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널’ ‘덕혜옹주’ 논란 속 1, 2위, ‘영화는 영화다’ [유진모 칼럼]

유진모 테마토크 편집국장l승인2016.08.12l수정2016.08.12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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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덕혜옹주>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테마토크] 단일민족임을 앞장세우면서도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이 바로 우리나라다. 미국과 구 소련이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라는 각자의 이데올로기를 퍼뜨리려는 목적의 아시아의 교두보 확보를 위한 헤게모니 다툼이 해방된 우리 땅을 북위 38도를 경계로 허리를 잘라놓은 지 어언 71년이 지났다.

그래서일까? 보수와 진보라는 두 진영으로 갈라선 우리 국민들은 매사에 이념 대결 혹은 논쟁을 벌이는 걸 주저하지 않는다. 수신료라는 무의지의 불가항력적 자동시스템이란 TV의 접촉과정을 감안할 때 직접 주머니에서 돈이 나가야만 티케팅이 가능한 영화가 대중문화 콘텐츠 중 가장 영향력이 강한 상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인천상륙작전’의 흥행에 ‘국뽕’ 운운의 이념대결이 난무하고, ‘덕혜옹주'(허진호 감독, 롯데엔터테인먼트 배급)의 입소문을 탄 돌풍에 일제강점기 민초의 수탈에 반해 나름의 혜택을 누린 대한제국 황족에 대한 비난이 개입되는 것이다.

▲ 영화 <터널> 스틸 이미지

여기에 재난영화 ‘터널'(김성훈 감독, 쇼박스 배급)이 개봉일 단숨에 흥행 1위에 뛰어오르며 웰메이드필름이란 호평까지 거머쥐자 ‘세월호’ 논란이 가세 중이다. 물론 영화가 대중문화 콘텐츠 중 가장 예술성을 앞세울 수 있는 것은 분명하므로 관객 개개인의 깊은 사고와 분석은 있을 수 있고, 또 필요하기도 하다. 하지만 과유불급이고, KBS2 ‘개그콘서트’가 예전에 “개그는 개그일 뿐”이라고 외쳤으며, ‘영화는 영화다’란 흥행영화가 있듯 그냥 각자의 취향으로 보고 느끼면 그 뿐이 아닐까? 어차피 극장상영용 장편영화는 돈 버는 게 첫 번째 목표니까.

‘부산행’은 1000만 명의 스코어를 넘기면서 주춤하고, ‘인천상륙작전’ 역시 하락세가 두드러진다. ‘수어사이드 스쿼드’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첫째 목표인 300만 명은 이미 물 건너갔고, 200만 명이 상한선이므로 사실상 실패다. 그래서 10일 하루 37만8922명을 동원한 ‘터널’이 ‘부산행’에 얼마나 근접할지, 같은 날 18만9708명(누적 239만8748명)으로 2위에 오른 ‘덕혜옹주’가 개봉 때의 저조한 성적을 딛고 전세를 뒤집은 기세를 얼마나 이어갈지가 관건이다. ‘덕혜옹주’에 대한 관객들의 가장 큰 우려는 덕혜(손예진)의 미화였다. 이완용 등의 매국노들이 조선을 일본에 팔았다면 대한제국의 황제 및 황족들 상당수는 이를 묵인하거나 방조한 공범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일본의 천황이나 황족 다음가는 대우와 경제적 지원을 받기도 했다.

▲ 영화 <덕혜옹주> 스틸 이미지

하지만 그렇다고 덕혜가 그런 비난의 대상이 돼야한다는 역사적 기록은 그 어디에도 없다. 오히려 그녀는 마지막 황녀라는 이유로 일본의 대 한국 프로파간다의 희생양이 돼야 했고, 그 결과 정신병원에 오래 있어야 할 정도로 심신이 피폐한 삶을 살았으며, 외동딸마저 자살로 잃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비극도 이런 비극은 흔치 않다. 어릴 때 고종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부유한 삶을 살았지만 아버지의 의문의 죽음 이후 그녀의 삶은 줄곧 내리막길이었고 자유의지와 상관없는 꼭두각시의 삶이었음은 누구라도 알 수 있다.

