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인생과 크리스마스 케이크 [김나윤 칼럼]

김나윤 청춘칼럼니스트l승인2016.04.10l수정2016.04.11 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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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윤의 베짱이 ‘문화찬가(撰加)’]

육십 세에 저 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아직은 젊어서 못 간다고 전해라
칠십 세에 저 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할 일이 아직 남아 못 간다고 전해라
-노래 <백세인생> 中-

2015년, 그리고 2016년 상반기, 대한민국을 들썩이게 한 노래 <백세인생>의 한 구절은 다들 들어봤을 것이다. <백세인생>은 한 인터넷 커뮤니티 ‘짤방’에서 시작되어, ‘~전해라’신드롬을 불러일으켰고, 노래 한 구절을 남녀노소의 머릿속에 각인시켜 선풍적 인기를 끈 노래이다. (심지어는 대북방송에까지 진출하여, 북한까지 <백세인생>의 멜로디는 전파되고 있다.) 육십 세, 칠십 세를 이어 백오십 세 까지 ‘저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못 간다고 전해라’라는 단순하고 반복적인 가사를 지닌 노래는 흔히 말하는 ‘백세시대’의 도래를 실감하게 한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오. 우리 모두 건강하게 살아가요’라고 끝맺는 노래는 건강하게 살고 싶은 인간의 근원적 욕망을 담아낸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말처럼, <백세인생>은 백세시대에, 건강한 삶에 대한 인간의 갈망을 직설적으로 표현한 노래이다.

역설적이게도, <백세인생>이 들려오는 이 시대에, 여전히 20대 안에서의 구분 짓기는 횡행한다. ‘꺾였다’라는, 혹은 ‘크리스마스 케이크’와 같은 표현들이 나이를 설명하고 비유하는 것은 낯설지 않은 대화의 풍경이다. “20대 중반이면 꺾였다.”, “여자 나이는 크리스마스 케이크라 하더라.(25세 이상이면 찾지 않는다는 표현)”  등등 소위 ‘나이 후려치기’에 대한 발화들은 일상생활에서, 그리고 매스미디어에서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20대를 지난 사람들이 20대에게, 혹은 같은 20대가 20대에게 건네는 말 속에서, 숫자는 의미를 입는다. 위와 같은 발화 속에, 특정 숫자 이하의 나이는 가장 아름다운 나이이고, ‘성탄특선’이 된다. 반대로, 특정 숫자를 넘어가는 나이는 그 기세가 꺾인, 사람들이 찾지 않는 시즌 오프(Season off)가 되어버리는 형국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자면 위와 같은 발화 맥락 속에 말이다.)

숫자가 인간의 어디까지를 설명할 수 있을까. 나이는 인간의 온전한 가치를 말해주지 못한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라는 흔한 격언처럼, 나이는 하나의 인격체를 설명하지 못하는, 단순한 수의 개념일 뿐이다. 그럼에도, 특정 나이를 넘겼을 때 따라오는 부정적인 표현들은 지나 온 나이를 치켜세우고, ‘어리다’, ‘젊다’는 이유로 찬미하는 반면, 그 이후의 나이를 평가절하시킨다. 개인적 발화이기 때문에, 혹은 진중하게 하는 말이 아니기 때문에 그냥 듣고 넘기거나, 혹은 쉽게 발화한다는 것은 너무도 안일한 생각이다. ‘언어는 파시스트다’라는 롤랑 바르트의 말을 굳이 떠올리지 않아도, 인간이 세상을 바라보는 하나의 창구가 언어라는 것은 자명하다. 이미 ‘나이 후려치기’의 대표적인 표현들은 많은 사람들에 의해서 발화되고 있고, 그것은 매스미디어를 통해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있다. 단발성의 발화로 치부하기엔, 저러한 표현들의 힘, 즉 언어의 힘은 강력하다. 

나이로 그 사람의 가치를 판단하고, 숫자에 얽매여 그 이후의 삶을 평가절하시키는 것은, 백세인생에 너무나도 가혹한 폭력이다. ‘육십 세에 저 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아직은 젊어서 못 간다고 전’하고, ‘백 세에 저 세상에서 또 데리러 오거든 극락왕생할 날을 찾고 있다 전’하는 백세시대의 도래와 현재진행형인 20대 내의 구분 짓기는 너무나도 상이한 양상이다. 앞선 20여 년간의 삶만이 ‘꽃피는 시기’이고 ‘성탄특선’이라면 나머지 80여 년간의 세월 앞에 우리는 어떤 수식어를 붙여야 마땅할까. 나머지 80년간의 시간이 단지 잔여로서의 삶이라면, 어떻게 그 삶에 가치부여를 하며 살아가야 할까. 인간이 만든 숫자의 개념 속, 그리고 자의적으로 부여하는 의미 속, 청춘들에게 ‘백세인생’은 꽤나 지난한 여정이 되어가고 있다. 우리의 삶은 단순한 수의 개념에서 벗어나, 삶 그 자체로서 가치를 지녀야 하지 않을까. 80여 년간의 세월 동안 ‘저 세상에서’ ‘데리러 오거든’ ‘못 간다고 전해야’ 할 텐데 말이다.

김나윤 청춘칼럼니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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