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박수룡 원장의 부부가족이야기] (이전 글의 연속입니다) 반면에 저의 어머니는 가난한 섬마을에서 살다가 ‘먹는 입’을 줄이기 위해 도회지로 시집을 왔습니다. 어머니는 남편의 ‘짓궂은 사랑’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던 탓인지 아버지와의 사이가 좋지 못했고, 어려운 살림까지 도맡다시피 해야만 했습니다. 강인한 분이었지만 고단한 삶과 남편과의 다툼으로 지쳤을 때, 어머니는 종종 “내게 딸이 하나만 있었어도……” 라고 자주 푸념을 하곤 했습니다. 아들들 중 누구라도 당신 편이 되어주기를 바라셨던 것 같은데, 우리 형제들은 부모님이 다투실 때 대부분 멀뚱히 있다가 그 자리를 피하곤 했던 것입니다.

​가난했지만 우애 깊은 친정 형제들을 떠나 낯선 곳에 시집와서 자기편 하나 없이 살았던 어머니가 얼마나 외로웠을지 그때는 몰랐습니다. 어머니는 뒤늦게 자식들이 외식이나 여행을 모시고 가려고 해도 한사코 마다했던 아버지 때문에 세상 좋은 것을 구경하지도 못한 채,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불과 삼 년 만에 그 뒤를 따라가셨습니다. ​어리석은 자식들은 ‘풍수지탄’이란 말만 뼈저리게 느낄 뿐입니다! 저는 결혼을 해서 남편이 되고 아이들이 태어나 아버지가 되었기 때문에, 과거에 제가 싫어했던 부모님의 모습이 그분들의 전부가 아니었음을 뒤늦게나마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아버지와의 화해를 통해서 저의 잘못을 바로 잡으려 하고, 또 어머니가 겪었던 외로움에 아내를 빠뜨리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물론 아직도 많이 부족하겠지만, 그나마도 제가 결혼하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제가 아버지가 되지 않았더라면 절대로 알지 못했을 것들입니다. 그리고 이런 깨달음과 노력으로 제가 조금씩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간다고 믿습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저의 부모 그리고 아내와 아이들에게 빚을 지고 있고, 또 제가 그런 빚을 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준 그들이 고맙습니다. 우리들은 누구나 자녀에게 좋은 교육, 재물, 또는 즐거운 추억을 물려주고 싶어 합니다. ​우리의 부모 모두 분명히 그랬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부모에게서 더 크게 영향을 받는 것은 사실 그런 것들이 아닙니다.

부모 자신들은 전혀 의도하지 않았고 우리 역시 그 당시에는 몰랐지만, 우리는 부모의 삶에 대한 태도, 즉 부부 관계를 포함한 가정 생활의 모습, 부모 자신의 잘못 때문이든 타인의 탐욕 때문이든 살면서 얻은 상처들, 그리고 그런 상처들을 감당하는 자세에서 더 큰 영향을 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또한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우리의 자녀에게 그런 영향을 주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우리의 부모에게서 받은 것들을 자녀에게 전달하는 ‘중간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부모에게서 영향 받은 것들을 잘 이해하고 적절하게 처리하지 못하면, 우리 역시 우리가 원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원하지 않은 것들을 자녀에게 물려주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우리가 자녀에게 “너희는 나의 나쁜 행실은 따르지 말고, 내가 권하는 좋은 길을 가거라.”라고 말하지만, 자녀는 우리가 하는 ‘말’보다 우리가 하는 ‘행동’에 더 큰 영향을 받기 때문입니다.

결혼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은 물론, 결혼하지 않은 사람까지 누구나 행복한 결혼 생활을 바랍니다. 그런데 결혼의 행복은 그 두 사람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당장은 가족과 그 주변에 있는 여러 사람들에게 적잖은 영향을 주기도 하지만, 그 자녀들을 통해서 오래도록 (지금은 알지 못하는 수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지는 것이기도 하는 것입니다. 주목할 점은 이와 마찬가지로 현재 어느 부부의 이야기는 오래 전 그 부모들로부터 전해져 온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각 부부는 자신의 부모들에게 물려받은 이야기에서 잘못된 점은 고치고 좋은 점들을 새로 붙여서 자녀에게 전해줄 책임이 있습니다. 이 책임을 잘 감당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부모의 삶을 검토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이런 노력은 혼자서 할 수도 있겠지만, 부부가 함께 한면서 훨씬 더 잘 할 수 있습니다. 부모가 경험했던 상황들의 대부분은 그 자녀의 결혼 생활에서도 반복되기 쉽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어린 시절 부모와 좋은 관계를 맺지 못했거나 상처를 받았던 사람이 결혼 생활을 하면서 부모를 이해하거나 화해할 수 있게 된 경우가 상당히 많습니다. 또 부모의 학대와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사람이 (부모와 직접 화해를 하지 못하더라도) 결혼을 하고 자녀를 낳아 키우면서 스스로 그 상처에서 벗어나기도 합니다.​

당신은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그렇게 살 자신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정말 좋은 일입니다. 당신의 결혼을 통하여 많은 사람들이 기쁨을 얻게 될 것이니까요. 혹시 지금의 결혼 생활이 불행하거나 앞으로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할 자신이 없습니까? 그것이 무슨 이유 때문이든 낙담할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결혼 생활이란 당신을 시험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당신의 상처를 치유하고 약점을 채워주기 위한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해야 할 것은 이렇게 주어진 기회를 감사하며 당신에게 주어진 가족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겠다는 결심 뿐입니다. 이런 자세로 결혼 생활을 하고 또 자녀를 키우는 과정을 통해서 당신은 부모에 대해서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고 당신 자신과도 화해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 자신이 더 넓고 깊고 높아지는 것을, 그래서 결국에는 당신과 당신이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의 삶이 풍성해지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결혼 그리고 자녀의 탄생을 축복하고 기뻐해야 할 이유입니다.

▲ 박수룡 라온부부가족상담센터 원장

[박수룡 원장]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서울대학교병원 정신과 전문의 수료
미국 샌프란시스코 VAMC 부부가족 치료과정 연수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외래겸임교수
성균관대학교 의과대학 외래교수
현) 부부가족상담센터 라온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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