그래서 일부 뜻있는 관객은 혹시라도 영화가 덕혜가 독립운동을 했다고 왜곡하지 않을까 크게 걱정했다. 그러나 그건 기우에 불과했다. 물론 다이토중공업에 강제로 끌려온 조선인 노동자들 앞에서 결연한 한국어 연설을 하는 감동의 장면에서 약간 억지가 느껴지긴 하지만 그건 애초에 ‘동명의 소설을 근거로 덕혜라는 한 여자의 일생에 조명을 맞춰 수많은 가공을 덧입힌 드라마로 만들었다’는 허진호 감독의 메타픽션(픽션과 리얼리티 사이의 관계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스스로가 하나의 인공품임을 의식적이고 체계적으로 드러내는 작법)에 대한 고백의 가장 명확한 증거일 따름이다.

▲ 영화 <덕혜옹주> 스틸 이미지

주변인물인 김장한(박해일)과 복순(라미란)과 복동(정상훈)도 마찬가지다. 장한은 고종이 일찍부터 부마로 점찍은 실존인물이다. 그리고 51살이 돼서야 이룰 수 있었던 덕혜의 꿈, 즉 귀국을 도운 사람 역시 신문기자가 맞지만 영화는 드라마를 위해 장한으로 가공했다. 실제는 장한의 형이었다. 그건 복순 역시 마찬가지. 실존했던 덕혜의 유모이자 몸종은 복동이었다. 하지만 영화는 복순이란 여자에 더 가까운 이름으로 바꾸는 대신 영화의 필수양념 캐릭터로서 복동을 재창조했다. 복동은 복순에게 “복이 복 복자죠”라고 이름을 매개로 수작을 건다. 더 나아가 마냥 무능하기만 했던 고종에게 매국노들 앞에서 당당하게 호령하는 애국적인 지도자의 카리스마를 부여하기까지 했다. 그건 역사왜곡이라기 보단 덕혜의 삶이 앞으로 가시밭길임을 암시하고 거기에 가장 위해를 가하는 인물이 매국노 한택수(윤제문)라는 것을 암시하기 위한 장치에 가깝다.

▲ 영화 <터널> 스틸 이미지

‘터널’은 한층 더 현실문제에 깊게 관여했다는 해석이 분분하다. 영화는 대한민국의 수많은 터널(사회환경 혹은 국가와 기업이 만든 생활의 구조 또는 발전)이 부실공사라고 말하는 듯하다. 개통된 지 1달밖에 안 된 터널이 붕괴되는 바람에 그 안에 지극히 평범한 38살의 가장 정수(하정우)가 차에 탄 채로 고립된다. 그가 터널에 갇히기 전에 주유소에서 주유를 했는데 주유원이 젊은 아르바이트생이 아니라 늙어서 귀가 먼 할아버지였다는 사실도 주목할 만하다. 도시에서 벗어난 외곽의 주유소이니 당연히 젊은 종업원을 고용하기 힘들었을 것이고, 잘 안 들려 손님의 주문에서 벗어난 서비스로 매번 실수하는 노인을 억지로 계속 써야만 하는 주유소 사장의 사장답지 않은 척박한 현실이 서민들의 삶을 은유한다.

정수는 기아자동차 영업사원이다. 중소형 승용차를 보유할 정도며, 어린 외동딸이 생일선물로 애완견을 사달라고 하지만 그럴 형편이 안 되는, 전형적인 중년 가장이다. 그래서 그는 터널 안에 갇힌 뒤 “왜 하필 내게 이런 일이”라고 한탄한다. 그 누구도 원망하는 게 아닌 자조하는 선한 면모를 보인다. 그리고 그를 구출하기 위한 국가는 보여주기 식 행정에만 열중할 뿐 진짜 구조의 의지와 실력을 갖췄는지 의문이 들게 만든다. 심지어 구출작업이 자꾸 지연되자 생사확인 불가라는 자신들의 무능은 나 몰라라 하고 오히려 ‘시간이 그렇게 오래됐으니 죽었을 것이고, 그래서 더 이상 국가적 국민적 경제손실을 감수할 수 없으므로 제2터널의 공사를 속개한다’고 결정을 내려버린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라고 만든 정부가 국가의 이익을 위해 국민을 쉽게 희생하려하는 아전인수식 정책만 펼칠 따름이다.

