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모의 테마토크] ‘정글북’은 1894년 영국의 소설가 J. 러디어드 키플링이 쓴 7개의 단편동화로써 대중이 흔히 알고 있는 모글리의 활약은 ‘모글리의 형제들’ ‘카아의 사냥’ ‘호랑이! 호랑이!’의 3가지 얘기를 엮은 것이다. 1967년 디즈니가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 큰 인기를 끈 동명의 영화는 이제 최첨단의 기술의 덕으로 ‘라이브 액션’이라는 실사에 버금가는, 애니메이션이 아닌, 실사를 방불케 하는 ‘애니메이션’으로 새롭게 탄생했다.

영화는 소년 모글리(닐 세티)가 늑대들과 함께 정글을 무서운 속도로 질주하며 시작된다. 다분히 시작부터 디즈니랜드의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한 다이내믹한 즐거움을 주려는 의도다. 모글리는 유아 때 흑표범 바기라에게 발견돼 어미 늑대 락샤에게 인도된 후 늑대 새끼들과 지금까지 늑대로서 자랐다. 아킬라가 이끄는 늑대 무리가 가족이라면 락샤는 엄마, 새끼들은 형제였다. 바기라는 스승 격. 적자생존의 치열한 경쟁이 펼쳐지는 정글이지만 딱 한 가지 예외는 있었다. 가뭄이 들어 식수원에서 평화의 바위가 드러나면 비가 올 때까지 자연스레 일시 휴전상태가 됨으로써 포식자와 피식자가 한꺼번에 물을 마시는 진풍경이 벌어지는 것. 바로 그날이었다. 평화롭던 ‘우물터’에 몇 년 동안 정글을 떠났던 무법자 호랑이 시어 칸이 나타난 것.

왼쪽 눈을 인간에게 잃어 사람에게 강한 복수심을 품고 있는 시어 칸은 모글리를 발견하곤 그를 죽이겠노라 선언하지만 똘똘 뭉친 늑대무리에 의해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한걸음 물러난다. 곧바로 늑대 무리는 모글리를 어떻게 할 것인지 지난한 회의를 벌이고, 보다 못한 모글리는 인간의 마을로 되돌아가겠노라 선언한다. 락샤는 반대하지만 바기라는 그게 순리라며 길라잡이를 자청한다. 아옹다옹하며 먼 길에 나선 둘이 평야에 다다랐을 때 시어 칸이 나타나고, 바기라가 혼신의 힘을 다해 막는 동안 모글리는 정신없이 도망쳐 처음 보는 밀림 속으로 들어간다.

그의 앞에 나타난 동물은 어마어마하게 큰 뱀 카아. 카아가 모글리의 과거를 얘기해주며 최면을 건 뒤 그를 집어삼키려는 순간 곰 발루가 구해준 뒤 자신의 동굴로 데려온다. 발루는 겨울잠을 자기 위해선 꿀을 많이 먹어둬야 된다고 사기를 쳐-무대는 인도-모글리의 발목을 잡고, 유쾌한 발루에게 정이 든 모글리는 마을로 가는 것을 일단 보류한다. 그리고 바기라까지 나타나자 모글리의 정글에 대한 미련은 더욱 깊어져간다. 그러던 때 엄청난 원숭이 때들이 들이닥쳐 모글리를 납치해 산꼭대기의 그들의 성으로 데려가 거대한 덩치의 왕 루이에게 바친다. 정글의 왕이 되고 싶었던 루이는 ‘붉은 꽃’이라 부르는 인간의 불이 절대적으로 필요했기에 정글에서 불을 구하거나 다룰 수 있는 유일한 ‘동물’인 모글리가 꼭 필요했던 것.​

모글리는 루이의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하고 간신히 뒤따라 온 바기라와 발루의 도움으로 루이 일당을 물리치고 도망치게 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시어 칸이 아킬라를 죽인 뒤 늑대 무리를 접수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모글리는 분노에 가득 차 마을에 잠입해 불을 훔친 뒤 늑대들의 영역으로 달려간다. 시어 칸을 죽이려는 복수심에 가득 찬 그는 그러나 결정적인 큰 실수를 범한 데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시어 칸의 속임수에 빠진다. 원작에 모글리가 인간세상에서 받은 이름인 카아가 여기선 교활한 암컷 뱀이 된 것이나 인도에 아프리카 코끼리가 등장한다는 것은 옥에 티지만 동물들의 크기가 지나치게 과장된 것은 다분히 의도된 연출이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역시 디즈니’라고 무릎을 탁 칠 만큼 완벽에 가까운 흥행과 교육의 정석을 달리는 영화다.

