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화의 지방체육회 이야기]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의 해가 밝았다. 리우의 하늘 아래서도 세계 스포츠 강국의 위세를 떨쳐야 하지만 올해 대한민국 스포츠는 전망이 그다지 밝지만은 않다. 2014년부터 불어 닥친 스포츠 4대악 파동에 이어 지난해 체육단체 통합 방향을 두고 한차례 홍역을 치렀고 올해는 통합체육회 발족과 경기단체 통합 등으로 더욱 어수선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지방체육회도 이런 분위기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지방체육회 현장을 둘러본다.

대한민국 체육 100년, 비상을 준비하는 서울특별시 체육회
서울특별시는 대한민국의 중심이다. 정치, 사회, 문화, 경제, 교통 등 모든 것이 시작되고 모든 것이 마무리된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는 서울은 대한민국의 시발점이자 종착역이다. 1394년 한양(漢陽)으로 조선의 중심이 된 서울은 1994년 10월 28일 정도(定都) 600년을 맞은 영욕(榮辱)이 점철된 유서 깊은 도시이자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도시이기도 하다.

제100회 전국체전이 주는 의미
서울시가 2019년 제100회 전국체전을 유치했다.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의 예행연습을 겸해 열린 제67회 전국체전 이후 무려 33년만이다.

무엇보다 100이라는 숫자가 주는 의미는 심장하고 대단하다. 2019년은 일제의 압제 속에서 애국과 건민, 그리고 독립의 염원을 안고 대한체육회 전신인 조선체육회가 창립된 뒤 100년이 되는 해와 겹친다. 따라서 대한체육회 100주년, 제100회 전국체전으로 100이 겹치는 쌍백년(雙百年)인 2019년에 전국체전이 개최된다는 뜻은 지난 100년의 한국 체육의 중심이 서울이었듯이 앞으로의 100년의 한국체육도 서울에서 시작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 같다.

전국체전이 종합대회로 치러지기 시작한 것은 1934년 제15회 전국체전부터였다. 서울이 마지막으로 개최한 제67회 전국체전까지 52년 동안, 반이 넘는 28번을 서울에서 열었다. 특히 소년체전이 전국체전에서 분리돼 별도로 치러지기 시작한 1972년 제53회 전국체전까지 38년 동안은 25번이나 서울에서 개최했다. 말 그대로 서울이 전국체전에 관한 한 독점적 지위를 누렸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 같다.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이 열리기 전만 하더라도 전국체전은 시‧도 단체장들이 자기 고장의 종합 순위에 따라 희비쌍곡선을 그렸고 각 경기장들은 관중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국체전이 서울에 집중된 것은 지역의 스포츠 인프라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었다. 즉 지방은 종합대회를 치를 정도의 경기장 시설을 갖추지 못한 탓이었다. 이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서울이 전국체전 단골 개최지가 된 것이다.

하지만 1980년대 들어 경제사정이 호전되고 아시안게임과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지방에도 최신식 경기시설들이 들어서면서 전국체전 열기는 서울에서 지방으로 옮겨 붙었지만 서울은 하루 종일 밀리는 교통체증, 부족한 숙박시설로 1만 명이 넘게 참가하는 전국체전을 치르기에는 오히려 부적합한 도시로 변해갔다. 이런 연유로 서울은 33년 동안 소외당하면서 각종 체육시설은 방치돼 노후화되어 버렸고 1995년 제76회 전국체전 종합우승 뒤 20년 동안 우승과 인연을 맺지 못하는 체육 위상 저하 현상이 발생하고 말았다.

서울이 제100회 전국체전 개최를 ‘새로운 100년!! 시작, 도약, 비상, 서울시에서!!’로 정하고 일찌감치 준비에 착수한 것도 대한민국 체육의 중심을 다시 시작한다는 서울시 모든 체육인들의 염원을 담고 있다고 해도 무방할 것 같다.

뒤늦게 발족한 서울시체육회
서울시체육회는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난 뒤인 1953년 2월 20일이 되어서야 겨우 발족했다. 경남체육회와 충북체육회가 광복이 되고 난 다음해인 1946년에, 전북 1947년, 강원 1948년, 경북 1949년 등 지방들이 독자적인 체육회를 조직했지만 서울은 체육회를 조직하지 않았다. 당연히 서울시체육회에 가맹된 경기단체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 체육의 상징인물인 김성집 선수가 1948년 런던올림픽에서 올림픽 메달 1호를 따내고 1950년 4월에는 함기용 송길윤 최윤칠 선수가 54회 보스턴 마라톤에서 1위부터 3위까지 석권하는가 하면 서울시 체육인들이 전국체전에 참가할 수 있었던 것은 대한체육회가 서울체육회를, 중앙경기단체가 서울시 경기단체의 역할과 기능을 대신했기 때문이었다.