▲ 영화 <터널> 스틸 이미지

더 나아가 국가안전처 장관을 여자로 설정했고, 그녀는 도대체 부하 직원은 물론이고 일선 실무자나 피해당사자와 소통하려는 의지도 실력도 전혀 없다. 오로지 방송사 카메라 앞에서 열심히 일하고, 잘 협의해 결정하라고 지시를 내리는 고위급 공무원임을 입증하려 할 뿐이다. 그리고 감독은 슬며시 왈왈 짖어대는 개 장면을 갖다 붙인다. 정수는 차안에 갇힌다. 차안(車內)이지만 차안(此岸, 미혹과 번뇌의 현세라는 불교용어)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바깥세상이 피안(彼岸, 해탈의 세상)인 것은 절대 아니다. 물질은 넘쳐날지 몰라도 내부적으론 더욱 혼란스러운 갈등과 조작과 분쟁의 아수라장일 수 있다. 오히려 애완견 사료마저 고마움이 느껴지고 평소 듣지도 않던 클래식이 취미가 되는 고립무원의 현실이 피안이 되는 아이러니다.

이런 플롯과 각 시퀀스는 특정 사건 사고나 인물을 떠올릴 수 있지만 그렇다고 딱 어느 한 건이나 인물로 대입할 수도 없다. 1994년 성수대교가 붕괴되는, 정말 말도 안 되는 사고가 생긴 지 1년 만에 삼풍백화점이 붕괴되는 어처구니없는 사고가 이어진 나라가 우리나라다. 세월호 사고 역시 아직도 수많은 사람들의 분노와 의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유병언과 그 가족에 대한 의문 역시 숱하게 산재해있다. 1999년 남산 2호터널 붕괴 보수공사 중 인부 1명이 매몰돼 숨진 사건 이전과 이후의 터널붕괴사고들이 엄연히 존재한다.

▲ 영화 <터널> 스틸 이미지

감독이 의도했건 안 했건 ‘터널’은 분명히 우리 사회의 정치 사회 경제 생활 전반에 걸친 부실한 문제와 부조리 및 부조화를 건드린다. 현대과학은 천재지변도 어느 정도 막아내야 마땅한데 그 기본인 기상청의 부정확한 일기예보 문제가 아직도 거론되는 게 대한민국의 수준이다. 마지막 대사가 “다 꺼져, 이 새끼들아”다. 잘났다고, 저마다 국민을 위한다고, 대의명분과 공무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고 떠들어대는 사회 지도층 중 적지 않은 사람들을 향한 다수 국민의 분노다. 서민들은 큰돈을 벌고 싶긴 하지만 그게 목적이 아니라 그냥 사는 게 목표다. ‘오늘 뭐 먹을까’ 고민하는 게 아니라 ‘오늘은 뭘 먹을 수 있을까’ 걱정하는 사람이 서민이다.

그런 그들을 이용하고 활용해 자신들의 뚱뚱한 몸을 더 비대하게 만드는 지도급 인사들이 엄연히 존재하고, 그래서 그들의 욕심과 무사안일이 국민의 생활을 피폐하게, 목숨을 위험하게 만들 수 있다는 걸 경고하는 가운데 그 속에서 유머를 만들어낸 게 바로 ‘터널’이다. 그래서 다수의 관객들이 울고 웃으며 줄을 잇고 있는 것이다.

▲ 영화 <덕혜옹주> 스틸 이미지

왕권국가는 덕혜옹주가 살던 시기로 끝났다. 자본주의가 개입된 자유민주주의는 국민이 주인이고 그래서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분명히 헌법에 명시돼있다. ‘덕혜옹주’는 덕혜를 황녀가 아닌, 한 명의 기구한 운명의 여인으로 그리고, ‘터널’은 국민의 주권이 얼마나 지켜지는지를 유머와 서스펜스로 풀어낸다. 살아있는 사람들은 모두 반드시 자신이 죽을 것을 안다. 그러면서도 아등바등 살려는 이유는 죽음 자체가 두려워서가 아니라 죽음 때문에 빼앗길 무엇 때문이다.

두 영화가 논란 혹은 양극단의 시선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이 미어터지는 이유는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서다.

유진모 테마토크 편집국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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