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박수인의 인인지론(人仁持論)] 올 여름은 유난히 더웠다. 강렬한 햇빛, 끈적한 바람에 불쾌지수가 깨나 올라갔는지, 각종 매체에서 다툼과 분쟁에 관한 일들을 자주 다루었다. 그 중 더운 여름에 발 맞추어 인터넷 커뮤니티를 뜨겁게 달군 일이 있었는데, 극단적 성향을 띠는 M모 사이트를 기점으로 일어난 일명 ‘웹툰사태’이다. 사건은 시간이 갈수록 불에 기름 부은 듯 네티즌 사이로 빠르게 퍼져나갔고, 애꿎은 사람에게까지 불똥이 튀었다. 문제의 핵심은 ‘평등’에 가치를 두어야 했지만, 실상은 그러지 못했다. 과격한 표현, 비합리적인 주장은 서로 간의 비난을 불러일으켰고 결국에는 편가르기 싸움이 되어버려, 중점을 두어야 할 ‘평등’은 뒷전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평등을 추구하는 것은 복잡한 영역이며, 민감한 부분이다. 조건과 상황에 따라 절대적인, 혹은 상대적인 성격을 보이기에, 섣불리 접근하고 판단하면 도리어 차별을 초래하고 만다. 따라서 평등을 이야기할 때는 편향되지 않은 관점과 합리적인 이성으로 차분히 집어 나가야 한다. 이번에 문제가 되었던 M모 사이트는 앞서 말한 부분에서 실수를 저질렀다. 사이트 내 전반적으로 보여지는 급진적인 성향은 올바르지 못한 평등의 개념을 정립하였고, 과격한 형태로 정당화하려 했다. 일방적인 주장으로 대중을 설득시키기는 힘들듯이 다수의 네티즌들은 받아드리지 못했다. 상황은 더 나빠져갔다. M모 사이트는 이를 오히려 차별이라 말하며, 더욱이 비난을 쏟아내었다. 여기에 일부 작가들과 호사가들이 끼어들어 한 쪽 입장을 지지하니, 단순한 의견 분쟁을 넘어 커다란 싸움판이 되어 버렸다.

이번 일로 큰 피해를 입은 것은 웹툰 시장이었다. 싸움판에 뛰어든 일부 작가들로 인해 네티즌들의 질타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일각에서는 작가의 생각과 주장에 대해서 존중하고 인정해야 한다는 관점을 요구했지만, 다수가 받아드리지 못하는 생각과 주장에 대해 이를 적용해야 하는지는 의문이다. 더 나아가 대중을 고려하지 못한 일부 편협한 사고 방식까지 존중하는 것은 미련한 짓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틀리지 않았다는 일종의 ‘정신 승리’ 행동은 이번 사태의 목적인 ‘평등’을 위하기 보다는 그저 개인 혹은 집단의 지적 우월성을 자랑하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한다.

한 가지의 가치를 추구하기 위해서 극단적인 방법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 인도의 독립을 이끈 간디는 평생을 최하층민들의 권익을 추구하였다. 그가 선택한 방법인 비폭력, 무저항 운동은 추구한 가치(계급의 평등)가 사회에 인정받기 위해서 오랜 시간과 올바르게 자리잡는 변화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라인홀드 니버의 '도덕적 인간 비도덕적 사회'에서도 혁명을 위해 사용된 폭력은 즉각적인 변화를 가져올지 모르지만, 폭력의 정당성은 결국 도덕적 가치를 위협한다고 설명한다.

사회가 추구해야 할 ‘평등’은 합리적인 경계선을 그어야 한다. M모 사이트에서 말하는 성차별은 정말로 차별인지 고려해 보아야 한다는 말이다. 남성과 여성의 동일한 부분은 절대적인 기준에서 바라보아야 할 것이고, 상이한 부분은 상대적으로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예를 들면, 대한민국의 학생들은 모두 시험을 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진다. 이것은 절대적 평등이다. 하지만 교육적 지원이 낙후된 곳이나 신체적 장애가 있는 학생들은 그렇지 않은 학생들과 비교하여 보다 유리한 차별을 두어 동일 선상에 설 수 있게 한다. 이것이 상대적 평등이다. 상황과 조건에 따라 적절한 경계선을 그어, 때로는 적절한 차별을 둘 수 있어야 올바른 평등이 이루어진다.

SF작가 필립 케이 딕(Philip K. Dick)의 단편 소설 '전 인간(The pre-person)'은 앞서 말한 합리적인 경계선이 그어지지 않은 세상을 표현해 놓았다. 인구 과밀의 지구, 고등 수학을 할 수 있는 나이 12세가 되어야 인간으로 인정 받는 세상, 그곳의 야만적이고 임의적인 경계선은 오로지 자신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그어졌다. 일방적으로 그어진 경계선은 역차별을 가져온다. 그리고 다수의 지지를 받아 정당성을 인정받을 때, 그것은 평등이라는 가면을 쓰고 말 것이다.

하나의 가치, 특히나 평등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상호간의 협의와 존중, 그리고 시간이 필요하다. 급변하는 시대에서 변치 않을 숭고한 가치를 지키기 위해 우리는 얼마나 노력을 해야 할까?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이 돌에 구멍을 내는 시간처럼 아주 천천히, 그리고 끊임없이 이루어 나가는 수밖에 없다. 단지 그 동안 세상의 온갖 일장 풍파에 흔들려 제 길을 잃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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