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은 없다’, 사회 부조리에 할 말 많은 또 다른 ‘곡성’ [유진모 칼럼]

유진모 테마토크 편집국장l승인2016.06.20l수정2016.06.20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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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비밀은 없다> 스틸 이미지

[유진모의 테마토크] 영화 ‘곡성’의 제목은 중의적 의미다. 1차원적으론 사건의 배경인 로케이션을 뜻하지만 ‘곡소리’도 있고 종교적 의미의 곡(Gog)도 있다. 기독교에서 곡은 세상 마지막 날에 갑자기 정체를 드러낼 사탄의 지배를 받는 적대세력을 뜻한다. 박찬욱 감독의 영향을 많이 받은 이경미 감독의 장편상업영화 데뷔작 ‘미쓰 홍당무’(2008) 이후 첫 번째 영화인 ‘비밀은 없다’(CJ엔터테인먼트 배급)는 프로야구계의 고질병인 소포모어 징크스(2년생 징크스)가 영화계에만큼은 없다는 것을 입증할 수작이다. 아니, “이 감독이 ‘미쓰 홍당무’를 만든 그 감독인가”라는 놀라움이 절로 우러날 만큼 일취월장한 작품세계를 보여준다.

무대는 경상도의 한 가상 신도시. 보수성향이 강한 늙은 능구렁이 정치인 노재순이 오랫동안 장기집권해온 텃밭이다. 방송사 아나운서 출신의 종찬(김주혁)이 예상을 깨고 집권여당의 공천을 받아 기호 1번으로 국회의원 선거에 나서 재순의 아성에 도전한다. 종찬은 아름다운 아내 연홍(손예진),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여중 3년 딸 민진(신지훈)과 안정된 삶을 살고 있다. 투표를 앞두고 양 진영은 치열하게 싸우는데 종찬이 재순을 뛰어넘는 게 쉽지 않다. 투표일 보름 전 민진이 실종된다. 연홍은 미친 듯이 민진을 찾기 위해 이리저리 움직이지만 종찬은 유세에 총력전을 펼쳐야 할 판인데다 혹시라도 그 사건이 득표에 악영향을 끼칠 것을 염려해 조심스럽다. 그런 종찬이 섭섭한 연홍의 감정은 그에게서 점점 멀어지고 급기야 이혼을 선언한 채 민진을 찾는 데 집중한다.

▲ 영화 <비밀은 없다> 스틸 이미지

경찰서에서 연홍은 상당히 당혹스럽다. 경찰들은 노골적으로 재순의 편에 선 시각으로 그녀를 ‘미친 년’ 취급하고, 실종 당일 한 외지인 남성만 교통사고로 죽었을 뿐 그 어떤 사고도 보고된 바 없다며 불량학생으로 낙인찍힌 민진이 ‘애먼 짓’을 하고 있을 것이라는 태도로 안일하게 대처한다. 종찬의 집에서 도청장치가 발견되고, 종찬 선거캠프는 재순을 강력한 범인으로 지목하지만 재순 캠프는 모략이라 일축한다. 재순의 캠프는 연홍이 전라도 출신이고, 민진이 불량학생이었다는 정황을 포착해 집중 공략하고 그러는 사이 종찬의 지지율은 재순에게서 점점 더 멀어진다.

연홍은 민진을 추적해가는 과정에서 딸이 자신에게 상당히 많은 것을 속여 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평소 친하게 지낸 친구가 다혜가 아니라 미옥이었음을 확인하고 그녀를 추궁하지만 뭔가 미심쩍다. 또한 민진의 이메일을 통해 지난 2년간 매번 시험지를 사전에 몰래 민진에게 제공한 사람이 바로 중1때의 여자 담임선생이었음을 알고 그녀를 만나본 결과 또한 의심스러운 점을 발견한다. 그러던 중 처참하게 숨진 민진의 시체가 발견되고 종찬과 그의 캠프는 재순을 의심하게 된다. 평소 똑똑하지 못했던 연홍은 처절한 정신적 고통 속에서 오히려 더욱 침착하고 영민하며 용감해진다. 경찰이 미옥을 강력한 살해 용의자로 지목하지만 연홍은 그렇게 믿지 않고 독자적인 ‘수사’를 펼쳐나간다. 그리고 미옥에 의해 살인자의 윤곽이 서서히 드러난다.

▲ 영화 <비밀은 없다> 스틸 이미지

영화라고 다 영화가 아니다. 진정한 영화가 되기 위해선 관객을 확 휘어잡을 수 있는 빈틈없는 시나리오와 이를 화면에 가장 적확하고 적절하게 구현해낼 수 있는 연출력, 그리고 작가와 감독이 만든 캐릭터와 시퀀스를 완벽하게 소화해내는 배우의 표현력 등 삼위일체가 이뤄져야 웰메이드필름이란 소리를 듣고 흥행에 가까워진다. 그런 기준에서 이 영화는 정말 훌륭하다. 미스터리 스릴러를 표방하지만 기득권자 혹은 기성세대의 어긋난 욕심과 부도덕한 욕망이 청소년을 어떻게 왜곡하고, 방황하게 만들며, 그래서 그들의 영혼에 지울 수 없는 생채기를 남기는가에 대한 천근만근의 묵직한 주제의식을 발판으로 하는 드라마가 워낙 탄탄하다. 물론 기본 축은 애끓는 모성애다. 영화는 왜 부성애보다 모성애가 더 자주 거론되고, 더 강하다는 의식이 만연해있는지 은연중에 부각시킨다. 뿐만 아니라 세상과 자식을 바라보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다른 시각도 있다. 연홍은 민진의 방을 뒤지며 발견하는 딸의 불량행동 증거에 대해 단지 종찬에게 “여보, 우리 딸이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착한 딸은 아니었나봐요”라며 자책하지만, 종찬은 민진의 방에서 발견한 말버러 담배를 연홍에게 신경질적으로 내던진다. ‘다 당신이 교육을 잘못 시킨 탓이야’라는 듯이. 그 던짐은 딸에 대한 애정의 내려놓음의 은유다. 자식에 대한 실망의 결과는 어머니는 자책과 연민이지만 아버지는 분노와 포기라는 비유다.

