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트맨 대 슈퍼맨', 잭 스나이더의 욕심 대 캐릭터의 힘 [유진모 칼럼]

유진모 테마토크 편집국장l승인2016.03.31l수정2016.03.31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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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제공=워너브러더스코리아

[유진모의 테마토크] 개봉 전부터 엄청난 기대감을 키운 DC의 마블의 인해전술에 대한 반격의 신호탄인 ‘배트맨 대 슈펴맨: 저스티스의 시작’(이하 ‘배트맨 대 슈퍼맨’)은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1만원을 내고 봐도 아깝지 않을 내용에 151분이란 러닝타임이 결코 길게 느껴지지 않을 만큼 재미와 완성도를 자랑하지만 배트맨과 슈퍼맨을 굳이 죽도록 싸우게끔 만들 정도로 대담한 메시지를 담고 있지는 않다. 결정적으로 ‘왓치맨’이란 히어로무비 최고의 철학적 메시지를 만들어낸 잭 스나이더 감독이란 이름값이 실망스럽다. 그러면 어쩌랴, 배트맨의 팬이든, 슈퍼맨의 팬이든, 아니면 히어로무비에 열광하는 마니아건 무조건 필독서임은 분명한 것을.

스나이더는 전작 ‘맨 오브 스틸’에서 슈퍼맨을 리부트했다. 크립톤의 과학자 조의 아들로 태어난 칼이 왜 갓난아이 때 지구로 보내져 클락이란 이름의 지구인이 돼야 했는지를 보여주고, 성장한 뒤 아버지의 원수 조드 장군과 지구를 담보로 한 일대 결전을 벌이는 과정을 웅장한 스펙터클로 그렸다. 조드는 칼을 내놓지 않으면 지구를 파괴하겠다고 미국 대통령을 겁박하고, 정부와 군대는 이에 응할 것인지, 아니면 그동안 암암리에 국지적으로 지구방어에 힘썼던 슈퍼맨의 손을 들어줄지 고민하지만 이내 조드가 어차피 지구를 파괴하고 여기에 새로운 크립톤을 건설할 것과 더불어 슈퍼맨이 없어진 크립톤 편이 아니라 지구 편임을 새삼 깨닫고 지구의 운명을 슈퍼맨에게 맡긴다.

▲ 사진제공=워너브러더스코리아

동등한 능력을 지닌 조드를 천신만고 끝에 제압한 클락은 슈퍼맨이란 이름의 영웅이 되지만 마지막 장면에서 스나이더는 한 가지 의문을 제기한다. 부하 여자 장교가 슈퍼맨이 섹시하다며 눈에서 하트를 ‘뽕뿅’ 뿜어내자 남자 장교는 한숨을 쉰다. 만약 저렇게 전지전능한 힘을 가진 슈퍼맨이 적이라면? 그건 ‘배트맨 대 슈퍼맨’의 제작을 위한 밑밥이었다. 전작의 무대가 됐던 미국의 대도시는 여기선 메트로폴리스란 가상의 도시가 된다. 바로 강 건너 옆의 도시는 고담이다. 슈퍼맨(칼, 클락, 헨리 카빌)은 본의 아니게 조드와의 대결로 메트로폴리스를 쑥대밭으로 만들었고, 당시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됐다. 브루스 웨인(배트맨, 벤 애플렉)은 어느덧 강도의 총에 맞아 죽은 아버지보다 더 늙었다. 외견상으로 보나 ‘배트맨’ 시리즈에 근거할 때 40대 중후반 정도다. 몸이 예전 같지 않은 그는 그래서인지 괜한 노파심에 애끓는다. 바로 슈퍼맨이 언젠가 독재자가 될 것이란 확신이다. 권력을 지닌 자는 결국 그 힘에 취해 타락함으로써 세상을 지배하려 한다는 것. 반박하는 집사 알프레드(제레미 아이언스)에게 ‘고담에 선한 사람이 얼마나 남았냐’며 자신의 논리를 확신하는 게 근거다. 그는 아직도 눈앞에서 부모가 총에 맞아 죽은 꿈을 꾸고 끝 모를 박쥐동굴에 빠져 몸서리쳤던 트라우마에서 헤어나지 못하며 시달린다. 슈퍼맨과 조드의 전쟁 때 그의 웨인 그룹의 건물이 붕괴됐고, 당시 한 직원이 철골에 깔려 두 다리를 잃었다.

