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민경의 스포츠를 부탁해] 2012년 런던올림픽, 사재혁 선수는 팔꿈치가 탈구되는 고통에도 끝까지 바벨을 놓지 않는 투혼으로 국민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그 장면은 사재혁을 ‘오뚝이’라는 투혼의 대명사로 만들었다. 하지만 올해 초, 오뚝이는 무너지고 말았다. 사재혁 선수가 후배 폭행 사건으로 구설수에 오르며 스포츠계는 큰 충격에 휩싸였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해 9월에 불거졌던 쇼트트랙 신다운 선수의 폭행 사건이 일어난 지 불과 3개월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신다운 선수는 훈련 중에 후배 선수가 자신을 추월하면서 넘어뜨리자 화가 나 후배 선수를 폭행하여 2015-16시즌 출전 정지 징계를 받은 바 있다.

▲ 사진=연합뉴스TV 뉴스 화면 캡처

폭행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자 스포츠 폭력은 고질병처럼 이슈로 떠올랐다. 스포츠계는 다른 어느 조직보다 엄격한 선배와 후배, 스승과 제자 간의 수직적 위계질서를 갖추고 있다. 그래서 폭력은 운동의 일부로 받아들여지고 피해자들은 반항하지 못하게 된다. 반항은 곧 선수 생활의 끝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얼마 전, 루지 대표 팀의 한 선수는 코치의 상습적 폭행에 대표 팀을 이탈해 홀로 귀국했다. 하지만 연맹은 그에게 무단이탈을 이유로 자격정지 2개월의 징계를 내렸다. 다행히도 이 징계는 소송을 통해 무효가 됐고 손해배상도 받게 되었다. 하지만 올림픽 포기와 함께 선수 생활에 큰 피해를 입은 것은 되돌릴 수 없는 상처로 남았다.

지난 2014년, 스포츠 (성)폭력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10명 중 3명의 선수가 폭력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함께 정부와 대한 체육회는 2014년부터 (성)폭력을 비롯해 승부조작 및 편파판정, 입시비리, 조직 사유화 등 스포츠계의 4대 악을 근절시키겠다고 했다. 하지만 2년이 흐른 지금 체육계의 폭력은 줄어들지 않고 있다. 폭력적인 운동 환경은 나아지기는커녕 선배의 폭행, 스승의 폭행은 시간이 흘러서도 계속되고 있다. 좋은 성적을 위해서라면 맞으면서 운동을 배우는 것이 당연시되었다. 후배가 선배가 되어 같은 방식을 따르고, 또 지도자가 된 뒤 제자를 때리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 사진=YTN 뉴스 화면 캡처

현재 경찰이 운영하는 스포츠 4대 악 신고센터에 접수되는 양은 해마다 늘고 있다고 한다. 여전히 체육계는 폭력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뜻이다. 정부와 대한 체육회의 결단에도 불구하고 폭력이 줄지 않는 이유는 권위적이고 수직적인 조직문화와 반드시 성적을 내야 한다는 성적 지상주의 때문이다. 정부와 대한 체육회의 결단력도 중요하지만, 폭력은 정책보다도 팀의 구성원들 각각의 인식이 바뀌어야 근절될 수 있다. ‘체벌이 있어야 성적을 낸다.’, ‘너희들은 우리 때보다 덜한 것이다.’ 등 폭력의 합리화는 절대 이 환경을 바꿀 수 없다.

폭력에 대한 피해도 심각하지만 폭행 피해를 알린 선수들은 2차, 3차 피해로 다시 상처를 받게 된다. 먼저, 폭력 가해자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이 큰 충격으로 다가온다. 또한 피해 사실을 알린 이후에 선수들 사이의 따돌림까지 당하는 경우가 발생하고, 신고 이후 선수 생활을 마감하게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때문에 선수들은 일을 크게 만들고 싶지 않고, 불이익이 두려워 신고조차 하지 않는다. 사재혁 사태 역시 피해 선수의 선수 생활을 포기할 각오로 내린 저항이었다.

특히 가해자들에 대한 약한 처벌은 또다시 폭력을 불러오는 큰 문제이다. 그동안 체육계는 국가대표라는 이유로, 지도자라는 이유로, 경고 수준에서 징계를 마무리하곤 했다. 폭력에 대한 강력한 징계는 지금보다 폭력사태를 크게 줄이는 강력한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얼마 전 대한 역도연맹이 사재혁 선수에게 ‘자격정지 10년’의 처벌을 내린 것은 당연한 징계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정부와 대한 체육회는 체육인들의 인권을 위해 노력해오고 있다. 대한 체육회는 2009년부터 ‘스포츠人권익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체육인이라면 누구나 신고하고, 상담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신고와 상담에 대한 두려움이 운영을 더디게 하고 있는 실정이다. 얼마 전에는 전국 동계체전 기간 중 대회에 참가한 지도자, 선수, 학부모 등을 대상으로 스포츠 폭력·성폭력 예방을 위한 홍보활동을 하기도 했다. 이런 활동을 통해 선수와 지도자 개개인들의 인식을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새해 초부터 들린 이번 사재혁 폭력 사태는 씁쓸한 기분을 들게 했다. ‘오뚝이’로 불리며 우리에게 큰 감동을 안겼던 스타를 이렇게 잃게 되었다. 하지만 피해 선수의 고발이 없었더라면 그는 여전히 폭력 선배로 남아있었을 것이고 또 다른 피해자가 나타났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한국 체육계의 치부를 걷어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앞으로 있을 국제 대회에서 메달을 따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모든 선수들이 폭력 없는 환경에서 운동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좋은 변화는 선수와 지도자들의 인성을 기르고, 결과적으로는 좋은 성적까지 따라오게 될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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