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모의 테마토크] 지난 설 연휴 한국 극장가는 ‘검사외전’(이일형 감독, 쇼박스 배급)의 독무대였다. 70%가 넘는 압도적인 점유율로 흥행을 ‘싹쓸이’했다. 예술에 완벽은 없듯이 순수예술보다 작가주의적 측면에서 몇 단계 아래인 영화, 그 중에서도 철저한 상업영화는 빈틈투성이기 마련이다. ‘검사외전’이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서 본 관객들이 별 불만 없이 만족하거나, 그 양면의 입소문에도 불구하고 예매를 하겠다는 이들이 앞을 다투는 이유는 재미있는 것만큼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영화를 만들 때나 보고자 할 땐 분명히 목적이 있기 마련이다. 쇼박스가 이 영화에 돈을 댄 이유는 오로지 흥행이었다. 제대로 된 오락영화 한 편 만들어 설 연휴 라인업에 끼어 넣어서 새해 벽두부터 ‘갈퀴 노동’ 좀 해보자는 심사였다.

▲ '검사외전' 스틸

목적지가 분명하다보니 정류장마다 볼거리 먹거리를 배치하는 데 애먼 노력을 쏟을 필요가 없다는 여정은 확실했다. 시나리오의 빈틈을 메꾸는 데 시간과 돈을 들이느니 캐릭터만 살리면 됐고, 그건 캐스팅 하나로 해결됐다. 공권력을 남용하는 검사나, 잘생긴 사기꾼 얘기는 이미 식상하지만 두 사람을 주인공으로 한 버디무비라면 나쁘지 않다는 것쯤은 알았을 것이고, 수사를 위한 위장 수감이 아닌, 누명에 의한 억울한 투옥이란 설정 역시 신선하진 않아도 재미는 있다는 것 역시 감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전체적인 스토리는 매우 뻔하고 진부하며 털끝만큼의 철학적 고뇌도 읽히진 않지만 그 모든 게 황정민이란 버팀목 위에서 강동원이란 매력덩어리가 버라이어티 예능을 펼친다는 강점으로 카무플라주하고 보완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들 만했다.

관객들은 이 영화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을 지적하면서도 ‘그래도 재미있다’는 감상평과 강동원에 대한 찬사를 그치지 않고 있다. 이동시간 대기시간 등을 합해 거의 반나절을 투자한 게 아깝지 않다는 결과다. 오락영화인데 그 정도면 되는 게 아닐까? 놀이동산에 가서 신나게 롤러코스터를 탔으면서 집에 와서 ‘그런데 얻은 게 뭐지?’라고 후회하는 바보는 없다. 애초에 목적이 정해져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기준으로 봤을 때 오는 17일 개봉되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데드풀’은 ‘검사외전’보다 몇 수 위다. 한 마디로 오락영화의 끝장을 보여준다. ‘검사외전’의 실질적인 주인공은 사기전과 9범의 한치원(강동원)이다. 타고난 용모로 여자를 후리는 데 명수고, 그 빼어난 외모를 이용해 남을 속이는 데 선수다. 분명히 ‘나쁜 놈’인데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로 영화는 포장했다.

▲ '데드풀' 스틸.

‘데드풀’의 데드풀(라이언 레이놀즈) 역시 마찬가지다. 지성미 정의감 도덕성 따윈 찾아볼 수 없는, 무식하고 거칠며 제멋대로인 ‘놈’이 바로 그다. 본명이 웨이드인 그는 특수부대에서 복무한 뒤 현재 하찮은 해결사 일로 하루하루를 먹고 사는 ‘건달’이다. ‘업무’가 끝나면 자신 같은 용병들이 모이는 음침한 바에 앉아 술로 하루를 마감하면서 내일의 일거리를 찾는 그는 어느 날 여기서 ‘천생배필’ 바네사(모레나 바카린‘를 만나 동거하고 드디어 결혼을 약속하지만 곧바로 암 선고를 받는다.

