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김주혁 소장의 가족남녀M&B(Movie&Books)]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나 존재한다.’ 1789년 프랑스혁명에서 채택된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 제1조 내용이다. 이에 따라 프랑스 남성들은 신분에 관계없이 참정권을 갖게 됐다. 그러나 여기서 ‘인간’은 남성만을 의미했다. 이에 반발해 올랭프 드 구즈는 여성과 여성시민들의 권리선언을 발표했다. ‘여성은 남성과 평등하게 태어나 존재한다.’ 이것이 문제가 돼 그녀는 단두대에 서면서 유명한 말을 남겼다. “여성이 사형대에 오를 권리가 있다면 의정연설 연단 위에 오를 권리도 당연히 있다.” 프랑스 여성들이 참정권을 갖기까지는 150년 이상의 세월이 필요했다.

당시 영국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여성들에게는 참정권은 물론 재산권과 아이 양육권까지 인정되지 않았다. 영화 ‘서프러제트’는 20세기 초 영국 여성들의 참정권 쟁취 투쟁 이야기다. 서프러제트는 ‘20세기 초 영국 등의 여성 참정권 운동가’를 뜻하는 단어다.

영화는 여성의 열등성을 강조하는 정치 선전으로 시작된다. “여성은 침착하지도 조화롭지도 못해서 정치적 판단이 어렵습니다, 여성에게 투표권을 주면 사회구조가 무너집니다….”

모드 와츠는 세탁공장에서 고되게 일하며 아들을 키우는 평범한 삶을 살아간다. 남편도 직장 동료다. 어느 날 세탁물을 배달하러 가다가 거리에서 가게 유리창에 돌을 던지며 여성 투표권 요구 시위를 벌이는 서프러제트 무리를 목격한다. 그녀도 여성 차별에 문제가 있다고는 생각한다. 하지만 길거리로 나선다고 해서 변화가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음날 출근길에 눈에 들어온 가판 신문의 제목은 ‘서프러제트의 이유 없는 파괴’였다.

그녀는 우연한 기회에 증언대에 서게 된다. “세탁소에서 받는 수당은 주당 여성은 13실링, 남성은 19실링이다. 남성은 주로 배달하지만, 여성은 열악한 환경에서 남성보다 3배는 더 일한다. 여성들은 작업장 내 가스로 두통에 시달리고 화상을 입기도 한다. 어머니도 내가 4살 때 세탁소에서 화상으로 사망했다….”

모드는 서서히 변해간다. 시위에 동참한다. 현장에서 붙잡혀 구속되기도 한다. 그러자 남편(벤 위쇼)은 모드를 내쫓고 아들을 중산층 부부에게 입양 보낸다. 그래도 모드는 악을 쓰는 것 외에는 달리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모드는 달라져 갔다. “평생을 공손하게 살았고 남자들이 시키는 대로 했다. 그러나 이제는 다르다. 당신과 동등한 사람이다. 법이 우리 모자를 떼어놓는다면 법을 바꾸겠다.”

대규모 집회에서 서프러제트 지도자 핑크허스트는 말한다. “50년 동안 평화적으로 참정권을 요구했지만 조롱과 구타와 무시를 당했다. 이 세상에 태어난 소녀를 위해 싸우자. 남자 형제들과 동등한 기회를 주자. 여성들도 자신의 운명을 선택할 자격이 있다. … 우리는 범법자가 아닌 법 제정자가 될 것이다.”

이들의 힘겨운 투쟁과 희생에 힘입어 영국에서 1918년부터 재산을 소유한 30세 이상 여성에게 투표권이 부여된다. 1925년에는 자녀에 관한 어머니의 권리를 인정하는 법이 제정된다. 1928년 마침내 모든 영국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투표권을 갖게 된다.

영화는 1893년 뉴질랜드를 시작으로 2015년 사우디 아라비아에 이르기까지 여성 참정권 획득의 역사를 자막으로 보여주면서 마무리된다.

메르켈 독일 총리, 메이 영국 총리, 힐러리 미국 대통령 후보, 라가르드 IMF(국제통화기금) 총재…. 이제 여성 참정권을 넘어서 정부와 국제기구의 여성 수장이 많은 시대다. 캐나다 프랑스 등 장관의 절반이 여성인 나라도 적지 않다. 우리나라에서도 여성 대통령이 탄생했고, 인구와 대학 입학률, 대졸 취업자 수 등에서 여성이 남성을 앞질렀다. 그러나 아직도 여성은 장관 1명, 국회의원 17%, 기업 임원 2.1%에 불과한 실정이다. 남녀가 평등하면 경영성과와 경제성장률이 높아진다. 여성들에게도 인구의 절반에 걸맞은 대표성이 확보돼야 하겠다.

▲ 김주혁 가족남녀행복연구소장

[김주혁 가족남녀행복연구소장]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초빙교수
-전 서울신문 국장

저작권자 © 미디어파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