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bs 드라마 <임진왜란 1592>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테마토크] 출연배우들에게 문자 메시지로 ‘정약용’의 편성 무기한 연기, 즉 사실상 해고를 통보하는 일방통행식 ‘폭거’를 서슴지 않는 KBS지만 이번엔 ‘한 건’ 제대로 해냈다. 지난 3일 5부작 중 첫 회가 방송된 1채널 드라마 ‘임진왜란 1592’가 9.2%의 시청률을 올리며 선전한 가운데 시청자들의 호평을 얻은 것.

물론 불만을 드러내는 시청자도 꽤 눈에 띄었다. 최수종이 워낙 이목구비가 뚜렷한 미남스타일이라 이순신이란 캐릭터에 잘 녹아들지 못하고 오히려 태조 왕건이 오버랩된다는 반응이 많이 나왔으며 스토리도 매끈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발생했다. 방송 전 최수종을 띄우고 드라마의 의의와 스케일을 고평가했던 KBS 자체 분위기 혹은 ‘바람잡기’에 비할 때 아쉬운 대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인 분위기는 나쁘지 않다. 비주얼에 대한 평점은 훌륭하며 특히 상황과 대사에 대한 공감과 감동 등이 찬란하다. 400여 년 전의 일이지만 60여 년 전의 한국전쟁 상황과 비슷한 점이 있고, 현재 형편에도 대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 kbs 드라마 <임진왜란 1592> 스틸 이미지

임진왜란은 1592년 4월 13일 시작됐다. 조선조 27명의 왕 중 고종과 함께 가장 무능한 왕으로 평가받는, 조선조 첫 번째 직계가 아닌 방계 왕위 계승자였던 선조는 전쟁 발발 후 17일 만에 한양을 버리고 도망간 뒤 요동으로 망명하기 위해 광해군에게 종묘사직을 맡긴 사실 하나만으로도 왕의 자격이 이미 없었다.

1948년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에 취임한 이승만의 통치이념은 일민주의였다. 모든 사람은 국가 앞에서 평등해야 하며, 그 평등 위에서 국가의 이익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희생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그는 북한군의 서울 점령 저지 목적으로 6월 28일 새벽 한강 인도교(현 한강대교) 폭파를 명령해 정부 발표 800여 명, 민간 추정 4000여 명의 희생자가 발생하게 만든다. 그런데 그는 이미 6월 27일 새벽 특별 열차를 타고 대구로 피난 갔다가 대전으로 이동한 상태였고, 서울 시민들에게 “적이 패주하고 있으니 서울시민은 동요하지 말고 안심하라. 정부는 여러분과 함께 서울에 머문다”고 반복 방송한 대통령 특별담화는 미리 녹음한 것이었다.

▲ 영화 <포화속으로> 스틸 이미지

그는 서울 수복 후 한강 인도교 폭파의 잘못을 고백하는 대국민 사과문 발표를 국회의장단이 권유하자 거부하는 대신 인도교 폭파로 피난하지 못했던 국민들을 부역자로 몰아 처형했을 뿐만 아니라 폭파 당시 현장 책임자였던 군 장교에게 죄를 떠넘겨 군법회의를 통해 사형에 처했다.

‘임진왜란 1592’ 첫 회 ‘조선의 바다에는 그가 있었다 상(上)’은 귀선(거북선)이 처음 등장한 사천해전을 그렸다. 조선을 침략한 일본군이 20여일 만에 한양을 점령한 때. 귀선 돌격장 이기남(이철민)과 귀선 제작자 나대용(정진)은 전라좌수사로 임명된 지 2년 된 이순신(최수종)에게 고작 26선만으로는 일본의 대군을 이길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 믿을 수 없는 역사적 기록을 제작진은 ‘수조규식’이란 조선 후기 수군 해상훈련 지침서를 통해 고증하고자 노력했다. 임진왜란이 기존의 영화나 드라마에서 전체적인 전투의 그림으로 그려진 것과 달리 이 드라마는 각 인물들의 디테일을 클로즈업함으로써 이순신의 전략에 시청자가 자연스럽게 빠져들 수 있게끔 만든다.

▲ kbs 드라마 <임진왜란 1592> 스틸 이미지

이렇게 비주얼이 사실감을 주는 동시에 내용은 민초들에게 고정된다. 왕은 백성을 버리고 피난길에 오른 가운데 조선 8도가 왜군들의 발에 짓밟혔다. 이기남이 귀선에 승선한 격군들에게 “돌봐야 할 자식들이 있는 자, 홀어머니를 모시고 싶은 자, 내일을 살고 싶은 자, 지금이 마지막 기회니 귀선에서 내려라”고 말하자 단 한 명의 이탈자도 발생하지 않는다. 자신이 죽더라도 아직 살아남은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다.

부하들이 “장수가 전장에서 가장 선봉에서 서는 것은 어느 병법에서도 금기시 하는 것이니 제발 다음에는 후방에 서십쇼”라고 읍소하자 이순신은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단 하나, 가장 먼저 배에 타서 가장 나중에 배에서 내리는 것”이라며 고집을 꺾지 않았다.

▲ kbs 드라마 <임진왜란 1592> 스틸 이미지

이 대사 하나가 시청자들을 확 사로잡아 가슴을 뭉클하게, 눈시울을 뜨겁게 만들었다. 왕족 귀족 평민 천민 등의 신분의 귀천이 있던 시절의 동서양을 아울러 전장의 선두는 왕 혹은 장군이었던 사실을 아는 사람은 다 안다. 영화 ‘300’만 봐도 페르시아 대군을 맞아 299명의 스파르타 전사들을 이끌고 선봉에 선 사람은 레오니다스 왕이었다. 시청자들이 이순신의 비장한, 그러나 매우 당연한 각오에 감동한 이유는 불행하게도 건국 초대 대통령이 건국 직후 마주한 최대의 위기에서 국민을 버렸다는 트라우마를 간직한 이유 때문은 아닐까?

현재 대한민국은 겉으론 풍요롭고 매해 상전벽해의 발전을 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다수의 서민들은 세월호의 아픔과 김모 부장판사의 네이처리퍼블릭 관련설 등 납득할 수 없는 사회적 이슈에 가슴 아프고 어리둥절하다. 뿐만 아니라 잘 알지도 못하고 별 관심도 없는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문제로 정치권이 첨예하게 맞서고 국론이 분열되는 상황에서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질 지경이다. 수입은 오르는 물가에 반비례하고 가정용 전기요금 누진제 등으로 지출할 데는 더 커지면서 점점 더 먹고 살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단 하나, 먹고 살기 힘들기 때문이다. KBS가 이번엔 한 건 제대로 해냈다.

저작권자 © 미디어파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