그리고 살기 위해 악당의 달콤한 꼬임에 속아 뮤턴트가 되는 과정에서 얼굴 등 온몸이 흉측하게 변한 뒤 얼굴을 고쳐 바네사 앞에 나타나겠다는 열망으로 악당들과 전쟁을 펼친다. 배급사는 데드풀의 액션을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쐈다’는 복싱영웅 무하마드 알리에게서 영감을 얻었다고 하지만 사실 그의 활약은 중국의 무협활극에 가깝다. 과장된 할리우드의 육탄액션에 중국의 검법을 결합했다. 새로울 것은 없지만 발달된 첨단 기법으로 잡아내는 순간정지 장면으로 사실감과 박진감을 더해 마치 ‘분노의 질주’를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손바닥의 습도를 최대치로 끌어올린다.

▲ '검사외전' 스틸.

‘검사외전’의 재미는 캐릭터와 대사에 있다. 그건 ‘데드풀’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한국영화는 왜 할리우드가 상업영화의 본산지인지 ‘데드풀’을 보고 배워야 할 듯하다. ‘데드풀’은 슈퍼히어로 블록버스터치고는 스케일이 작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미만 따지면 단연 최상급이다. 캐릭터와 대사가 차지다 못해 혓바닥에서 떨어질 줄 모르고 맴돈다. 데드풀은 자신의 대사와 더불어 내레이션을 펼치는가 하면 수시로 관객에게 말을 걸고 설명을 하며 심지어 조롱하기까지 한다. 이게 영화인지 연극인지 예능인지 헷갈릴 정도다. 한치원이 친구들에게 “사기란 말이지”라며 사기수법을 전수하지만 정작 자신은 어설픈 연기로 사기가 들통나는 것처럼 데드풀 역시 허술하기 그지없다.

거창하게 거대 조직과 대결하겠다는 그는 차 한 대 없어 택시를 타고 전쟁터에 나가면서 총알을 안 챙기는가 하면 마지막 결투에서 비장한 각오로 각종 무기를 구해 커다란 가방에 쓸어담은 뒤 가방을 택시 안에 두고 내리는 치매환자 수준이다. 택시비? 수트핏이 망가지기 때문에 지갑을 안 갖고 다닌다는 허접스런 변명을 둘러대곤 하이파이브로 끝이다. 레이놀즈는 자신의 연기력과 영화 선택능력을 스스로 놀리는가 하면, 액션의 선배 리암 니슨을 웃음거리로 만들고, 진지한 ‘다크 나이트’ 배트맨을 동성애자로 짓밟는다.

▲ '데드풀' 스틸.

‘데드풀’이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인 이유는 베드신과 노출신 탓도 크지만 상스러운 대사 역시 무시할 수 없다. 모든 캐릭터가 욕을 입에 달고 살며 당연히 성적인 묘사와 화장실 유머가 난무하는데 남녀의 일상적인 성 관련 대사부터 자위행위 동성애 변태 등도 빈번하다. 심지어 ‘구멍’에 넣는 게임마저 성적으로 묘사하는가 하면 손가락으로 섹스를 묘사하는 천박한 유치함마저도 매우 훌륭한 웃음의 소재로 승화시키는 재주를 부린다. 마법 같은 영화다.

‘검사외전’이 그 ‘격’에 비해 과한 흥행성적을 올리는 이유는 경제현황 및 사회적 현상에 밀접한 관계가 있음이 분명하다. 이에 근거할 때 ‘데드풀’은 ‘검사외전’과는 비교도 상상도 할 수 없는 웃음거리가 탑재돼있다. 단, 영화와 팝에 관한 기본적 상식이 필수다. 영어나 미국사회에 대한 지식까지 갖췄다면 서너 번 봐도 안 아깝다. 그리고 영화적 값어치는 기대하지 말자.

엑스맨 멤버인 콜로서스를 여자에 대한 배려의 매너와 정의감에 넘치는 러시아 ‘근육남’으로 설정해놓고서 정작 미국 격투가 출신 여자한테 흠씬 두들겨 맞는 ‘허당’으로 설정한 영화다. 주의! 오프닝 크레딧부터 ‘빵빵’ 터진다. 미리 웃을 무장을 단단히 하고 입장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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