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박수룡 원장의 부부가족이야기] 남편들이 저지르기 쉬운 또 하나의 잘못은 ‘두 사람 사이에서는 공평해야 한다’는 고정 관념 때문에 비롯됩니다. 어떤 남편은 자신은 누구의 편을 들지 않고 사리의 옳고 그름에 따를 뿐이라고 자부하는데, 부부 관계는 다른 사회적인 관계와는 아주 다르다는 점을 잘 모르고 하는 말입니다. 오히려 ‘나는 절대 공정하다’라는 식으로는 부인에게 말하는 것은, 아무 도움을 주지 못할 뿐 아니라 도리어 결국 가정 불화를 악화시킬 수도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혹시 자신이 부인의 편에 서면 2대1의 싸움이 되어 불공평해지기 때문에 자신은 ‘중립’을 지키면서 두 사람이 알아서 갈등을 해결하도록 기다리는 것이라면, 그건 엄청난 계산 착오입니다. 가족 관계는 세력의 균형과 견제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며, 남편 자신 역시 심판관이 아닌 ‘선수’라는 점을 망각하고 있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생각을 하는 남편이라면, 부인의 처지가 어떠할 지를 조금만 생각해보기 바랍니다.

갓 결혼한 부인에게는 아직 낯선 시댁 가족들과의 관계, 그리고 그 생활 습성과 문화와 옳고 그름을 따지기에 앞서 (남편으로서는 짐작하기 어려운) 향후 생존이 달린 심각한 공포 상황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한편 사람들은 누구나 이런 공포 상황에 처하게 되면 생존 본능이 작동하여 필요 이상으로 예민해지고 사소한 자극에도 과도한 반응을 보이게 되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이럴 때 남편이 중립을 지키겠다고 한다면, 그것이 아내의 입장에서는 사실상 시어머니 편에 서겠다는 선언과 전혀 다르지 않게 느껴질 가능성이 아주 높습니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그 부인은 말 그대로 ‘막다른 궁지에 몰린 쥐’와 같은 심리를 가지게 됩니다. 막다른 궁지에 몰린 쥐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이겠습니까? 필사적으로 달아나거나 결사적으로 싸워 이기는 것 말고는 선택의 여지가 없을 것 아니겠습니까?

이와 마찬가지로 시댁에 관련하여 남편의 지지를 얻지 못한 부인은 시댁에 대한 불안이 공포심으로 이어지게 되면, 일단 시댁과 관련한 모든 상황을 피하려고 하거나 과도하게 예민한 반응을 보일 수 밖에 없게 됩니다. 즉, 겉으로는 아주 당당한 것처럼 보이는 며느리(부인)이라도 그 속 마음에는 불안, 공포, 외로움, 분노 등으로 견디기 어려운 상태에 놓여져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도 남편이 부인의 이런 겉모습만 보고 “당신이 이럴 줄은 몰랐다. 정말 실망스럽다”라고 탓한다면, 부인은 부인대로 경계심과 긴장을 풀 수가 없어서, 상황은 더욱 악화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남편들의 고부 갈등에 대해 흔히 저지르는 다른 잘못은 자신이 부인의 편을 들어주면 ‘아내가 기세 등등해져서 갈등상황이 더 악화될 것’이라는 염려에서 시작됩니다. 아마 애초부터 적대적 관계로 시작된 인간 관계에서라면 그럴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현실에서는 어떤가 생각해보십시오.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이 유리할 때 너그러워지고, 반대로 위기 상황일수록 거친 반응을 보이지 않던가요? 즉 남편이 염려하는 것과는 완전히 반대로 상황이 전개된다는 말입니다. 때문에 이런 염려를 하는 남편들에게는 며느리인 부인을 (편들어서라도) 안심시키는 것에 너무 인색해하지 말기를 권합니다. 한가지 더 추가로 말씀 드리자면, 남자와 여자의 싸우는 방식은 상당히 다릅니다. 대부분의 남자들은 싸울 때 상대의 기를 완전히 꺾어놓아서 다시는 대들 엄두를 내지 못하게 하는 것으로 끝을 보는 편입니다. 하지만, 여자들의 싸움은 상대를 내 편으로 만들어야 비로소 끝이 난다는 점을 이해하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따라서 부인과 싸우는 것을 피하려면 부인과 같은 편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려주어야 합니다.