▲ 영화 <비밀은 없다> 스틸 이미지

엄청난 정치 풍자 혹은 조롱도 담겼다. 너구리같은 재순도, 신선한 젊은 피 종찬도 그 주변인물들조차도 결국 모두 개인적 성공에 눈먼 속물들에 불과하다. 종찬의 오른팔인 사무국장은 예전에 재순의 최측근이었다. 그는 경찰의 수사일지를 구해달라는 연홍의 명령을 불법이라고 단호하게 거부하지만 종찬의 지지율이 급상승하자 서슴없이 거래를 통해 입수해 건넨다. 배경은 나름의 도시인데 분위기와 색감은 칙칙하고 어둡고 음산하기까지 해 ‘곡성’과 다름없다. 각 시퀀스의 전개는 도무지 한숨 돌릴 틈을 안주며 긴박하게 돌아가고 매 쇼트와 대사 하나, 단역배우 한 명마저도 집중하게 만드는 흡입력이 ‘곡성’에 못지않다. 무섭고 스산한 게 ‘곡성’과 비슷하다면 슬프고 아프며 심지어 아름답기까지 하다는 게 다르다.

민진은 학교에서 ‘왕따’였다. 아버지를 따라 미국에서 살다왔고 부유하기 때문에 남들과 입는 옷이 다르고 명품시계를 차고 다녔으며 툭하면 영어를 구사했으니 그럴 만도 했다. 미옥은 처음엔 그런 민진이 혐오스러웠다. 그런데 자가용 운전기사로 일하는 아버지가 모시는 오너가 바로 종찬임을 알고 나선 반감보다 더 큰 주눅이 앞으로 밀고 나왔다. 게다가 미옥은 일찍이 어머니를 여읜 외동딸인데 어느 날 아버지가 새 장가를 들어 줄줄이 이복동생을 넷이나 낳았고 좁아터진 집안엔 할머니까지 함께 살아 하루하루가 지옥이었다. 세상은 그녀에게 ‘꿈 많은 소녀’가 되길 강요하지만 환경은 외진 구석으로 몰아넣을 따름이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민진에겐 더 큰 아픔이 있었다. 그래서 두 소녀는 펑크밴드를 결성하고 직접 가사와 곡을 써서 또래 아이들과 소통하는 가운데 자기들만의 세계(공간)를 만들어갈 수 있었다. 그건 ‘와일드 로즈 힐’(찔레꽃 언덕, 영화의 주제곡이기도 하다)이었다.

▲ 영화 <비밀은 없다> 스틸 이미지

찔레는 전국의 산 들 계곡 등 자연 어느 곳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야생풀로 등산객에겐 귀찮은 존재다. 하지만 꽃부터 뿌리까지 어느 것 하나 버릴 수 없는 훌륭한 식용 풀이자 약재다. 산의 주인이 자신인 줄 착각하는 다수의 등산객(기성세대 기득권층)은 이 하찮은 들풀(청소년의 꿈)이 성가시다며 가차 없이 짓밟거나 심지어 제거한다. 자연의 모든 것은 저마다의 탄생과 생존의 이유가 있기 마련이고 그게 삼라만상의 이치인데 언제부턴가 사람들은 만물의 영장을 자처하는 오만에 빠져있고, 어른들은 젊은이의 꿈을 무시한 채 노후대책이란 명목으로 이기심만 불태운다. 사람이 동물과 다른 점은 문화와 문명이겠지만 우월한 것은 과학이 아니라 사랑이고 정서다. 하찮은 찔레꽃에조차 존재의 이유를 인정해줄 때 사람의 주도권과 문명의 찬란함은 비로소 사랑으로 인해 우뚝 설 수 있다고 영화는 펑크록처럼 기괴하게, 때론 잔혹한 동화처럼 서늘하게 절규한다.

▲ 영화 <비밀은 없다> 스틸 이미지

‘곡성’이 15세 등급을 받은 이유가 다시 한 번 의문스러운 것은 ‘비밀은 없다’가 고작 카섹스 장면에서 여배우 가슴이 나오고, 조금 잔인한 신이 있으며, 설정이 가혹하다는 이유로 미성년자 관람불가 등급을 받은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아집에 스스로 갇혀 아전인수식 사고방식에 마취된 기성세대는 결코 자식과 함께 이 영화를 볼 수 없기 때문이 아닐까? ‘곡성’은 누가 악마인지 열린 결말로 끝난다. ‘비밀은 없다’는 “악마는 멀리 있는 신적인 존재가 아니라 바로 우리 곁에 있는 그 누군가이다”고 열변을 토한다. 그건 어긋난 욕망이다. 손예진의 연기는 불꽃이 튄다는 표현이 아깝지 않을 정도다. 오랫동안 ‘1박2일’에 출연해온 김주혁에게선 ‘나는 영화배우다’라는 외침이 쩌렁쩌렁 들린다. 그의 첫 주연영화가 흥행에 실패한 스릴러 ‘세이 예스’였음을 상기시킨다. 더욱 놀라운 점은 여중생 역의 두 신인배우의 연기에서 전혀 허점이 안 보이는데 연기 초보란 사실이다. 23일 개봉.

유진모 테마토크 편집국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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