요즘 청소년들은 마블의 히어로물에 익숙하겠지만 지긋하게 나이 든 사람들에겐 매주말 안방극장을 통해 방송되던 옛 디즈니의 각종 아날로그 콘텐츠가 그리울 터. ‘정글북’은 그렇게 디즈니의 초창기의 정서에 눈부신 기술의 진보가 낳은 최첨단 CGI 등의 현란한 테크닉이 만든 실사 같은 애니메이션의 향연을 즐길 수 있는, 구세대와 신세대 모두를 아우르는 내용과 비주얼을 자랑한다. 세티를 제외하곤 모든 캐릭터와 정글까지도 CG라는 게 놀라울 따름이다. 영화가 시작되면 아직 어리고 비쩍 마른 세티의 등장에 다소 실망할 것이다.

만약 추억을 좇아 티케팅을 한 어른 조합의 관객들이라면 후회가 막심할 것이다. 그런데 디즈니가 괜히 존 파브로에게 ‘아이언맨’ 1, 2편 연출과 ‘어벤져스’ 1, 2편 기획을 맡긴 게 아니었다는 게 금세 입증된다. 전 세계 2000대1의 경쟁률을 뚫고 발탁된 이 12살의 신인배우는 상대 배우 없이 혼자 해낸 이 긴 시간의 여정을 전혀 어색함 없이 잘 소화하고 훌륭하게 표현하며 마치 원작소설이 다큐멘터리인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만드는 천재성을 보여준다. 흡사 정교한 컴퓨터 게임의 블록버스터 같은 장르적 자세를 취하는 이 영화는 디즈니의 성격대로 가족애, 의리, 소신, 권선징악 등의 교육적이고 휴머니즘적인 주제를 담고 화려한 비주얼로 눈을 즐겁게 해주는 가운데 마치 관객이 직접 정글의 탐험과 모험을 즐기는 듯한 1인칭 시점의 액션을 펼쳐낸다.

모글리는 늑대들로부터 늑대답게 살라는 법칙을 금과옥조로 교육받고 자랐다. 또한 바기라로부터는 절대 도구를 쓰지 말라는 가르침도 받았다. 하지만 발루는 정반대의 생존방식을 종용하고 칭찬한다. 우리나라의 고루한 사람들은 툭하면 ‘옛날엔 안 그랬는데’ ‘우리 땐’ 등의 과거에 집착하는 아집을 신세대에게 강요하며 변화에 적응하려 하지 않고 반발하기 마련이다. 락샤와 바기라의 교육방식이 그랬다. 하지만 악의가 배제된 적당한 ‘사기’나 임기응변을 중요하게 여기는 발루는 그렇지 않다. 즉흥적 임시변통부터 각종 지혜의 활용을 적극 권장한다. 사람들은 곰을 미련하다고 업신여긴다. 그러나 곰이 사실은 매우 영악하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다 안다.

모글리를 잡아먹지 않고 정글의 식구로 받아준 늑대 흑표범 곰 등의 동물들은 허구이긴 하지만 어쩌면 그건 자만에 가득 찬 인간들이 하찮게 취급하며 멸종이란 만행까지도 서슴지 않는 데 반해 단순하게 원칙적으로 살아가지만 원초적 생존본능 이외에는 다른 개체나 종족에게 죄를 짓지 않고-포식자들은 배부를 땐 피식자를 거들떠보지도 않지만 사람은 심심풀이나 재미로 사냥 한다-자연환경에 순응하는 동물들의 의외의 우월성을 웅변하는지도 모른다.

영화에서 불은 매우 중요한 메시지를 함축한다. 정글에서 유일하게 불을 두려워하기보단 활용하려는 동물이 탐욕스러운 오랑우탄 루이다. 하필이면 영장류 중 인간에 가장 가깝다는 오랑우탄이다. 락샤와 바기라는 모글리에게 불의 위험성과 위해성을 강조한다. 이 불은 단순한 불이 아니라 인간이 생활수준의 향상과 편의라는 명목으로 동물과 자연을 훼손하는 모든 만행과 파괴하면서도 과학이라고 으스대는 광폭한 이기주의의 상징일지도 모른다.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는 별로 남는 게 없다. ‘곡성’은 가족끼리 볼 수 없는 영화다. 2대 혹은 3대가 걸쳐서 혹은 다함께 볼 만한 영화라면 ‘계춘할망’이거나 여기에 재미까지 얻고자 한다면 단연 ‘정글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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