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박수룡 원장의 부부가족이야기] 우리나라의 부부들에게 결혼 만족도를 조사한 결과를 보면 전반적으로 부인들보다 남편들에게서 더 높게 나타납니다. 그리고 이런 결과는 대부분의 외국에서도 볼 수 있는 현상입니다. 그런데 주목할 점은 결혼 기간이 길어질수록 부부 모두의 만족도가 감소하기는 마찬가지지만, 그 감소하는 폭을 보면 부인들의 경우가 남편들보다 훨씬 크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서 많은 부인들이 그 남편과 (오래 살수록) 같이 사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게 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저도 저희 부부의 만족도를 검사해 보았습니다. 총점 146점 만점에 저의 만족 점수는 108점, 제 아내의 점수는 92점이었습니다. 저는 아내의 점수가 적어도 ​100점은 넘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에, 아내에게 낮은 점수를 준 이유를 물었습니다. 아내의 대답에 따르면, 시부모와의 관계를 묻는 항목이나 부부의 취미 생활 같은 항목에 줄 수 있는 최고 점수는 ‘만족하는 편’ 정도지, ‘꽤 만족한다’나 ‘아주 만족한다’는 답은 현실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는 거라 했습니다. ​그러니까 자신은 현실적인 최고 점수를 준 것인데 그게 낮게 평가되는 거라면, 그런 채점기준 자체가 잘못이라는 겁니다. 나름 해당 분야의 전문가가 만든 검사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식이니, 저는 어이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아내의 말도 일리가 있어 보였습니다. ​사실 매일 일상을 사는 부부 사이에 대단하게 만족할만한 일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실제로 아주 많은 부부들이 자신들이 가졌던 기준을 양보해서 현재의 배우자와 타협하면서 살아갑니다. ​상대뿐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실망하고 게다가 자녀라는 ‘덤터기’를 지고서 현실에서 닥치는 여러 장애들을 겪으며 살아가면서 ‘대단히 만족’한다면, 그것이 오히려 이상한 것일 테지요. 즉, 그저 ‘무난하게’ 가정을 지켜낼 수만 있다면 충분히 성공적인 것으로 알고 감사하며 살겠다는 태도가 현실적으로 적절한 목표일 수도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드라마나 상업 광고에서 보이는 ‘행복해 보이는’ 가정 생활과 비교하며 자신의 삶을 불행하게 여긴다면, 정말 어리석은 일일 것입니다.

제가 부부가족치료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한 것은 결혼하고도 10년이 지난 후였습니다. 처음에는 물론 부부나 가족 관계의 문제로 고통을 겪는 다른 분들을 돕기 위해서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공부를 하면 할수록 이전까지는 몰랐던 저 자신의 잘못을 많이 깨닫게 되어, 우선 저 자신에게 도움이 되었고 저희 부부 관계와 가족 관계에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전에는 쉽게 보아 넘기기가 어렵던 아내의 버릇들을 이제는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 있게 되었고, 이전에는 며칠씩 이어지던 ‘냉전’이 종종 있었으나, 이제는 만 하루를 넘기는 경우가 드뭅니다. ​그렇게 부부싸움에 대한 두려움이 줄어들다 보니 부부나 가족 간에 더 많은 대화가 가능해졌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저나 저희 부부가 다른 분들에게 모범이 될 정도로 훌륭해졌다는 의미는 절대 아닙니다. ​아직도 나아져야 할 점이 많지만, 이전에 비해서 조금씩이나마 나아지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런 변화는 살면서 ‘싸움을 피하는 요령’을 터득했기 때문이 아니고, ‘나이가 들어 성질이 순해진’ 덕분도 아닙니다. 저와 아내에 대해서 조금 더 알게 되고, 저희의 결혼 생활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된 덕분입니다. 분명히 인정할 점은, 사실 그까짓 공부를 좀 했다고 해도 얼마나 많이 알게 되었겠습니까?

​사람에 대해서나 세상에 대해서나 아직도 모르는 것 투성이입니다. 그러나 공부를 통해서 정말 조금이나마 알게 된 것이 아주 큰 차이를 가져오더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제가 경험한 변화를 다른 분들도 경험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에서, 정신과 의사로는 드물게 부부가족치료를 전문으로 선택하게 되었고 또 이런 글을 올리고 있는 것입니다.

▲ 박수룡 라온부부가족상담센터 원장

[박수룡 원장]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서울대학교병원 정신과 전문의 수료
미국 샌프란시스코 VAMC 부부가족 치료과정 연수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외래겸임교수
성균관대학교 의과대학 외래교수
현) 부부가족상담센터 라온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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