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바이올리니스트 김광훈의 클래식 세상만사] 서양 고전 음악은 애당초 우리 것이 아니다. 이것은 엄연한 팩트다. 하지만 전 세계가 1일권인 지구촌 시대에, 우리가 ‘기원’이 아니라고 해서 위축되거나, 그 일을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묻는다면 그 또한 맞는 말이다. 하지만 필자가 여기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바로 우리 것이 아니기 때문에 발생하는, ‘서양 고전 음악’과 연계된 문제들이다.

첫째는 편향성이다.
어지간한 국제 콩쿠르에서, 이제 수상자 목록에 한국인이 있지 않으면 어색할 정도다. 하지만 이 이면에는, 마치 올림픽에서 금메달이 아니면 쳐다도 보지 않는 사회 인식과 마찬가지로, 1등 지상주의 내지 솔리스트 지상주의가 저변에 깔려있다. 쇼팽 콩쿠르 우승자인 조성진으로 인해 그의 시디가, 그의 공연이 매진되는 것은, 한편으로는 ‘그렇게 해서라도’ 클래식 음악이 주목받는 것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이 들다가도, 다른 한편으론 과연 이들 중 얼마나가 진중한 클래식 청중들이며 또 얼마가 앞으로도 청중으로 남아 있을까를 생각해 보면 대체로 회의적이다.

과거 이스트팩 가방의 범람, 노스 페이스 점퍼의 인기, 선풍적이었던 원 푸드 다이어트 내지 디톡스 요법 등, 한국의 유행과 관심은 빠르고, 즉흥적이며 즉물적인 동시에 영속적이지 못하다는 속성을 동시에 안고 있다. 그리고 이 ‘빠른 (기호의) 변화’는 클래식 음악에는 그다지 긍정적이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둘째는 내실이다.
건강함의 여부라고 생각해도 좋다. 첫 번째로 거론했던 ‘편향성’의 연장선상의 이야기지만, 우리네 고전음악 청중은 철저히 스타 연주자, 1등 연주자를 지향하고 있다. 해외 연주자들이 항상 한국 청중들의 폭발적인 에너지에 대해 놀라고 고마워하는 이면에는 기실, 이러한 우리네 문제를 담보하고 있다. 그러니까 젊은 청중들이 많은 까닭은, 절반 정도는 해당 악기 전공자 자녀를 대동한 부모님들이 공연장을 찾았기 때문이며, 나머지 절반 정도는 유명 연주자가 온다고 하니까 ‘좋은 데이트 코스’라고 생각하고 구경하러 오는 젊은 커플들이 많기 때문이다. 관심은 관심이되 포커스가 음악 그 자체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유럽의 작은 시골에서 열리는 페스티발에 참가해 연주해 보면 늘 놀라는 점은, 도대체 (미안한 이야기지만) 이런 깡촌에 누가, 왜, 연주를 보러올까 싶다가도 며칠 전부터 인근에 투숙하며 연주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매번의 연주에 대해 삼삼오오 이야기를 하고 관심을 가지는 모습을 통해, 어째서 이들의 음악은, 이들의 나라에서, -비록 유명 잡지에 나오고 홍보가 되지는 않더라도- 꾸준히 유지되고 사랑받으며 높은 수준을 유지하는지를 알 수 있게 된다. 철저히 독주자 지향적인 우리네 문화에 비해, 크고 작은 실내악단이, 그리고 수많은 교향악단이 저마다의 위치에서 수준 높은 프로그램을 들려주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몇몇 스타플레이어에 의해 빠르게 소비되는 우리네 고전 음악 풍토를 다시금 돌아보게 된다.

마지막으로 셋째는 사회적 인식이다.
문화가, 음악이, 결코 사회의 전면에 나서는 강자(强者)가 될 수는 없겠지만, 나라마다 그 문화를 대하는 느낌은 사뭇 다르다. 전후(戰後) 복구에서 오페라 하우스부터 재건했다는 일화를 굳이 거론하지 않더라도 서방세계의 문화사랑은 남다르다. 하지만 우리에게 있어 음악은 여흥의 수준을 크게 넘지 못한다. 때문에 음악을 전공하는 전공자에 대한 (일반인들의) 시각 또한 ‘저런..’ 내지는 ‘뭐 먹고 살래’의 딱하다는, 동정어린 시선이 제법 많다. 확실히 기악 연주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알만한 오케스트라의 정단원이 되거나, 아니면 (학생 모집을 하지 않아도 되는) 알만한 대학교의 교수가 되지 않는 한, 이 분야에서 ‘안정적인’ 직업은 단언컨대 없다. 바로 이러한 사회적 시각과 풍토는 대한민국에서 생의 마지막까지 좋은 음악가로 남기가 어려운 구조를 만든다.

자꾸 유럽을 비교해 미안하지만, 그곳에서는 60-70대가 되어도 탁월한 연주력을 유지하며 음악가로서, 또 선생으로서 왕성한 활동을 하는 이들이 ‘흔하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교향악단에서도 50대 이상 연주자를 찾아보기 어렵고, 설혹 있다 하더라도, 20-30대 젊은 연주자 사이에 끼어있는 모양새가 (오히려) 이상해 보일 정도다. 그리고 국내에서 60-70대가 되어 독주를 하는 연주자를 보노라면, 좋게 말해 그네들의 연륜과 음악 인생에 대해 박수를 치는 것이지, 그 연주에 대해 감동하고 깊이를 느끼는 경우는 상당히 드물다.

이것은 노력을 하지 않는 우리네 음악가들의 문제인가? 아니면 음악가로서 살아가기 너무도 힘든, 문화 따위(!)에 시선 한 번 주는 것조차 사치스러운, 그러한 사회의 풍조 때문인가?

무엇이 먼저인지, 알 수는 없지만 분명한 점은 이것이다.

비단 클래식 음악 분야뿐만 아니라 세상의 무슨 일이건, 한쪽으로 편향된, 건강하지 못한 분야는 내실 있고 근본이 튼튼한 성장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점이다.

▲ 바이올리니스트 김광훈 교수

[김광훈 교수]
독일 뮌헨 국립 음대 디플롬(Diplom) 졸업
독일 마인츠 국립 음대 연주학 박사 졸업
현) 코리안 챔버 오케스트라 정단원
가천대학교 음악대학 겸임 교수
전주 시립 교향악단 객원 악장
월간 스트링 & 보우 및 스트라드 음악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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