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유광선 교수의 my life] 사람들은 원래부터 생긴 대로, 즉 타고난 체질이나 성향대로 사는 게 당연하다. 사상 체질만 봐도 알 수 있다. 태양인, 태음인, 소양인, 소음인 등 타고난 체질에 따라 스타일도 제각각이라는 것이다. 물론 타고난 체질의 부족한 면모는 후천적으로 보완할 수 있다. 그러나 애초 타고난 체질 자체가 잘못됐다고 말할 수는 없다. 따라서 필자는 ‘내 성격대로 사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하며 내가 어떤 성격인지도 모른 채 주위에서 요구하는 틀에 끼워 맞추려고 하지는 않았는지 되돌아봤다.

둥글둥글한 나를 매사에 맺고 끊음이 분명해야 한다며 억지로 사각의 틀에 끼우려고 하면 어딘가는 잘려 나가고, 어딘가는 억지로 늘리게 된다. 이렇게 끼워 맞추는 고통을 굳이 감수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더군다나 내가 원해서 바꾸려는 것이 아니라 타인에 의해 바뀌어야 하는 상황이라면 결코 행복하지 않을 것이다.

필자는 학창 시절을 거치고 사회생활을 하는 동안, 이래저래 내 원래 모양새를 바꾸느라 종종 애를 먹었다. 원래의 내 성격은 뭔가를 끌어당기는 것을 좋아한다. 다시 말하면, 뭔가를 만들어 나와 맞는 사람들을 모아서 일을 진행하는 것을 좋아한다. 나와 맞지 않아도 서로 어울리고 맞춰 주는 게 사회생활의 기본이라 배웠다. 그리고 그게 맞는 줄 알고 따랐는데, 얼굴에 드러난 웃음기와는 달리 속은 시커멓게 타들어 간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어울리고 맞춰 주는 사회생활의 요령을 터득하느라 보낸 시간은 무려 10년이 넘었다. 그동안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속상해하고, 다른 일을 찾기 위해 여기저기 기웃거린 적도 많았다. 일관성을 가지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보다 메뚜기처럼 이곳저곳 뛰어다녔다. 그런데 어느 순간 차라리 내 성격대로 사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성공한 사람을 모델로 삼아 그대로 따라 한다고 해서 모두가 성공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성공한 사람들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은 자극과 동기 부여가 거의 전부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내 장점이 무엇인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야 그 자극과 동기 부여라는 도화선에 불을 붙일 수 있다. 그때부터 나는 거침없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시작했다. 원하는 일이 떠오르면, 심사숙고하는 데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곧바로 뛰어들었다. 식당, 가구종합판매점, 종합가전 판매점, 평생교육원, 여행사 등 언뜻 보면 전혀 연관이 없어 보이는 일이라도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일단 파고들었다. 그래서 내가 만든 사업체의 숫자가 수십 개가 된 것이다.

내 방식대로 일을 한다고 해서 주위를 의식하지 않고 내키는 대로 마구 일을 저지르는 것이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자기 성격대로 산다는 게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뚜렷한 가치를 가지고 움직인다.

우리 회사의 사훈은 “우리의 사업을 통해서 세상을 긍정적이고 아름답게 변화시킨다.”이다. 이 사훈이 나를 비롯해 구성원들이 추구하는 가치이며, 이 가치는 우리의 사고와 행동의 기준이 된다. 그래서 서로 의견을 주고받을 때, 의견이 다소 다르다고 해도 거칠게 공격하지 않는다. 세상을 긍정적이고 아름답게 변화시키기 위한 노력의 시작은 우리부터 아름답고 긍정적인 모습을 실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각자의 의견이 다를 수도 있지만, 모두가 공감하는 가치 덕분에 상대방을 깎아내리거나 상처를 주지 않게 된다. 공감의 가치는 하나의 색깔을 뜻하지 않는다. 여러 색깔이 어울린 무지개이다. 타고난 말투나 행동을 바꿀 수는 없다. 호랑이가 호랑이로 태어난 기질을 감추고 어떻게 여우처럼 굴 수 있겠는가. 여우나 토끼처럼 굴 때도 있었지만, 이런 모습이 되레 안팎이 다른 이중적인 모습으로 비칠 때도 있었다. 애초의 나는 호랑이 기질이었다. 그렇다면 호랑이처럼 살아야 한다. 안 그러면 답답해 죽을 지경이 된다.

내가 호랑이인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사업을 추진할 때는 호랑이처럼 거침없이 하더라도 사람을 대할 때는 토끼와 여우 등 다른 성격의 사람들과 잘 어울리면 된다. 호랑이라고 해서 늘 발톱을 세우고 이빨을 드러내는 것은 아니다. 호랑이도 제 식솔은 따뜻이 품어 주기 마련이다.

자신의 본성을 지키면서 조화롭게 어울리는 것이 진정한 어울림이다. 억지로 맞춰 주는 것은 어울림이라 할 수 없다. 조화로운 일곱 빛깔 무지개를 함께 만드는 어울림을 표현하려면, 오히려 자신의 색깔을 도드라지게 보여 줘야 한다.

▲ 유광선 교수

[유광선 교수]
한국평생교육원 원장
한국상담협회 대표이사
(사)한국고령사회비전연합회 대전지부장
한남대학교 경영대학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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