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라이트’와 ‘태양의 후예’가 공존하는 아름다움 [유진모 칼럼]

유진모 테마토크 편집국장l승인2016.03.09l수정2016.03.13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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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모의 테마토크] 지난달 29일 오전(한국시각) 미국 LA 할리우드 돌비 극장에서 열린 제88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스포트라이트’가 각본상에 이어 최고의 영예인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하는 이변을 낳았다. 백인들의 잔치라고 해서 흑인 영화인들이 대거 보이콧한 아카데미가 낳은 기적이다. 그러자 나비효과는 금세 나타났다. ‘스포트라이트’가 국내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더니 개봉 일주일 만에 14만 관객이 다녀갔다. 당연히 아카데미 효과다.

▲ '태양의 후예'. KBS 방송 화면 캡처

지난 2일 방송된 KBS2 ‘태양의 후예’는 23.4%(닐슨코리아)의 시청률을 올렸다. 지난달 24일 14.3%로 시작해 이튿날 2회에 15.5%를 기록하며 돌풍을 예고한 뒤의 보란 듯한 파죽지세다. 마치 극장가에서 ‘데드풀’과 ‘귀향’이 동시에 흥행할 수 있는 지난주의 상황을 보는 듯한 기시감을 준다.

▲ '스포트라이트' 스틸 이미지

‘스포트라이트’는 미국이기에 만들 수 있지만, 미국이라서 빛을 보기 힘든 내부고발 영화다. 2001년 여름 보스턴 로컬신문 보스턴글로브의 탐사보도팀 스포트라이트는 1970년대부터 은폐돼온 보스턴 대교구 가톨릭 사제들의 아동성범죄 사건을 파헤치기 시작해 온갖 교란과 훼방과 압력의 우여곡절을 이겨낸 끝에 6개월 만에 기사를 낸다. 팀은 쏟아지는 제보 등에 힘입어 한 해 동안 600여 건의 후속 보도를 낸 뒤 이듬해 퓰리처상을 받는다. 보도 후 249명의 신부가 고소당했고, 교황청은 2014년 지난 10년간 제기된 3420건의 성직자 성추행 사건을 처리하면서 848명의 사제직을 박탈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 프랜시스 베이컨의 경험주의 철학, 현대의 기호학 이론 등을 녹인 지적인 보고’라는 극찬을 받은,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이탈리아의 위대한 작가 움베르토 에코의 첫 장편소설 ‘장미의 이름’은 사람의 행복을 위해야할 종교가 편견과 독선과 아집으로 오히려 자유를 구속한다고 웅변한 바 있다.

‘태양의 후예’는 거창한 제목처럼 3회째 고대 최초의 군집 도시국가인 수메르 문명의 중심지 우루크에서 힌트를 얻은 가상국가 우르크에서 펼쳐지고 있다. 외형상 특전사와 대형종합병원이라는 체질적으로 판이한 두 공간과 각각의 무대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네 남녀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지만 결국 청춘남녀의 직업활동과 사랑이 기본줄거리인 트렌디 드라마다. 내용은 스피디하고 다양한 내러티브를 촘촘하게 엮으려는 노력이 보이고, 그래서 단순한 캔디 드라마의 전형에서 벗어난 듯하지만 한국 드라마 특유의 유치함을 떨치는 데는 실패했다. 예외 없이 시청자의 피부에 닭살이 돋게 만드는 대사와 설정이 펼쳐진다. 물론 그게 드라마의 한계이기는 하지만.

▲ '태양의 후예'. KBS 방송 화면 캡처

실력은 있지만 ‘빽’이 없어 번번이 실패의 문턱에서 좌절해야 하는 흉부외과 전문의 강모연(송혜교)이 원장의 성접대 제안을 보기 좋게 뿌리쳤다가 하필이면 유시진(송중기) 대위가 파견된 우르크의 의료봉사단장을 맡게 돼 8개월 만에 재회한다는 출발부터 작위적이고, 그들이 보트를 타고 데이트를 하는 장면은 전형적인 클리셰다. 두 사람이 재회하는 장면에서 거센 바람에 의해 모연의 스카프가 떨어지고, 당당하게 슬로모션으로 걷던 시진이 그걸 주워 건네는 장면은 학예회 수준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드라마가 여느 미니시리즈와 달리 시작부터 이례적인 높은 시청률로 시청자들을 사로잡고 있는 이유는 분명하다. 바로 대형 영화배급사 뉴가 제작사로 나서 영화처럼 사전제작했다는 게 가장 긍정적인 배경이다. 타 드라마에 비해 비교적 충분한 시간을 갖고 영화적 시스템을 도입해 만들었는데 차별화가 안 된다면 뉴가 제작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영화제작사 태원엔터테인먼트는 최근 ‘달콤살벌한 패밀리’로 체면을 구기긴 했지만 예전에 ‘아이리스’로 드라마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긍정적 평가를 받은 바 있다. 영화제작사라면 드라마제작사와 달라야 마땅하다.