▲ 사진제공=워너브러더스코리아

메트로폴리스에 괴짜 하나가 나타난다. 렉스 루터(제시 아이젠버그)라는 젊은 사업가인데 브루스는 직감적으로 그가 아프리카 지역의 테러의 배후임을 깨닫는다. 그건 클락도, 클락의 연인 로이스 레인(에이미 아담스) 데일리 플래닛 기자도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다. 로이스가 취재를 해보니 국방부 역시 알고 있었지만 대놓고 규제할 결정적인 증거는 아직 잡지 못하고 있는 상황. 렉스는 교묘한 사업수완을 발휘해 조드의 사체 및 우주선을 확보한 뒤 엄청난 음모를 꾸민다. 자신의 유전자와 크립톤의 첨단 공학을 이용해 조드를 엄청난 괴물 둠스데이로 되살리려 하는 것. 그 근거는 인도양 한 가운데서 크립토나이트가 발견됐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안 렉스는 비밀리에 이를 사들여 운반하는데 정보에 관해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브루스가 알아내고 탈취한다. 그 역시 슈퍼맨을 제거하고 싶었으니. 그는 이것으로 슈퍼맨을 무력화시키는 가스총과 아예 죽일 수 있는 창을 만든다.

슈퍼맨 역시 천방지축인 배트맨이 언젠가 인류에 큰 악영향을 끼칠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배트맨은 지난 작품들에서-특히 크리스토퍼 놀란의 '다크나이트' 시리즈-항상 정체성에 대해 고민해왔다. 그는 적을 상대할 때 총을 안 쓴다는 원칙은 지키지만 법은 잘 어겨 선의의 피해를 끼치고 피해자를 양산해왔다. 그가 추구하는 것은 정의지만 과정의 불의의 피해 따윈 안중에 없다. 그래서 ‘다크나이트’ 시리즈에서 고담의 영웅이었던 하비 검사가 악당이 된 것이다. 슈퍼맨 역시 이 점에 주목한다. 영화는 철저하게 배트맨의 주관적 시각에서 전개된다. 다수의 관객은 ‘맨 오브 스틸’에서 엄청난 스케일에 집중하느라 미처 못 느꼈겠지만 사람이 아닌 신적인 존재 슈퍼맨과 조드가 싸우면서 도시 하나가 초토화됐다. 그렇다면 당연히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을 것이다. 데일리 플래닛의 여직원이 무너진 건물더미에 깔려 죽을 뻔한 장면이 삽입됐다. 슈퍼맨이야 지구와 지구인을 구하겠다는 대의명분으로 나선 것이지만 80억 명을 구하느라 본의 아니게 최소한 8만 명이 죽게 만들었다.

일단 오락영화로서의 값어치는 충분하다. ‘어벤져스’ 급은 아니지만 최소한 향후 DC가 마블에게 어떤 반격을 펼칠지 즐거운 고민을 해도 될 만큼 블록버스터와 히어로무비에 열광하는 마니아들은 물론 평범한 관객들에게조차도 반짝반짝 빛나는 마스터피스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스나이더 감독의 장엄한 걸작 ‘왓치맨’에 비교하면 철학과 분위기와 메시지와 전편에 흐르는 주제 등과 더불어 이를 충분하게 살려주는 조명 미장센 음악 음향 그리고 연출은 매우 아쉽다. ‘맨 오브 스틸’을 배트맨의 시각으로 푸는 가운데 우주의 헐크를 재미의 구원군으로 불러와 배트맨 슈퍼맨을 연합케 하고 여기에 양념으로 원더우먼까지 가담시켰다고나 할까?

▲ 사진제공=워너브러더스코리아

뭣보다 문제는 배트맨과 슈퍼맨이 서로를 적대시해야 했던 이유와 이를 해소하는 근거가 전혀 설득력이 없다는 점과 배트맨이 슈퍼맨을 제압하는데 어김없이 크립토나이트가 등장했다는 클리셰다. 첫 대결에서 슈퍼맨의 자비로 목숨을 구한 배트맨은 철저한 사전준비를 통해 드디어 슈퍼맨을 죽일 수 있는 기회를 잡지만 ‘마사를 구해달라’는 슈퍼맨의 애원에 살기를 거둔다. 마사는 죽은 브루스의 엄마의 이름이자 현재 렉스에게 볼모로 잡힌 슈퍼맨의 인간 엄마이기도 하다. 알프레드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사람들의 추종마저 외면하고, 그토록 슈퍼맨을 죽이고 싶었던 배트맨의 ‘정의’가 대의명분을 잃는다. 새롭게 추구하고자 하는 정의조차 고작 죽은 엄마에 대한 그리움이란 유아적 발상이라니!

