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벨 붙이기, 벗어나기 [박수룡 칼럼]

박수룡 라온부부가족상담센터 원장l승인2016.07.14l수정2016.07.14 16:40

크게

작게

메일

인쇄

신고

[미디어파인=박수룡 원장의 부부가족이야기] 40대의 부부가 진료실을 찾았다. 대개의 경우 부인들이 상담을 신청하는데, 이 경우는 남편이 상담을 원하여 오게 된 경우였다. 강인한 인상의 남편이 먼저 입을 열었다.

“결혼한지는 10년이 좀 넘었습니다. 저는 그때까지 일하는 것이 좋아서 결혼할 생각이 없었지만, 양가 부모님들끼리 안면이 있어서 결혼을 서두르셨습니다. 사실 첫 인상부터 썩 맘에 들지는 않았지만, ​결혼하지 않을 것도 아니었고, 부모님이 권할 정도라면 그래도 괜찮을 거라는 생각에서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말까지 하기는 좀 그렇지만, 자라온 환경이나 생활 수준이 달라서인지 아내는 살림이나 집안 행사 처리는 물론이고, 아이들 키우고 공부시키는 것까지 모든 면에서 부족한 게 너무 많았습니다. ​그래도 내 사람을 만들어 살면 된다는 생각에서 일일이 가르치고, 좋은 말로 타이르기도 했습니다.

​물론 그러다 보면 좀 심한 말도 하기는 했을 겁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잘하면, 제가 왜 그러겠어요. ​제가 잘못한 점도 있겠지만, 그렇게 따지면 제가 노력하고 또 억울할 것이 더 많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아내의 내조는 늘 모자랐지만 저는 회사와 가정 외에 한눈을 판 적이 없어요. 이제 좀 살만해 졌나 싶은데, ​느닷없이 아내가 저 때문에 우울증이 생겼다며 이혼해 달라는 겁니다. 이게 말이나 됩니까? ​저도 그냥 이혼해버릴까 하다가, 애들도 있고 해서 상담을 받으면 무슨 수가 있을까 해서 오게 되었습니다.”

상담자는 연약한 모습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던 부인에게 어떻게 된 것인지 물었다.​부인은 작은 목소리로 울먹이면서 짤막짤막 말을 했는데, 상담자의 도움으로 그 동안 쌓인 이야기를마무리할 수 있었다. “시댁에 비하면 저의 집이 가난하고, 그래서 시집오고 나서 이런 저런 일에 서툴렀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제가 사회 생활 경험이 없어서 남편을 잘 돕지 못한 것도 있었고요. 그래도 친정에서 자랄 때는 기죽지 않고 지내왔는데, 시집와서는 남편이나 시부모님이 모두 너무 무서웠어요. 저도 제가 잘 못하는 것은 아는데, 그 때마다 지적을 받고 꾸중을 들으니 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었어요.”

“첫 애가 어린아이였을 때, 남편이 회사로 무슨 서류를 가져와달라고 해서 그 때 처음 남편의 회사가 어딘지 알게 됐어요. 더운 여름날 아이를 업고 겨우겨우 찾아갔는데, 남편은 ‘왜 이리 늦었냐?’고 한마디 하더니 그냥 들어가버렸어요. 저는 ‘수고했다’고 하면서 시원한 음료라도 사주었으면 했거든요. ​멍하니 회사 건물을 올려보고 있는데, 남편이 ‘빨리 안가고 뭐하냐’고 한마디 하더군요. 제가 다른 사람 눈에띨까 창피했던 거 같았어요. 눈물이 났지만 그냥 돌아왔죠. 그때까지 점심도 먹기 전이었거든요”

“저도 남편과 시부모님에게 살림하는 능력을 인정받고 싶었고, 또 저 나름대로는 남편을 돕고 싶었지만 그럴 기회를 안 줬어요. 살림에 필요한 돈도 그때그때 받아써야 했어요. 제 옷 사는 것은 꿈도 못 꿀 일이고, ​애들이나 남편 옷을 사주고 싶어도 그럴 돈이 있어야죠. TV를 보면서 제가 무슨 말을 하면 남편은 ​‘알지도 못하면서 무슨 말이냐?’고 윽박질렀죠. 이제는 아이들조차 ‘엄마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뭐라 한다’고 대드는데, 남편이 그러니까 애들도 저를 무시하는 것 같아요. ​더 이상 이렇게는 살 수 없고, 이혼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만 들어요.”

부부관계를 규정하는 용어 중 ‘라벨 붙이기’가 있다. 배우자의 부족한 점에 대해 ‘게으르다’, ‘무능하다’ 또는 ​‘냉정하다’, ‘고집불통’ 과 같은 ‘라벨’을 붙이고 나면 그 사람의 모든 행동이 그 라벨을 통해 평가되면서 부정적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설령 잘하는 점이 나타나도 그런 경우는 ‘어쩌다 그런 것’으로 무시되고 만다. 이런 ‘라벨 붙이기’의 문제는 그런 라벨이 붙은 사람 자신도 어느 새 그 라벨이 규정하는 이상의 능력을 발휘할 수 없게 되어버린다는 데에 더 큰 심각성이 있다.

반대로 ‘피그말리온 효과’도 있다. 어떤 사람에게 긍정적인 기대감을 가지고 그렇게 대하면, 점점 그에 적합한 수준의 긍정적인 행동 변화를 이끌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사이가 좋은 부부나 연인들은 물론 부모-자녀 관계나 교사-학생 관계에서 분명히 관찰되곤 한다. 물론 두 사람 모두 자신과 상대에 대한 만족감이 높아지고 그 사이도 돈독해질 수 밖에 없다.

남편은 다행히 이 비유를 정확히 이해하여, 그는 자신의 태도에도 문제가 있었음을 인정했다. 그리고 앞으로는 부인에게 칭찬과 감사 표현을 늘리겠다고 약속했고, 부인이 원하는 것을 할 수 있게 해주겠다고 했다. 이런 남편의 노력과 변화로, 부인은 그 동안 누리지 못했던 삶의 보람을 찾으며 자신도 더 적극적으로 살겠다고 약속했다.

▲ 박수룡 라온부부가족상담센터 원장

[박수룡 원장]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서울대학교병원 정신과 전문의 수료
미국 샌프란시스코 VAMC 부부가족 치료과정 연수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외래겸임교수
성균관대학교 의과대학 외래교수
현) 부부가족상담센터 라온 원장

박수룡 라온부부가족상담센터 원장  .

<저작권자 © 미디어파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 댓글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0 / 최대 400byte

숫자를 입력해주세요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합니다.
여백
여백
미학적 포토갤러리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특별시 종로구 세종대로23길 47, 6층 601-609호 (당주동, 미도파광화문빌딩)  |  대표전화 : 070-8286-8802   |  팩스 : 02-6383-0311 ㅣ 발행일자 : 2015년 1월 1일
등록번호 : 서울 아03542  |  등록일자 : 2015년 1월 20일 ㅣ제호 : 미디어파인 ㅣ 발행인 : 문수호  |  대표이사 : 이창석   |  편집국장 : 김호영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창석
Copyright © 2022 미디어파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