규제는 파르마콘(pharmacon)이다. 잘 다듬어 사용하면 규제의 순기능이 작동하는 우리사회의 약(藥)이 되나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면 길을 막는 전봇대의 독(毒)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규제는 규제의 순기능, 즉 국민과 기업의 경제사회 발전을 위한 창의적 활동이 가능하도록 항상 개혁되고 다듬어져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많은 규제들은 순기능인 선도・유도적 기능이 제대로 작동되도록 미리 다듬어지는 기회를 갖지 못하고 있다. 어떤 경우에는 기업에서 애로와 불만이 제기된 후에야 뒤 늦게 개선되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애로제기에도 불구하고 방치되어 결국 암 덩어리가 되기도 한다.

‘규제현실화’ vs ‘규제개혁’
규제가 규제로서의 순기능을 제대로 못하고 전봇대가 되는 이유는 크게 4가지 유형으로 분류해 볼 수 있다. 처음부터 잘못 만들어진 제조하자(瑕疵)가 있는 경우, 파르마콘(독을 내재한 약)인 규제의 내재된 독성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한 경우, 기술・국제경쟁 등 규제환경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 일선 집행기관에서 잘못 집행(사용)하는 경우 등이다. 결국 규제는 제조에서부터 집행까지 일련의 과정을 고려하여 종합적인 관점에서 만들어지고 수시로 다듬어 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간 한국의 규제개혁은 많은 경우 피규제자로부터 애로를 건의 받아(일부 정부가 애로를 발굴하여) 그 애로를 해결하여주는 방식으로 추진되어 왔다. 기업이나 민원인이 제기하는 현재의 애로를 해결해 주는 규제개선은 규제현실화이다. 규제현실화는 규제환경과 기술발달이 급속하게 변화하는 오늘날에는 곧 추가적인 개혁의 필요성을 되풀이하게 된다. 또한 규제의 순기능인 피규제자의 유도・선도적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되어 진정한 의미에서 규제개혁으로 보기도 어렵고 규제개혁 만족도도 높지 못하게 된다.

규제 순기능의 제고와 전략적 규제개혁
앞에서처럼 규제는 피규제자를 선도・유도하고 정책목표를 실천하는 수단이다. 단순한 규제현실화는 규제의 순기능을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게 만든다. 이런 이유로 규제개혁은 규제현실화에서 벗어나 규제의 순기능을 극대화하기 위한 전략적인 개혁이 필요하게 된다. 현재의 당면한 애로의 해결에서 벗어나 미래의 정책목표에 적합한 규제개혁 목표를 설정하고 규제를 다듬어야 한다. 또한 애로가 제기된 해당 규제만이 아니라 연관된 규제들을 함께 개선하여야 하며, 규제를 담는 법제화 방식과 집행과정의 투명성까지를 고려하여 종합적으로 개혁하여야 한다. 그간 많은 규제개혁에도 불구하고 규제만족도가 높지 못하다는 것은 정부가 노력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라 규제현실화에 주로 머물렀다는 지적도 가능하게 된다.

규제의 순기능을 제고하는 규제개혁은 무엇보다 규제를 통해 추진하고 하는 규제개혁의 목표설정이 중요하다. 규제개혁의 목표가 설정되어야 개혁할 대상규제(법령)의 범위가 가시화되며, 선정된 개혁대상의 규제유형과 성격에 따라 적용할 규제개혁 수단(Tools)의 선택이 가능하게 된다. 선택한 수단에 따라 개선안을 마련하면 그 개선안을 담을 법제화 방식 나아가 집행과정을 고려한 행정절차 개선 및 사후관리 방식까지 순차적으로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규제의 순기능을 제고하기 위한 규제개혁은 어떤 목표에 맞추어 어떻게 추진하고 최종적으로 어떠한 사후관리시스템을 갖출 것인가에 대한 순차적이고 종합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규제개혁 기법(수단)의 사용을 예들어 보자. 현재 사용가능한 규제개혁의 기법(Tools)은 다양하다. 한시적 규제유예(TRR: temporary regulatory relief), 일몰제(sun-set review), 성과기준 설정(setting performance standard), 규제 자유지역 설정(free regulation zone system), 네거티브 시스템(negative system review) 등 여러 가지가 있다. 이러한 기법들은 각기 장・단점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규제개혁 과정에서 사용할 수단은 규제개혁의 목표설정과 대상규제의 유형과 성격에 따라 어떤 기법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는 달라진다. 하나의 규제에 하나의 기법이 적용될 수도 있고 중복적으로 적용할 수도 있게 된다. 그러나 그간의 규제개혁에서 규제개혁의 수단(기법)을 먼저 설정해 놓고 대상규제를 선정하는 방법으로 추진되기도 하였다. 이제 민원인이 제기하는 애로를 해결하는 규제현실화에서 나아가 보다 전략적으로 규제개혁을 추진해 보자.

▲ 류충렬 박사

[류충렬 박사]
학력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박사
경력 2013.04~2014.01 국무조정실 경제조정실장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 민관합동규제개혁추진단 단장
국무총리실 공직복무관리관
국무총리실 사회규제관리관
현) 한국행정연구원 초청연구위원

저서 규제의 파르마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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