슈퍼맨과 배트맨은 영웅이지만 완전히 다른 성격과 행동양식을 지녔다. 슈퍼맨은 신적인 존재지만 의외로 국지적이다. 지구의 모든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그는 단 한 명의 위험에 처한 시민도 구해내는 섬세한 마음을 지녔는데 그래서 그는 특히 자신의 주변사람에 대해 각별하다. 그에게 유일한 가족인 지구 어머니 마사는 정신적 지주고, 연인 로이스는 그냥 그가 지구에서 살아야하는 이유 자체다. 렉스가 그를 유인하기 위해 갑자기 건물 옥상에서 로이스를 밀치자 어느새 그가 날아와 그녀를 구해주는 식이다. 게다가 그는 렉스가 마사를 납치하자 렉스를 죽일 수 있는 순간에 렉스에게 무릎을 꿇고 배트맨을 죽이라는 명령을 수행하러 날아간다. 이쯤 되면 신이 아니라 '민폐'다.

▲ 사진제공=워너브러더스코리아

배트맨은 어떤가? 낮엔 돈을 긁어모으는 사업가로 자본주의의 선두에 서서 달리고 초저녁엔 파티를 열곤 여자들과 놀아나지만 밤이 깊어지면 비로소 박쥐가면을 쓰고 뒷골목을 배회하며 악당을 때려눕힌다. 심지어 그는 수감된 범죄자를 일일이 찾아가 박쥐 낙인까지 찍는 등 집착과 아집과 분노 속에서 사는 외통수의 고집쟁이다. 정의사회구현이 아니라 스트레스 해소나 취미 수준이다. 이번 작품에서도 침대 위 그의 옆에 뜬금없는 여자 한 명이 있었다. ‘원 나잇 스탠드’ 상대다. 상황이 이러니 그들이 서로에 대해 가진 반감의 설득력이 현저하게 떨어진다. 그토록 지구인에게 친절하고 정의감에 넘치는 그들은 서로에 대한 적대감을 표면화하기 전에 최소한 대화라도 해보는 노력조차도 기울이지 않는다. 데드풀이야 원래 비뚤어지고, 이기적이고, 정의감 따윈 일찌감치 맥도널드랑 바꿔먹은 얼치기니까 그렇다 치고, 슈퍼맨은 사람들이 신격화해 시내 한 가운데 대형 동상까지 세워놓고 우러러보는 인물이다. 배트맨 역시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고담 최고의 갑부로서 가질 건 다 가졌고, 누릴 건 다 누린 뒤 이제 은퇴할 나이가 됐으면 그냥 조용히 살면서 자선사업이나 하는 게 더 영웅다운 게 아닐까?

제시의 연기력은 마치 ‘다크 나이트’의 스케어 크로우 역의 킬리언 머피를 연상케 할 만큼 소름 끼치는 수준이긴 하지만 ‘슈퍼맨’의 이전 시리즈에서 봤던 진 핵크먼이나 케빈 스페이시가 워낙 강렬했던 탓에 현저하게 비교가 돼 도저히 렉스라는 생각이 안 드는 게 극복할 수 없는 핸디캡이다. 더구나 그의 ‘진정 선하다면 강할 수 없고, 강하다면 선할 수 없다’는 논리는 굉장히 억지스럽다. 마치 이 영화의 근간이 되는 브루스의 ‘힘을 가진 자는 타락한다’는 생각을 부연설명하는 것 같아 불편하다.

▲ 사진제공=워너브러더스코리아

영화가 관객을 끌어들일 수 있는 기본요소는 흥미와 몰입이다. 그래야 공감과 이해를 동반함으로써 재미를 느끼거나 메시지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배트맨 대 슈퍼맨’은 흥미와 몰입 면에서 뛰어나지만 공감과 이해가 쉽게 뒤따르지 않는다. 스나이더의 철학은 ‘왓치맨’에서 절정을 이룬 뒤 연기처럼 사라졌다. 마치 윌리엄 프리드킨 감독이 호러의 걸작 ‘엑소시스트’ 이후 졸작만 내놓은 것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늙은 배트맨 벤 애플렉은 크리스천 베일과 다른 개연성을 보유하고 있으며, 헨리 카빌은 역대 슈퍼맨 중 크리스토퍼 리브와 더불어 가장 슈퍼맨다운 매력을 뿜어낸다. 짧은 노출이지만 강한 임팩트를 준 원더우먼 역의 갤 가돗은 지금까지 슈퍼히어로무비의 조력자에 불과했던 슈퍼히로인의 전성기를 예고하는 전투능력과 매력을 지녀서 반갑다.

유진모 테마토크 편집국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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