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독 광부 김 [조태홍 칼럼]

조태홍 청춘칼럼니스트l승인2016.08.17l수정2016.08.17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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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파인=조태홍 청춘칼럼] 파독 광부 김을 처음 본 것은 아마 5월의 늦은 밤 동방 앞에서였을 것이다. 몇몇 술친구들과 함께한 회합에서 그는 이미 취기가 오른 듯 여어- 하며 늦게 참석한 내게 술잔을 권했다. 벌건 얼굴에 전역 후 단 한 번도 손질한 적이 없어 보이는 더벅머리, 그리고 새까만 잉크때가 낀 손. 나는 흥에 취해 기타를 부여잡고 에디 킴의 노래를 연주하는 그의 모습에서 박정희 시절 독일로 파견된 광부의 향수를 느낄 수 있었다.

이후 그를 다시 본 것은 얼마 전 있었던 동아리 공연 전날이었다. 자정 즈음에 느지막이 도착한 품이라는 이름의 작은 술집에서 학회 노예 김과 파독 광부 김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술잔을 기울이는 중이었다. 학회 노예 김은 김치고기전을 씹으며 모 학회에 대하여 강도 높은 비판을 가했으며 특히 면접을 보는 작자들의 싸가지 없음을 다채로운 욕설을 통해 표현했다. 연신 소주를 가져오는 그의 모습이 범상치 않았다.

그들은 곧 조선소 인부 신도 올 것이라 했다. 인디오에서 술을 퍼먹고 있던 그는 가는 길과 술자리 참석자를 묻는 전화를 3회 가량 한 후에야 불콰해진 얼굴로 비틀거리며 도착했다. 반쯤 풀린 눈으로 취객마냥 등장한 그는 우리에게 용접을 해 본 적이 있는지, 배를 만들어 본 적이 있는지 물었으며 우리가 그의 말에 이의를 제기할 때마다 ‘실수하지 말라’고 일침을 가했다. 우리는 욕설이 퍽 잦아진 그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애써야만 했다.

▲ 조선소 인부 신은 끝없는 용접과의 싸움 끝에 흡사 뱃사람 인 듯 거친 남자가 되어 돌아왔다.

파독 광부 김은 스마트-폰 액정을 만드는 하청 공장에서 일을 한다고 말했다. 그는 상기된 얼굴로 자신이 어떻게 휴대폰의 액정을 잘라내는지에 대해 손짓과 발짓을 동원하며 설명했다. 흡사 마임 배우와 같은 손놀림과 진지한 얼굴이 돋보였다. 그는 액정이 필요하면 몰래 가져다주겠다는 말도 서슴지 않았다. 우리는 그가 공장에서 대단한 재량권을 가지고 있구나 하고 좋아하였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놀랐던 것은, 파독 광부 김이 아직도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과거 자체적으로 아르바이트 무기한 휴업 및 계약만료를 밥 먹듯이 함으로써 혜화역 주변 자영업자들의 원수가 된 남자였다. 그런 몰염치하고 패악무도한 그가 두어 달 가량이나 공장 일을 하고 있다니... 놀랄 만한 일이었다.

술집을 나와 파독 광부 김이 쏜다고 몰려간 치킨집에서 순살치킨 두 마리와 맥주 삼천을 시켰으나 삼분의 일도 채 먹지 못했다. 학회 노예 김은 절반도 넘게 남은 맥주를 버리고 떠나기 아까웠는지 맥주를 전부 부어 바닥과 의자를 닦으려 했다. 나머지 일행은 도망쳤다. 사장님의 욕설이 꽤 멀리까지 선명하게 들렸다. 여기까지만 하겠다.

마지막으로 도착한 피시방에서 조선소 인부 신은 자신의 실력을 마음껏 뽐내 보이겠다고 장담했고 곧 세주아니로 0킬 8데스 0어시스트, 시비르로 2킬 21데스 5어시스트를 기록함으로써 자신의 가치를 증명했다. 나는 그가 내 눈으로 직접 본 사람들 중 제일 롤을 못한다고 단언할 수 있다. 파독 광부 김은 광산에서의 피로 때문인지 게임을 하던 도중 곤히 잠들다 깨다를 반복했다. 눈동자가 움직이는 걸 보니 렘수면이었다. 조선소 인부 신은 격한 욕설과 함께 그의 뺨을 거세게 두들겼고 그럴 때마다 파독 광부 김은 화들짝 놀라며 급히 마우스를 찾았다. 힘든 경기였다. 이것도 여기까지만 하겠다.

새벽이 되어 돌아가는 길. 파독 광부 김은 힘든 공장생활에 대해 토로했다. 열악한 환경과 복지, 그리고 과도한 노동은 그의 생활패턴과 롤 실력을 망쳐놓았다. 그는 저 멀리 빛나는 희미한 별들을 보며 휘파람을 불었다. 구슬픈 휘파람 소리가 마치 파독 광부들이 불던 하모니카 소리를 닮았다. 그는 입대 전 누구보다도 정열적인 사랑을 했노라고 자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사랑의 댓가로 그는 스물 여덟에 학부를 졸업하리라. 그의 육신과 롤 실력, 그리고 미래는 저 앞에 보이는 칠흑같은 밤처럼 캄캄했다. 그러나 저기 멀리 보이는 희미한 별빛, 그는 오직 그것을 보고 살아가는 것이었다.

그렇게 휘파람을 마친 파독 광부 김은 코를 한번 쓰윽 훔치고, 침을 한 번 뱉은 후 인천의 공단으로 가는 열차에 몸을 실었다. 나는 성호를 한 차례 긋고 다시 만날 날까지 그의 사지가 온전히 붙어있기를 빌어주었다.

조태홍 청춘칼럼니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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