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어타이어를 발견하고 [황성하 칼럼]

황성하 청춘칼럼니스트l승인2016.07.19l수정2016.07.19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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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파인=황성하 청춘칼럼] 우연히 길을 걷다가 자동차 밑면을 보게 되었다. 내가 걷는 길보다 그 길옆의 주차장의 높이가 훨씬 높아서 가능한 일이었다. 자동차들은 나란히 후면주차를 한 상태였다. 나는 나에게 꽁지를 내보이며 일렬로 주차된 자동차들을 바라보며 걸었다. 자동차 밑면에는 바퀴가 하나씩 달려 있었다. ‘자동차 아래 왜 바퀴가 달려 있을까’ 의문이 든 나는 가만히 서서 트럭에 매달린 타이어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타이어의 존재를 고심하다가 나는 깨달았다. 바로 스페어타이어였다. 나는 그 당시 모든 차들이 스페어타이어를 하나씩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정확히 어느 위치에 달려 있는지는 알지 못했다. 차에 대해 관심이 없기도 했고 스페어타이어의 위치를 직접 눈으로 볼 기회가 적기도 했으니까 말이다. 나는 감쪽같이 매달려 있는 스페어타이어를 보면서 참 유용하다는 생각을 했다. 평소에는 꼭꼭 숨어 있다가 정말 필요할 때 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 머릿속에는 중년의 여성이 떠올랐다. 그 중에서도 계획한 대로 출산을 모두 마쳤지만 여전히 임신이 가능한 여성들. 이를테면 엄마 혹은 이모들이었다.

내가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을 때, 친구의 엄마가 임신하는 일이 있었다. 내 친구는 외동이었다. 그 때문에 항상 형제,자매에 대한 갈증이 언제나 있었고 그 때문에 엄마의 임신 사실을 굉장히 반가워했다. 문제는 다른 사람들의 반응이었다. “이제 낳아서 언제 키우려고 그래.”라는 말은 여러 버전으로 바뀌어 친구의 엄마에게 날아갔다. 부정적인 반응들이 대부분이었고 안타까워하는 눈빛들이 반이었다. 하지만 친구의 엄마는 임신 사실에 무척 행복해했다. 외동이었던 딸에 대한 미안함이 표면적인 이유였다. 더 들여다보자면 무미건조한 삶과 집에 엄청난 에너지를 가져다줄 것이라는 기대가 본심이었다. 전업주부였던 친구의 엄마는 20년 가까이 집 안에서 살림을 하며 자신을 잃어버린 느낌이 들었던 모양이다. 이제는 자신이 아직 생물학적으로 여자라는 사실을 완벽히 증명해낼 수 있다는 사실에 무척 반가웠던 것 같다.

스페어타이어는 필요하지 않으면 절대 꺼내지지 않는다. 굳이 고개를 숙여 밑면을 들여다보지 않으면 존재 자체를 의식하지도 못 한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스페어타이어는 엄청나게 유용하고 적합한 처방이 될 수 있다. 구체적으로 생각해보면 4개의 바퀴로 열심히 길을 달리다가 어느 날 갑자기 한 쪽 바퀴에 바람이 빠진 것을 알게 되고, 자신이 돌아왔던 길을 무심하게 짚어보게 되고, 왜 험난했는지 하나하나 이유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오랫동안 품어두었던 스페어타이어를 꺼내, 낡고 찢어진 바퀴를 떼어내게 된다. 그 엄마가 새로운 아기의 탄생을 반겼던 이유도 마찬가지이다. 엄마의 삶에서 어떤 중요한 가치관이나 세계관이 삐걱거렸고 그로 인해 엄마는 자신의 울퉁불퉁하고 먼지 나는 삶을 찬찬히 돌아보았을 것이고 묵혀두었던 스페어타이어를 생각해냈을 것이다. 사용하지 않은 스페어타이어는 시간이 지나면 못쓰게 될 수도 있는 것처럼 중년여성의 자궁은 그런 것이다.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르는 스페어타이어.

하지만 요즘에는 싱글족, 혹은 듀크족이 늘어나는 추세이다. 내 주변 친구들, 언니, 오빠들 이야기만 들어보아도 결혼보다는 자기계발, 스펙 쌓기에 열중하는 분위기다. 그들은 분명 행복을 향해 열심히 달리고 있지만 끊임없이 달리기 경주를 하고 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목에 사원증을 걸게 된다. sns에는 ‘힐링’이라는 단어가 전단지처럼 나뒹군다. 이들에게 ‘힐링’은 어떤 의미일까. 유행처럼 떠도는 이 말 속에는 내 친구의 엄마처럼 펑크난 타이어를 교체하려는 시도가 숨어 있는 게 아닐까. 자신의 삶 속에서 고장난 바퀴 하나를 인지하게 되고 해결하려 고군분투하는 행위들. 그러나 이들에게는 아직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자궁이 없거나, 이들은 결코 아이를 낳고 싶지 않다.

스페어타이어를 꺼낸다는 것은 자신이 이제 더 이상 자신의 힘만으로는 이 거대한 길을 걸어갈 수 없다는 것을 암묵적으로 인정하게 되기도 하니까 말이다. 요즘 나오는 신차에는 스페어타이어가 없다고 한다. 대신에 타이어 펑크 수리 키트가 들어 있다고 한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중년 여성의 임신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의 삶에도 펑크는 나고 각자의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한다. 누가 그녀의 스페어타이어를 조롱하거나 안타까워 할 수 있을까.

차 밑면의 타이어를 바라보고 있으니, 여자의 삶에서 더 나아가 내 미래의 모습이라는 생각까지 미치게 되었다. 지금은 나를 위하여 앞으로 걸어가고 있지만 언젠가 나에게도 스페어타이어가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결혼하지 않은 여성이 할 수 있는 조치는 분명 다르고 색다른 시도일 것이다. 나는 이 세상의 스페어타이어가 어떤 식으로 변하는지 궁금하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갖게 될 인생의 펑크를 어떤 식으로 메우는지 관찰하고 싶다.

황성하 청춘칼럼니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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