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밀정>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테마토크] 극장가에 이른바 ‘추석대첩’이 시작됐다. 박근혜 정부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10억 엔에 ‘해결’해버리고, 아베 정부는 소녀상 철거를 요구하는가 하면, 건국일 논란이 재점화된 절묘한 시점에 한국방송공사(KBS) 1채널은 드라마 ‘임진왜란 1592’를, 2채널은 ‘구르미 그린 달빛’을 각각 내보내며 호평을 얻고 있는 가운데 극장가에선 ‘밀정’(김지운 감독, 워너브러더스코리아 배급)과 ‘고산자, 대동여지도’(강우석 감독, CJ엔터테인먼트 배급)가 지난 7일 동시에 개봉돼 맞대결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8일 오전 각 매체들은 ‘밀정’이 누적관객 30만 5597명을, ‘고산자’가 5만201명을 각각 동원하며 박스오피스 1, 2위를 차지했다며 추석연휴가 사실상 시작되는 이번 주말에 전체관람가 등급인 ‘고산자’의 약진이 예상되므로 대결이 볼 만하다고 구도를 형성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이건 대결이 아니라 컬래버레이션(협업)이다. 국정교과서 문제가 본격적으로 거론되기 시작한 시기와도 절묘하게 맞물린다. 역사는 청산의 대상이 아니라 바로 알고,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하며, 반드시 결자해지해야한다는, 뜻있는 국민들의 역사의식의 반영이 아닐까?

▲ 영화 <밀정> 스틸 이미지

‘밀정’의 배경은 1920년대 말 일제강점기다. 경성의 일제의 주요 시설을 파괴하기 위해 상하이로부터 폭탄을 들여오려는 의열단과 이를 쫓는 일본 경찰의 서로 속고 속이는 암투가 기둥줄거리다. 임시정부에서 통역 일을 했던 이정출(송강호)은 자신을 알아봐준 경무국 부장 히가시(쓰루미 신고)의 밑으로 들어가 경찰 간부로서 일제에 충성하고 있다. 그는 의열단의 2인자 김우진(공유)을 통해 의열단을 일망타진하려다 오히려 그에게 회유당해 폭탄운반을 돕게 된다.

의열단 내부에선 누가 일본이 심은 밀정인지 갈등하고 반목하는 현상이 벌어진다. 일본 경찰에는 정출 외에도 아예 개명한 하시모토(엄태구) 같은 매국노들이 수두룩하다. 물론 이 혼돈의 시대에 자신과 가족의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강한 쪽에 붙었다는 변명을 할 수는 있다. 하지만 역사는 그것을 용서하지 못한다. 안 하는 것도 못 하는 것도 아니라 못한다. 그 이유는 역사는 반드시 후세들에게 정확하게 전달돼야 하고, 후세들은 이를 통해 현재를 바로잡아 희망적인 미래를 엶으로써 그들의 후세들이 보다 더 행복하고 희망적인 세상을 살게끔 이끌어야 하기 때문이다.

▲ 영화 <고산자, 대동여지도> 스틸 이미지

조선 후기의 지리학자 겸 실학자 고산자 김정호는 평민이었다. 그래서 그에 대한 기록이라곤 달랑 A4 용지 한 장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는 조선에서 가장 많고 정확한 지도를 제작한 위대한 학자였고, 돈도 안 되는 그 지도를 목숨 걸고 발품을 팔아가며 그린 이유는 백성의 편의와 안녕이었다.

역사완 살짝 다르긴 하지만 ‘고산자’ 속에서 흥선 대원군(유준상)과 안동 김 씨는 헤게모니를 잡기 위한 수단으로 김정호(차승원)의 지도를 차지하고자 다투고, 그 고래 싸움에 김정호라는 새우의 등이 터진다. 가족이 죽는 등 아예 그의 생애 자체가 풍비박산난다.

김정호가 지도를 그리게 된 계기는 한겨울에 홍경래의 난 진압에 민병대로서 투입된 아버지가 졸속 제작된 지도 탓에 깊은 산 속에 고립돼 동사했기 때문이다. 그는 바우(김인권)에게 목판을 파게 만들면서 완벽을 요하는데 그 이유는 지도 안에서의 한 치는 3cm가 살짝 넘는 짧은 거리지만 실제론 수백, 혹은 수천 미터가 되므로 그 하찮은(?) 오류가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등 따습고 배부른’ 게 조선시대 상놈들의 최고의 목표였다지만 그건 현재도 별반 다를 바 없다. 인간의 행복지수는 1인당 소득 등의 단순한 숫자로 결정되는 게 아니라 마음속의 만족도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가적 경쟁력과 경제력이 선진국 수준으로 치닫는 요즘의 한국의 국민들의 행복지수는 현저하게 낮다는 것이 과학적 조사로 입증되고 있다. 조선시대와의 비교평가는 불가능하지만 이 첨단의 시대에 최소한 ‘먹고 사는’ 고민만큼은 없어야 올바른 게 아닐까?

▲ 영화 <밀정> 스틸 이미지

그걸 역사에 결부시키는 것은 억지일지 몰라도, 친일파가 역사적 심판에서 보기 좋게 벗어나고 그 후손들이 배불리 잘 먹고 잘사는 반면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은 경제와 생존의 개념이 뒤떨어진(?) 조상을 둔 탓에 가난하게 살고 있다면 그건 분명히 잘못된 역사가 아닐까? 역사를 형상화하지 않고 이상화한다면 진실은 각자의 시각의 프리즘으로 다양하게 현상되기 마련이다. 결국 세상은 편협해지고 서민들의 삶은 궁핍해지는 것이다.

송강호 공유 이병헌 엄태구 한지민(이상 ‘밀정’), 차승원 김인권 유준상(이상 ‘고산자’) 등의 열연이 두 영화의 첫 번째 화제다. ‘고산자’는 관객들조차 우리나라 금수강산이 이렇게 수려한 줄 몰랐다고 놀랄 만큼의 아름다운 영상미를 자랑하고, 어떻게 위정자들이 백성을 기만해 사리사욕을 채웠는가 보여준다. ‘밀정’은 스파이 영화 특유의 긴장감이 2시간 넘는 러닝타임을 초고속도로 내달리게 만들고, 비장한 분위기가 누아르 특유의 스타일을 만끽하게 만든다.

그러나 이 영화들을 봐야 할 진짜 이유는 ‘나와 내 후손들이 왜 올바른 역사의식을 가져야 하는가’라는, 그래야 ‘비록 내 삶은 힘들었을망정 후손들의 삶은 좀 더 나아져야 한다’는 종족보존의 본능이자 어버이로서의 책임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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