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정의 태평가] 재수 없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난 어릴 적부터 공부를 잘했다. 더 재수 없게도 공부하는 것에 비해 성적이 잘 나오는 편이었다. 하지만 절대 내가 공부를 게을리 했던 것은 아니다. 지금 일주일치 공부량을 합해도 그 당시 하루 공부량의 반도 못 미칠 것이다. 그냥 수능이라는 끝이 있었기에 잡생각 없이 공부를 할 수 있었다. 그때 기껏해야 드는 잡생각은 급식 메뉴는 뭔지, 매점에 가서 무엇을 먹을 것인지 정도였다. 수능이 끝나면 자연스레 대학생이 될 거니까 수험생으로 사는 것이 힘들어도 꾹 참았다. 번데기가 나비가 되듯이, 예쁘고 똑 부러진 대학생이 될 거라고 믿었다. 그때의 나는 어렸다. 나이도 생각도.

과거의 나에게 미안하게도, 지금의 나는 푸석푸석하고 무기력하다. 매일 아침 떠지지 않는 눈을 억지로 떼, 학교 근처 카페에서 800원짜리 아메리카노를 사 마신다. 분위기 있는 카페에서 커피를 음미하는 것을 꿈꿔왔지만, 800원짜리 커피는 그저 각성을 위한 섭취일 뿐이다. 그렇게 억지로 잠을 깨서 수업을 들어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주위를 둘러보면 다들 경청중이다. 대학엔 나보다 잘난 것들 천지다. 나만 바보다 나만.

수업이 끝나고 불이 꺼지지 않는 도서관을 지나면 한숨이 나온다. 다들 꿈이 있는 걸까? 있다면 나에게 조금만 팔아줬으면 좋으련만. 매일 사 마시는 아메리카노처럼 꿈을 조금씩 사서 마시면 달라질까? 그렇다면 빚을 내서라도 사고 싶다.

그냥 끝을 모르겠어서 공부하기 싫다. 졸업을 하면 그 다음엔? 차라리 누군가가 무엇을 하라고 정해줬으면 좋겠다. 오지도 않은 미래를 마냥 무서워하며, 머릿속엔 두려움이 덕지덕지 붙은 생각만 한 가득이다. 너 지금 공부하기 싫어서 핑계대는거지? 라고 묻는다면, 엄마 아빠에게 죄송하지만, 맞다. 내가 지금 전공책 한 장이라도 더 본다고 무언가가 달라질까. 달라지긴 하겠지, 하지만 절실함이 없어서 와 닿지가 않는데 어찌하리. 그냥 이 글은 내 푸념이자 신세한탄이고, 멋진 대학생을 꿈꾸던 19살의 나에게 드는 미안함이다. 글을 써서라도 풀지 않으면 속이 문드러질 것 같았는데, 이렇게라도 써내려 가니까 속이 다 시원하다. 철 없는 소리지만 하기 싫은 일은 잠시 제쳐두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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