이런 까닭에 서울체육의 독자적이고 체계적인 발전을 위해 서울을 대표하는 체육회의 발족을 뒤늦게 추진하게 되었고 서울시청 문화과 체육과장으로 재직하던 최창흠을 주축으로 체육단체 대표 16명이 발기인이 되어 1953년 2월 20일 대한체육회 회의실에서 창립총회를 열고 서울특별시체육회로 출범했다.

갓 출범한 서울시체육회가 주최한 첫 사업은 1953년 3월 8일 서울운동장에서 3‧1절 경축 체육대회였다. 서울시체육회가 출범하고 난 뒤 불과 보름 만에 대회를 주최했다는 점에서 서울 체육인들의 저력을 느끼기에 충분할 것 같다. 그 뒤 서울시체육회는 전국체전종목을 우선으로 축구, 육상, 야구 등 20개 종목의 가맹경기단체를 조직해 한국전쟁으로 맥이 끊긴 각종 경기대회를 부활하고 새로운 대회를 창설하는 등 우리나라 최고 도시, 최고 체육회로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했다.

하지만 서울시체육회가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었다. 1961년 5‧16 직후 국가재건최고회의의 포고령에 따라 1961년 7월 29일 서울시체육회를 비롯한 전국 시‧도체육회와 가맹경기단체가 해산되고 말았던 것. 이에 따라 가맹단체들은 중앙경기단체에 통폐합되어 버렸고 1980년 경기단체가 재조직되기까지 19년 동안 중앙경기단체가 서울지역 경기단체 기능을 대신하고 서울시체육회는 가맹단체가 없이 운영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이러한 와중에도 서울시체육회는 구(區) 지부를 중심으로 활발한 체육활동과 함께 각종 체육대회를 창설해 한국체육의 중심으로서 역할을 하는데 게을리 하지 않았다. (이상 ‘서울체육 60년’ 일부 참고)

‘스포츠를 통한 시민이 행복한 서울’
서울시체육회는 ‘스포츠를 통한 시민이 행복한 서울’을 미션으로, ‘대한민국 스포츠 리더’를 비전으로 삼아 각종 사업을 펼치고 있다. 서울시체육회가 벌이는 사업들은 동‧하계 전국체전 참가를 비롯해 서울시장기(배) 대회 개최, 월간 서울 스포츠 발간을 통한 스포츠 활성화 사업, 체육 유공자 포상, 학교체육진흥사업, 각종 국제대회 개최, 국제교류지원, 가맹경기단체 지원, 국내체육행사 지원, 희망 서울 스포츠클럽 운영, 서울광장스케이트장 운영, 서울시직장운동경기부 운영 등 다양하다.

서울시체육회는 이러한 각종 사업들의 궁극적인 목표로 엘리트체육 균형 육성, 체육자립 환경 조성, 스포츠 공정성 확보, 학교체육 활성화 등 네 가지로 잡고 있다.

먼저 엘리트체육 균형 육성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과제로는 경기단체 운영 혁신, 비인기종목 육성 발전, 서울시청 운동부 효율적 운영, 국제대회 성공개최를 꼽았다. 체육자립 환경 조성을 위해서는 체육회의 법인화 추진과 스포츠 마케팅 적용 분야 확대하며 체육시설 경영 경쟁력 제고와 대외언론홍보 강화를 과제로 제시했다.

또 경기단체 운영 책임성 강화, 선수인권과 미래보호, 공정하고 투명한 스포츠 환경 조성, 선수폭력 예방 및 인권교육 강화를 통해 스포츠 공정성을 확보하는 한편 학교운동부 지원 강화, 스포츠클럽 육성, 코칭아카데미 활성화, 취약종목 선수 장학금 지급으로 학교체육 활성화에 힘을 쏟고 있다.