한 TV 드라마에서 남편은 시댁 문제로 고민하는 아내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이 싫으면 나도 싫어. 걱정하지 마. 내가 어른들께 말씀 드릴게.” 그리고 그 극중 배우는 소위 ‘국민 남편’이라는 칭호를 얻었습니다. “어떻게 무조건 그럴 수 있느냐?”고 물을 남자들이 많을 줄 알지만, 남편은 이처럼 부인에게 든든한 응원군이 되어야 하고, 아내의 장단에 맞춰 자신의 부모 흉을 볼 수도 있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고, 부부 단 둘만 있을 때야 뭐가 문제되겠습니까? 부인도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자기 남편이 진심으로 부모님 흉을 보는 건 아니란 걸 압니다. 알지만,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맞장구 쳐주니까 그런 남편의 사랑에 만족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만족을 경험한 부인은 자신을 힘들게 하는 상대가 ‘나를 사랑하는 남편을 낳아 길러준 어머니’임을 되새기며 더 이상 극단적인 반응과 행동을 나타내지 않게 된다는 말입니다.   

혹시 오해하실 남편들을 위해 말씀 드리자면, 어머니 앞에서까지 무조건 부인을 두둔하라는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역효과가 나지 않을 범위 내에서) 자신이 여전히 어머니의 아들이지만, 동시에 며느리의 남편이기도 하다는 점을 틈틈이 알려드리는 것이 좋습니다. 예를 들어, 만약 어머니가 며느리에게 “너는 제삿날인 줄 알았을 텐데 왜 이제 오는 거냐?”며 야단칠 때면, 모르는 체 하지 말고 “어머니, 이 사람이 해야 할 일이 있다 보니 서두른다고 했어도 이제야 오게 됐네요. 너무 서운해하지 마세요. 늦게 온 데는 제 책임도 있으니, 저도 같이 일할게요. 무엇부터 할까요?”라는 식으로 일단 부인의 편에 서서 말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남편이 이렇게 나온다면 대부분의 부인들은 더 당황하여 “아니 당신 왜 그래? 당신이 그러면 어머니도 섭섭하시고, 나만 더 곤란해지잖아? 어머니 죄송해요. 다음에는 일찍 오도록 할게요.”라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한편 아들에게서 이런 말을 들은 어머니들은 일단 마음이 상할 것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현명한 남편이라면 끝까지 지혜로워야 합니다. 말하자면 아내가 없는 자리에서 “어머니, 아까는 마음 많이 상하셨지요? 그런데 할 수 있나요? 어머니에게는 죄송하지만, 저 사람의 마음이 편해야 저도 편하니까 그랬네요. 저 사람에게는 제가 다시 이야기할 테니 마음 푸세요.”라며 반드시 어머니의 마음을 달래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어머니의 입장에서는 며느리 편을 드는 아들이 처음에는 당황스럽고 또 다소 서운하기는 하겠지만, 나중에는 대견하게 여기게 되고 또 그 아들의 부인인 며느리도 함부로 대하면 안 되겠다는 것을 현실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정리 삼아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남편은 자신이 부인을 위한 가이드라고 생각하는 것이 좋습니다. 남편으로서는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함께 살아왔기 때문에 자신의 부모님이나 형제들, 그리고 생활 습관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난생 처음 경험하는 부인의 입장에서는 전혀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이것을 누가 옳고 그른지의 관점으로 대하면 문제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부인의 처지를 말하자면, 시집이라는 낯선 곳에 머물게 된 나그네와 같은 상황입니다. 이때 어떤 사람이 나타나서 “당신이 살던 곳에서는 어떻게 살았는지 모르겠지만, 어차피 여기 왔으니까 앞으로는 이 사람들과 잘 맞추면서 지내야 할 거예요. 안 그러면 당신이 힘들 거예요. 아마 이것이 당신의 운명 아니겠어요? 나는 내 볼 일이 있으니까 다음에 봐요.”라고 말한다면 그 나그네는 얼마나 황당하고 불안해하겠습니까? 이런 남편은 결코 좋은 가이드가 아닙니다. 반면 친절한 가이드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여기까지 오느라 정말 수고 많았겠네요. 저는 이곳에 당신이 오기를 오래도록 기다렸어요. 그런데 아마 여기는 당신이 살던 곳과는 많이 다를 수도 있어요. 그러니까 당신에게 어려운 일이 생길 때에는 언제든지 저를 불러주세요. 항상 힘닿는 데까지 당신을 도와드릴게요.”라고 말한다면 부인은 그 남편을 신뢰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짐을 내려놓을 것입니다. 이렇듯 남편은 자신에게 온 부인을 편안하게 보호해주는 ‘좋은 가이드’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 박수룡 라온부부가족상담센터 원장

[박수룡 원장]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서울대학교병원 정신과 전문의 수료
미국 샌프란시스코 VAMC 부부가족 치료과정 연수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외래겸임교수
성균관대학교 의과대학 외래교수
현) 부부가족상담센터 라온 원장

저작권자 © 미디어파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