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박창희의 건강한 삶을 위해] 얼마 전 약국에 들렀을 때의 일이다. 처방전을 앞에 놓고 한 여성이 젊은 약사의 사무적인 말투를 심란한 표정으로 듣고 있었다. 마치 담배를 피우다 적발돼 교무실에 끌려온 학생의 모습이다. 50대 초반의 여성이 고혈압 환자군으로 새로이 편입되는 순간임을 필자는 직감했다. 잊지 말고 약을 먹을 것과 주의사항, 운동 등 일상에서의 관리지침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여성은 낫지도 않는 약을 왜 평생 먹어야 하는지, 꼭 이래야 하는지 도통 이해하기 힘들다는 표정이다. 특히 증상도 없는데 평생 약을 먹어야 한다는 이상한 약의 대명사인 혈압약은 전문가, 소위 의사들 사이에서도 논란이 분분하다. 고통이나 통증이 없는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고혈압 증상자가 아니라 고혈압 환자가 된다. 정상인으로 들어간 병원 문을 우리는 환자가 되어 열고 나온다. 아프지도 않은데 말이다.

병원은 기준(수치)에 의해 환자를 양산하고 약국은 우리에게 약을 판다. 그뿐이다. 졸지에 질환자의 꼬리표를 단 우리는 의사 지시에 의해 약국에서 받은 약을 평생 먹으며 살아간다. 자유의사는 고사하고 그 어디에도 우리의 주관적 의지가 개입될 여지가 없다. 평생 먹어야 할 약의 성분이 무엇이고, 약 복용으로 달라질 우리 몸의 생리적 변화에 대해선 조금도 관심이 없다. 우리는 의료 분야가 전문가의 성역임을 철통같이 믿으므로 이의를 제기할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건강하게 태어난 몸으로 왜 약에 의존해 살아야 하는지 의문을 갖지도 않는다. 그냥 먹으라니 먹을 뿐이다. 어릴 적부터 받은 교육도 우리의 나약함을 거드는데 한몫한다. 아프면 어디로 가느냐 어린이에게 물어보라. 모두 병원으로 가야 한다고 이구동성으로 외칠 것이다. 노인들도 아프면 병원으로 몰려간다.

가령현상일 뿐인데 의사들이 노인들을 상대로 뭘 어떻게 하겠는가. 부러져 맞추거나, 찢어져 꿰맬 일이 아니라면 쉬다 보면 낫는 병도 부지기수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은 약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점차 우리 주위에서 높아지고 있다는 거다. 하지만 이미 약에 익숙해진 이들이 약을 멀리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한 술 더 떠 더 효과 좋은 약을 추구하지만, 그런 약일수록 독성이 강하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의사는 고치는 척하고 환자는 나은 척 할 뿐이다.

다시 옛날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약국에서 만난 여성과 같은 상황이 내게도 있었다. 술을 즐길 당시 필자의 몸무게는 80kg을 넘나들었는데 의사 앞에서 잰 수축기 혈압의 수치가 180mmhg에 육박했다. 그 당시 남동생들은 이미 약을 먹고 있었고 돌아가신 어머니 역시 혈압이 높았다. 가족력을 들먹이며 의사는 당장 약을 먹을 것을 권유했다. 술을 즐기는 많은 사람은 병원에서 혈압약을 권유받으면 다음과 같은 질문을 의사에게 하기도 한다. 약을 먹으면 술을 먹어도 되는지 말이다. 그러나 과연 약이 잘못된 생활습관형 질병의 면죄부가 될 수 있을까. 이 어리석은 질문의 기저엔 약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그릇된 생각이 깔려있다.

의사는 신이 아니다. 일반인보다 조금 더 알 뿐, 그들도 우리 몸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것이 없다. 죽을 병처럼 여겨 병원에 달려간 우리에게 정작 많은 말을 해주지 않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많은 환자를 대해야 하니 시간도 없고, 오로지 어떤 약을 줄지 빨리빨리 결정할 뿐이다. 말이 적은 매우 권위적인 모습을 우리는 의학적 신념으로 착각하고 그들을 따른다.

기술자처럼 기계를 들여다보지도 않고, 약도 잘 주지 않으며, 환자와 오랜 대화를 나누는 의사는 어디 없을까. 현 의료체계에선 요원한 꿈에 불과하다. 필자에게 평생 혈압약을 먹을 것을 권유한 의사가 결정적으로 실수한 것이 있다. 지금 생각하면 일종의 협박성 발언 같은 것이었다. 칼로 사람의 몸을 가르기 때문일까. 의사의 말은 무섭다. 의사가 필자에게 한 말을 다음 호에 소개할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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