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찬품앗이' [김경아 칼럼]

김경아 칼럼니스트l승인2016.03.08l수정2016.03.08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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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아의 ‘특별한 당신’] ‘품앗이’. 일이라는 뜻의 ‘품’과 교환이라는 뜻의 ‘앗이’가 만나 ‘품앗이’란 말을 이룬다. 참으로 정감가고 아름다운 우리말이다. 예전에는 농가에서 주로 쓰던 말이었으나 요즘은 ‘반찬품앗이’, ‘놀이품앗이’, ‘육아품앗이’, ‘학습품앗이’, ‘장난감품앗이’, ‘등하교품앗이’ 등등 필요에 따라 ‘품앗이’란 이름을 붙여 모임을 만드니 다양한 이름의 ‘품앗이’ 모임을 주변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 오랜 진리를 실현하고 있는 똑똑한 엄마들, 오늘의 ‘특별한 당신’으로 만나본다.

“나물 한 가지만 무쳐도 손이 열 번은 더 가요. 보채는 아이들 달래랴 밥하랴.. 정신없는 식사 준비시간에 매번 머리가 아팠는데 이젠 해방됐네요.”(김정선. 34) 4살, 2살 두 아이를 키우는 정선씨는 식사시간마다 곤욕을 치러댄다. 편식이 늘어가는 미운 네 살 큰 아이는 밥 때마다 맛있다 맛없다를 남발하며 반찬투정하기 일수이고, 이유식 끝자락에 있는 두 살 둘째아이는 손에 잡히는 모든 걸 먹고 싶어 하니 밥상 앞에만 서면 누나 밥그릇 아빠 국그릇 끌어당기고 엎어버리는 폭군으로 변한다. ‘싱겁다 소금 더 달라’는 남편 시중들랴, ‘맛없다 계란 먹고 싶다’하는 큰 아이 반찬 챙기랴, 숟가락 두들겨가며 이것저것 헤집고 다니는 둘째 아이 신경 쓰랴.. 끼니마다 같이 밥 먹기는 고사하고 앉았다 일어났다 분주하게 움직이니 식사시간, 정말이지 전쟁터가 따로 없다.

정선씨를 구해 준 것은 이웃 엄마들의 ‘반찬품앗이’. 주변을 둘러보니 그녀와 같은 고민을 하는 엄마들이 한 둘이 아니었다. 지역 인터넷 카페에서 만난 그녀들은 매일 반복되는 ‘식사전쟁’을 극복해보리라 맘먹은 유진씨의 ‘반찬품앗이’ 모집 글에 깨알같은 댓글을 달았다. “생각보다 인원모집이 빨리 돼서 깜짝 놀랐어요. 그만큼 같은 고민을 하던 엄마들이 많았던 거겠죠. 인원모집 마감 이후에도 함께 하고 싶다는 문의 글들이 많아 곤란하기까지 했답니다.”(반찬모임리더 이유진. 33) 첫 모임을 가진 그날, 수다삼매경에 빠진 ‘반찬품앗이’ 멤버들은 금세 친구가 되었다. 함께 모여 웃으며 눈시울을 적시며 그간 그녀들이 겪었던 힘든 시간들을 나누다보니 ‘나만 겪는 일이 아니구나.’ 싶어 안심도 되고 위로도 되어 서로를 이해하고 서로를 토닥여줬다. “우울했어요. 밥도 제대로 못 먹고 매일 이게 뭔가 싶기도하고.. 괜히 집에서 꼬박꼬박 저녁 먹는 남편이 밉기까지 했으니 지금 생각하면 미안한 일이지요.”

