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황인선 교수의 미학적 사진] 미디어파인의 컬럼원고를 맡아 어떤 주제로 글을 쓸까? 더운 여름날 만큼 땀을 흘리며 이리저리 궁리하다, 여름꽃 능소화의 모습에 반해 꽃에 대한 이야기를 쓰기로 작정하고 능소화 아름답게 핀 곳을 거닐어 보았습니다.

능소화를 한자로 풀이하면 업신여김을 의미하는 "능" 자와 하늘을 의미하는 "소"자를 합쳐 만들어진 능소화. 하늘을 타고 오르다 혹은 하늘을 업신여길 정도로 높이 지조있게 피다가, 시들지 않은채 똑 떨어지는 꽃. 이 이야기를 쓰게 된 동기는 언제가 읽었던 김영남 시인의 짧은 시 "능소화"가 생각나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오해로 돌아선 이 / 그예 그리움으로 / 담을 타는 여인 / 
아래 벗겨진 신발 / 모두 매미 소리에 잠들어 있구려 / 내 아직 늦지 않았니?

능소화 이야기 꽃말과 전설

많은 사람들이 여름 꽃을 담으러 해바라기 밭으로 향할 때, 전 해바라기보다 여리고 작지만 태양을 향해 고개를 쳐들고 바라보는 붉디 붉은 정염의 꽃 능소화를 찾아 양천향교라는 곳으로 잠시 나들이를 다녀왔습니다.

골목길 가득 담벼락을 넘어 늘어진 능소화. 누군가의 발자국 소리를 들으려는지 능소화는 꽃잎을 넓게 벌린채 하늘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능소화의 전설은 이렇습니다. 옛날 복숭아빛 같은 뺨에 자태가 고운 "소화"라는 궁녀가 있었는데 임금의 눈에 들게 되어 후궁이 되어 구중궁궐의 처소로 자리를 옮기게 되지만 임금은 이후에 다시는 소화를 찾지 않았습니다. 그런 그녀는 처소에서 담장을 서성이며 임금이 오는 발자국 소리와 그림자라도 지켜보려고 담장을 넘어 쳐다보는 기다림의 세월을 보냈지요.

이 기다림이 길어지자 소화는 상사병으로 몸을 상하게 되어 운명하게 됩니다. 이듬해 여름 "소화"가 거처했던 처소의 담장을 덮는 주홍빛 꽃이 넝쿨을 따라 주렁주렁 피어나 더 멀리 담밖을 그리워하며 오늘 이 여름날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짙은 초록 넝쿨사이로 진하디 진한 주홍의 꽃은 담장위로 고개를 들어 오늘도 그리움을 표합니다. 능소화의 꽃말은 "명예" "영광" "기다림"이라고 합니다.

담장 안에는 유교적 전통을 계승하는 향교가 자리하고 있는 것도 능소화의 전설을 이야기 하고 나니 아이러니 한 느낌입니다.

능소화는 시들지 않고 꽃잎이 똑 떨어집니다. 그 기개가 독야청청하는 양반을 닮았다고 해서 양반화라고도 불리웁니다. 반상의 예절이 엄격하던 시절에는 양반집말고는 이 능소화를 심지못했다고 하네요. 능소화가 양반들의 모습에 투영된 것은 아마도 여름날의 뜨거운 태양과 장마를 견뎌내는 능소화의 강인함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능소화는 어사화라고도 불립니다. 문과에 장원급제 하면 머리에 쓴 모자의 화관을 능소화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유생들의 비석이 세워져 있는 향교앞 뜨락에 한송이 능소화가 떨어져 있네요. 능소화는 다른 꽃들처럼 시들어 남루한 형색을 보이지 않는 지조가 소화의 전설을 닮아 있기도 하고 "명예"를 상징하기도 해 그 모습이 꽃말이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세월이 흘렀지만 유생들의 선비정신을 상징하듯 여러 비석사이로 능소화가 피어오르고 있습니다.

모양이 화려하든 수수하든 향기가 있든 없든 꽃들은 모두 본연의 매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꽃들은 대부분 여성미와 견주어지기도 하지요. 능소화가 피어오를때 지고 마는 붉은 장미는 아름다운 여인의 관능미가, 노란국화에서는 누님같은 여인의 완숙미가 느껴집니다. 그런데 화려함 속에서도 절제되고, 화려하면서도 완숙미를 드러내는 꽃이 바로 능소화가 아닐까 합니다.

고고하리 만큼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 강렬한 색채의 꽃술은 해바라기처럼 언제나 태양을 향하고, 모진 더위와 장마를 이겨내면서도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 미련없이 꽃잎을 떨어뜨려 버리는 능소화. 다시 찾지 않는 임금을 오매불망 기다리다 담장을 넘어서 버린 능소화는 소화의 전설을 간직한채 오늘도 향교의 높은 담장을 넘어서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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