▲ '스포트라이트' 스틸 이미지

‘스포트라이트’에 대해 누리꾼은 ‘한국은 절대 만들 수 없는 영화’ ‘한국 기자들은 TV 내용을 받아쓰며 안 본 사람에게 재미없으니 보지 말라고 얘기할 뿐’이라는 등의 아주 흥미로운 댓글로 아낌없는 응원을 보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탐사보도를 소재로 한 영화나 드라마는 있었지만 본격적인 기자정신을 전면에 내세운 작품은 나온 적도 없고 그래서 성공한 적도 없다. 물론 영화 ‘모비딕’도, 드라마 ‘피노키오’도 있었다. 하지만 재미를 위한 상품이었지 ‘스포트라이트’처럼 ‘힘’의 모순과 비리를 파헤치고 그것으로 사회적 파장을 일으킨 팩트를 상기시킨 다큐멘터리적 성격과는 거리가 멀었다. ‘스포트라이트’는 세상이 알지만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은 충격적인 진실을 보다 널리 알림으로써 확인과 각성을 촉구한다. 하지만 ‘모비딕’이 ‘보이지 않는 힘’을 까발려도 여전히 ‘보이지 않는 힘’은 보이는 엄청난 권력을 휘두르고 있고, ‘피노키오’가 재벌의 언론장악과 정치적 커넥션을 내부자고발로 고함쳐도 언론 역할을 제대로 하는 언론의 확률은 과반수에서 모자란다.

▲ '태양의 후예'. KBS 방송 화면 캡처

‘스포트라이트’가 계몽이라면 ‘태양의 후예’는 오로지 소비다. 그건 영화 ‘내부자들’ 역시 마찬가지의 한계를 지녔다. ‘내부자들’은 여당의 대통령 후보-유력 일간지의 논설주간-재벌 총수 등의 삼각커넥션이 대한민국을 장악하려는 음모를 꾸미고, 여기에 법조계와 공무원과 언론을 장악하는 과정을 거치며 거기에서 조금이라도 뜻에 어긋나는 세력이 있다면 정치깡패를 동원해 가차 없이 제거한다는 내용이라 ‘소름끼치듯 현실감 있게 봤고, 권선징악의 구도로 결말이 나서 시원했다’는 평가 속에 흥행에 성공했지만 세상이나 언론은 변한 게 없다.

다수의 누리꾼이 인터넷 연예매체의 속성과 환경을 잘 모르기에 ‘남의 속’도 모르고 ‘TV나 베낀다’고 표현하는 게 해당 매체 기자들에겐 서운할지 모르겠지만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그런 비난을 가할 땐 ‘귀향’이 제작에 14년이나 걸렸으며, 그 제작에 수많은 뜻있는 국내외 사람들의 도움이 보태진 사연쯤은 한번쯤 생각한 뒤에 성토할 일이다.

히틀러에 항거해 한쪽 팔과 한쪽 발을 잃은 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동서로 갈라진 독일이 처참한 환경 속에서 재기할 수 있게끔 초석이 된 통일독일의 영웅 쿠르트 슈마허가 사회민주당 재건에 앞장선 이유는 간단했다. 민주주의(자본주의)와 사회주의는 서로 적으로 맞서는 게 아니라 상호보완하고 협력해야만 국민과 국가를 살린다는 이론이었고, 그렇게 독일은 전범으로서 진심어린 사과와 법적인 징벌을 거치며, 그로 인한 가난과 분단의 아픔을 모두 이겨낸 후 오늘날 다시 유럽의 중심에 우뚝 설 수 있었다.

▲ '스포트라이트' 스틸 이미지

우리나라는 당연히 전 국민이 관람하거나 아니면 진작 모든 한일 간 갈등이 풀려 아예 제작조차 되지 말았어야 할 ‘귀향’의 흥행이 놀랍다며 호들갑을 떨거나 혹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바라본다. 아카데미가 흑인에 대해 편파적인 이유는 미국이 영국과 독일을 중심으로 한 유럽 출신 백인들이 주도해 세운 국가고, 개척시절 아프리카 흑인들을 잡아와 노예로 ‘사육’했으며, 이후 히스패닉과 동양인들을 막노동꾼으로 부려온 게 고작 역사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도 그들은 할 말은 있지 않은가? ‘타이타닉’의 리어너도 디캐프리오는 우습게 알아도 ‘레버넌트’의 그는 존중할 줄 안다. 더구나 ‘스포트라이트’에 작품상을 주고 ‘매드 맥스’에 6개의 오스카를 안겨 줬다.

유진모 테마토크 편집국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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