일주일에 한 번, 그녀들이 모인다. 한 사람에 반찬 두 가지씩. 한 달에 한 번씩 메인반찬과 서브반찬을 정해 반찬계획을 짜고, 제비뽑기로 각자 맡을 반찬을 정한다. 요리솜씨가 없어도 상관없다. 맛있으면 맛있는 대로 맛없으면 맛없는 대로 추억이 되고 경험이 되니, 너그러이 이해하고 넘어가는 멤버들의 배려에 요리 초보 민선씨도 부담이 없다. “정말 요리 실력이 없어요. 평소에 우리 집 반찬만 해도 걱정이 태산이었는데, 남의 집 밥상에까지 올라간다니 머리가 어지러웠죠. 다행히 요리 잘하는 은희 언니가 있어, 요리하다가 모르는 것이 있거나 맛이 안날 땐 SOS를 쳐요. 시원한 냉커피 한 잔 대접 하면서요.”(김민선. 29) 동변상련의 힘이 커서일까. 잘하는 이는 끌어주고 못하는 이는 배우며 칭찬하니, 요리 실력은 늘어가고 칭찬에 어깨춤이 절로 난다. “오랜만에 칭찬을 받으니 살아있는 느낌이 들었어요. 익숙해진 식구들은 맛있다는 칭찬에 인색 했더라구요. 내가 잘하는 것이 있다는 것이, 누군가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 정말 기분 좋았죠.”(이은희. 38)

‘반찬품앗이’는 반찬만을 위한 모임이 아니다. 비슷한 처지의 주부들이 만나 서로의 고민을 나누고, 노하우를 나누며 힘을 얻어 가는 활력소이자 휴식처이다. 어떤 이는 반찬 걱정을 덜어가고 어떤 이는 낮아졌던 자존감을 회복하고, 필요에 따라 만난 모임이었지만 만남이 거듭될수록 그녀들은 친구로 동생으로 언니로 마음을 나누는 ‘인연’이 되어갔다. “반찬모임이 있는 날을 가족들이 더 기다려요. ‘맛있는 날’이라며 신랑도 일찍 퇴근한다니까요.”(우미진.32) 여덞명의 멤버가 두 가지씩 반찬을 만들어 오니, 모두 열여섯 가지의 반찬이 차려진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양 손은 무겁지만 일주일동안 반찬걱정을 덜 생각에 마음은 새털처럼 가볍다.

“이제 식사시간이 간편해 졌어요. 밑반찬이 가득하니 얼마나 든든한지요. 먹기 직전, 뜨끈한 찌개하나만 끓이면 근사한 밥상 완성이예요.”(김민선)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들이 모이니 그 또래가 좋아하는 반찬이 자연스레 화두가 되고, 아이들에게 좋은 먹거리가 무엇인지 함께 연구하고 만들어간다. 안심먹거리로 요리하는 것은 당연하다. 깨끗하고 좋은 것을 먹이려는 다 같은 주부마음으로 내 아이에게 먹일 것이라 생각하고 요리하니 맛도 맛이겠거니와 영양도 만점이다. 맛있는 반찬이 차려진 밥상 앞에서 편식쟁이 첫 아이는 입맛을 다시고, 싱겁다 짜다 반찬 투정했던 남편도 고분고분 한 그릇 뚝딱. 여유가 생긴 탓에 함께 밥을 먹을 수 있음은 물론이요, 둘째 이유식에도 더 정성을 쏟아 숟가락 두드리기에 정신없었던 둘째도 얌전해졌다.

나누면 두 배가 된다 하지 않던가. 기쁨도 고민도 두 배 이상의 효과를 얻으니, ‘반찬품앗이’ 이만하면 합격 이상이다. 함께 하며 삶의 지혜를 얻어가는 이들. 스마트한 그녀들의 모임은 오늘도 화기애애(和氣靄靄), 신나는 수다와 함께 맛있는 냄새가 가득하다.

오늘의 특별한 당신, ‘반찬품앗이’ 우리 동네엔 없을까? 분주한 도마질을 멈추고 머리를 맞대 고민을 해결해 보자. ‘식사전쟁’에서 승리한 정선씨처럼.

김경아 칼럼니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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