여기에서 눈여겨 볼 부분은 ‘서울시장기(배) 대회 개최’와 ‘희망 서울 스포츠클럽 운영’이다. 가맹경기단체의 경기력을 향상시키고 우수한 스포츠 인재를 발굴하여 서울체육의 위상과 활성화를 위하여 1980년부터 개최하기 시작한 서울시장기(배) 대회는 육상 등 43개 종목에 걸쳐 열린다. 서울시체육회 정가맹경기단체가 49개 단체임을 감안하면 거의 모든 종목이 열리는 셈이다. 바로 서울 체육의 저력이 여기서 나온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 같다.

서울시장기(배) 대회가 엘리트체육 육성의 근간이 되고 있다면 희망 서울 스포츠클럽 운영은 시민들에게 스포츠 참여의 기회를 제공하고 공부하는 운동부, 운동하는 학생 등 선진국 형 지역 스포츠클럽으로 정착시켜 우수선수 발굴과 비인기 종목육성 및 청년 스포츠인 일자리 창출을 위해 마련됐다.

2006년 청소년 스포츠클럽으로 시작해 2008년에 서울 스포츠클럽으로 명칭을 바꾸었는데 운영종목은 5~7개 종목으로 연초에 결정한다. 종목의 특성에 맞추어 기본기부터 단계별로 전문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성취도에 따라 차별화 교육을 실시하는 것이 특징이다. 지난해에는 총 예산 1억 8천만원으로 인라인롤러, 핸드볼, 하키, 소프트볼, 희망어린이 등 5개 종목에 13명의 지도인원(지도강사 4, 파트타임 4, 보조강사 5명)이 참여했다. 희망어린이 스포츠교실은 성북지역 복지지정학교 11개교를 대상으로 스포츠 체험을 통해 체육활동을 할 수 있는 여건 마련에 중점을 두었다.

스포츠클럽을 통해 인라인롤러에서 2015년 전국소년체전에 서울대표로 10명(초등 7명, 중등 3명)이 출전한 것을 비롯해 휘경여중 핸드볼에 1명, 송곡여중 하키에 6명, 희망어린이에서 초등학교에 2명이 축구선수로 등록, 엘리트체육 인재를 발굴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미래희망 스포츠 청소년 지원
중‧장기적으로 스포츠 꿈나무 발굴‧육성을 위해 육성장학금을 지급하는 ‘미래희망 스포츠 청소년 지원’은 서울시체육회의 자랑거리 가운데 하나다.

‘미래희망 스포츠 청소년 지원’은 저소득층 스포츠 자녀들이 지속적으로 운동에 집중하여 우수선수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제도다. 이를 통해 서울시 체육발전의 기초가 될 우수선수를 확보하고 더불어 학교체육진흥을 도모하는 일석이조(一石二鳥)의 효과를 노리고 있다.

가맹경기단체나 서울시교육청의 추천을 받은 초‧중‧고등부 저소득층 선수들이 지원 대상이다. 소년소녀가장을 최우선으로 선발하고 기초생활수급자, 한부모가정, 장애가정, 다문화가정 순으로 우선순위로 선정한다. 지난해에는 초등학생 6명, 중학생 36명, 고등학생 40명 등 총 82명에게 서울시체육진흥기금으로 2억8천만 원을 지원했으며 올해는 지원금을 더욱 확대해 3억7천만 원으로 늘였다.

실제로 지난해 강릉전국체전에서 고등학생으로 지원을 받은 40명 가운데 26명이 출전해 테니스, 레슬링 체조 등에서 금메달 4개, 은메달 6개(농구 양궁 체조 카누 근대5종), 동메달 2개(검도 롤러)를 따냈다. 또 소년체전에서는 중등부 36명 가운데 18명이 출전해 금 1(체조), 은 4(레슬링 체조 근대3종) 동메달 4개(레슬링 체조 하키)를 획득해 경기력 향상과 함께 위축된 학교 체육의 활성화에 기여를 한 것으로 평가됐다. 특히 저소득층 청소년에게 스포츠를 통해 미래의 희망과 꿈을 심어주고 올바르게 성장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주었다는 점에 큰 점수를 주었다.

서울시체육회는 앞으로도 우수선수 육성 및 종목간 균형 발전을 통한 경기력 향상을 유도하기 위해 가맹경기단체별로 초‧중‧고등부 1명씩을 선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예산 범위 내에서 경기력이 우수한 불우학생은 추가로 선발해 지원할 계획이다.

▲ 정태화 한국체육언론인회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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